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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외무차관 "한국형 어려울듯"

이창주 박사, 러시아 파노프 외무차관·로가초프 주중대사 ‘특별 대담’

편집자 ㅣ | 승인 1995.06.1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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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초미의 관심사인 북한핵 문제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은 무엇인가. 러시아는 왜 북한에 경수로를 공급하기 위한 국제 컨소시엄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여하지 않는가. 또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최근 <시사저널> 객원편집위원이자 모스크바 대학 객원 교수인 이창주 박사가 북경 주재 이고르 로가초프 러시아 대사와 알렉산더 파노프 외무차관을 만나 이같은 의문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이창주:러시아와 중국이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북경 외교가의 지배적인 분위기이다. 한반도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며 관망 자세를 취하는 까닭은?

로가초프:러시아와 중국은 현재 상당히 우호적이며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 간에는 교역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모든 분야에서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중국의 시장경제가 일단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것은 앞으로 양국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이며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러시아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군사과학 기술을 적극 지원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러시아와 중국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우리는 미·북한 회담이 성공적으로 타결돼 북한에 대한 경수로 지원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파노프: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처음부터 북한의 강력한 반발 속에 출범했다. 미국은 한국을 경수로 건설에 참여시키면서 실제의 경수로 노형은 미국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하려 하고, 일본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핵심 국가로 참여하면서 이를 북·일간 외교관계 수립 기회로 삼으려 한다. 한국은 경수로 사업에서 중심 역할을 맡음으로써 북한에 대해 결정적 영향력을 갖고자 한다. 즉 세 나라는 고도의 전략과 계산을 제각기 갖고 있다. 북한은 한·미·일의 속셈을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속셈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나 중국이 들러리 노릇을 하기 위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이창주:작년 10월 미·북한간 제네바 기본합의문이 조인된 뒤 기본합의서 이행에 따른 베를린 경수로 회담이 결렬되었고, 경수로 노형 선택 문제로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고 있는데….

로가초프:내가 만나본 북한측 고위 인사나 북경주재 북한대사의 설명과 의견을 들어 보면, 현재 상황에서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파기되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이 주계약자가 되는 경수로 공급 협정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북경주재 로이 미국대사에 따르면 미국도 이 점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평양의 그런 입장을 최종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말해 한국이 지금까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제기한 핵관련 북한 카드는 성사된 것이 한 가지도 없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접근에서 현실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국제 여론과 돈으로 밀어붙이는 형태를 취했기 때문이다. 북한을 일반적인 국제 외교의 개념 속에서 파악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이 과거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파노프: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미·북한 제네바 합의에 대한 불이행은 아니다.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 유엔을 통한 북한 제재를 주장할 수는 없다. 러시아는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한 반대 의사를 갖고 있고, 중국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러시아는 국력이 월등히 더 나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주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원해 주는 편에 서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본다.
“언젠가는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창주:지금 러시아와 북한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년 9월에는 61년 러시아와 북한 간에 체결한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자동 연장하거나 개정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은 이 조약의 제1조인 자동 군사개입 조항 개정 여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어떤 입장인지 설명해 달라.

로가초프:북한의 경제 구조나 사회간접시설은 대부분 옛 소련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두 나라는 특별한 정치적 갈등이 없는 한 상호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수로 건설 문제만 해도 상당한 부분까지 러시아·북한 간에 협상이 진척돼 있었다. 북경 주재 러시아대사관과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상시 연락체제를 갖추며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옐친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나를 특사로 임명해 평양을 방문하게 했다. 당시 주요 의제는 61년 옛 소련과 북한 간에 체결한 우호조약을 러시아 연방이 승계한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재계약과 같은 것이다. 현재 양국은 이를 유지하고 있다.

파노프:96년 9월 시효가 만료되는 러시아·북한간 우호협력 및 상호 원조조약은 양국 간에 이견이 없으면 5년간 자동 연장하도록 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이 조약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제1조의 자동 군사개입 조항은 다소 수정이나 손질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부분을 삭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과 북한이 동일한 조약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러시아만 일방적으로 폐기할 수는 없다.

이창주:최근 북한은 정전협정 체제를 무력화하고 대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로가초프:원칙적으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정전협정을 폐기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협상할 수 있다고 본다. 한반도가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 북한이 한국을 고립시키고 미국과 군사 채널을 갖기 위한 시도라면 우리는 이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파노프:북한이 평화협정 대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미·북한 협상에서 순서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핵심 사항인 경수로 공급 문제를 원만히 타결한 뒤 양국 간의 의제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창주:한국의 지식인 계층이나 국제 사회의 한반도 관련 전문가 집단은 동북아 4강인 러시아·중국·미국·일본 네 나라가 기본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본다. 솔직한 의견을 말해 달라.

로가초프:지금까지 러시아는 다른 세 나라에 비해 정치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다시 말해서 불간섭 입장을 취해 왔다. 이것은 한반도 문제를 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러시아, 즉 옛 소련은 한반도 분단에 일정 책임이 있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한반도에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런 정책을 견지해온 것이다.

파노프:러시아는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어떤 전제조건도 갖고 있지 않다. 남북한이 합의해 통일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러시아는 할 수 있는 모든 협조를 다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러·중·미·일 4국은 한반도 통일에 소극적이거나, 방관자이거나, 현상 유지론자이거나, 방해자이거나 네 가지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그에 대한 판단은 한국이 해야 한다.

이창주:남북 관계는 정치적으로 경색되고 대화가 중단된 상태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한다고 보는가?

로가초프: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보여준 한국의 강경 정책이 큰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그 기회를 강경책이 아닌 자연스런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강경파가 지배하는 한국 정부의 처지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민간 부문에서라도 숨통을 열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제 최선의 방법은 민간 부문의 교류를 적극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것이다. 중국처럼 해외 동포들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민간 부문의 북한 접근과 교류를 철저히 제한하는 한국 정부의 독점욕이 너무 지나치고 폐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절대 북한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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