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김, ‘말뚝’ 뽑고 인재 심는다
  • 崔 進·吳民秀 기자 ()
  • 승인 199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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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지역 대폭 물갈이 임박… 경남·광주는 50% 넘을 수도
정치권에 ‘물갈이’ 해일이 밀려들고 있다. 여야 물갈이의 진원지는 양김의 ‘텃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말뚝만 박아도 당선이라는 양김의 텃밭 지역에는 아닌 게 아니라 지역민들의 원성을 사는 ‘말뚝’이 많다. 양김으로서는 그 말뚝들을 갈아치워야 수도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 물갈이를 감행할 수 있다. 먼저 제 살을 도려내야만 다른 곳에 손을 댈 명분이 생기는 까닭이다.

신한국당의 부산·경남 물갈이는‘민주계 신진 기예 전진 배치’로 가닥을 잡아 나가고 있다. 3당 합당 여파로 인해 이 지역 여권 조직은 민주계와 민정계, 심지어 공화계까지 뒤죽박죽 뒤섞여 있다. YS는 젊은 친위 부대를 대거 공천해 이 지역 여권 조직을 민주계 일색으로 재편하고, 이 지역을 세대 교체의 발원지로 삼을 전망이다. 그래서 3선 이상인 중진 의원들도 공천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벌써 청와대에 ‘살생부’ 명단이 올라가 있으며, YS가 최종 대상자를 확정하는 일만 남아 있다는 후문이다.

민주계 중진 황낙주·김봉조 의원도 ‘위험’

중진급 물갈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 바로 황낙주 국회의장(경남 창원 을)과 김봉조 의원(경남 거제)의 공천 탈락 여부이다. 6선인 황의장의 지역구는 이른바 ‘백지 추천’ 케이스로 현재 전적으로 YS의 의중에 맡겨진 상태이다. 황의장 후임 공천자 물망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김규칠 한국방송공사 이사와 김영우 변호사이다. YS의 고향인 거제를 물려받은 김봉조 의원(3선)도 앞날이 불안하다. 김의원은 지난 지방 선거 때 도지사 출마를 거부한 이후 괘씸죄에 걸렸다는 풍문이 무성하다.

신한국당의 부산 지역 물갈이 폭(의석 수 21)은 적게는 25%, 많게는 35%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12·12 및 5·18 관련자인 허삼수 의원(동구) 지역구에는 이미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내정되어 있다. 인구 제한에 걸려 동구와 통합될 중구 정상천 의원(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공천에서 제외된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이 저울질하고 있는 남구 갑(허재홍 의원)과 강서구(송두호 의원) 두 곳은, 홍씨가 어느 곳으로 공천을 받는가에 상관없이 물갈이 대상 지역으로 꼽힌다. 민정계 출신으로서 YS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은 곽정출 의원(서구)의 공천 탈락은 부산에서는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그밖에 이상희 전 과기처장관과 경합을 벌이는 정재문 의원(부산진 갑)도 위험하고, 새로 조직책을 임명했던 금정 을(김도언)·북구(정형근)·사상 갑(권철현) 가운데 한 곳 정도는 재공천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경남 지역의 공천 물갈이(의석 수 23)는 50% 이상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김종하(창원 갑)·김호일(마산 합포)·차화준(울산 중)·배명국(진해)·노인환(산청·함안)·신재기(창녕)·신상식(밀양)·김기도(사천) 의원 등 다수가 물갈이 대상자 목록에 올라 있다. 정순덕 의원(통영·고성)은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이다.

이처럼 신한국당은 YS 텃밭인 부산·경남 공천에서 대폭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지만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공천에서 밀려난 인사들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나올 경우, 이 지역 선거는 여권 기존 조직 이탈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맞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YS가 이런 부담을 무릅쓰고 텃밭의 말뚝을 민주계 신진 인사들로 바꾸려는 이유를, 친위 세력을 구축해 총선 이후 정치권 재편과 권력 구조 개편에 대비하려는 장기 포석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DJ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호남 의원들에게 ‘물갈이’는 곧 ‘칼갈이’를 의미한다. 신문마다 물갈이론이 한창이던 1월5일 아침 일찍 DJ는 일산 자택으로 광주 출신 비서 1명을 은밀히 호출했다. 그가 넌지시 꺼낸 화두는 뜻밖에 호남 물갈이와 현지 정서였다. 그 비서가 돌아간 직후 DJ 밀사 1명이 곧 호남행 열차를 탔다.

대다수 호남 사람들은 대폭 차원을 넘어 아예 혁명적인 물갈이를 요구한다. 최근 광주 지역 일간지들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주민의 80% 이상, 많게는 90% 이상이 조직책을 대폭 교체하기를 바라고 있다.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서는 DJ로서는 우선 자기 안마당에서부터 모범 공천, 즉 과거와는 달라진 새로운 DJ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DJ에게 지역 여론은 무시할 수 없는 큰 부담이다. 물갈이는 이제 밀물처럼 다가오는 대세이다.

호남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광주(의석 수 6)는 신기하·박광태 의원 정도가 안전하게 재공천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는 모두 사정이 복잡하다. 임복진·이길재 의원 지역구에서는 주민들이 위원장 축출 서명 작업까지 마친 상태다. 어떤 곳은 경합자가 10명에 이른다. 정상용 의원이 지역구를 서울로 옮긴 서갑은 이영일·정동채·김종배 씨의 막판 3파전이 치열한 상태다. 광주는 지역 특성상 공천 최종 순간에 두 곳 정도가 기습적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는 전남(의석 수 19)은 이미 3명이 새로 투입된 상태이며 나머지 16곳이 관건이다. 동교동 지도부에 따르면, 지난 지방 선거 때 공천 분규가 극심했거나 선거 실적이 크게 부진했던 조직책은 박태영(담양 장성) 김장곤(나주) 신순범(여천 시군) 김명규(광양) 의원 정도다. 설상가상으로 나주와 광양은 신한국당이 15대 총선 최대 공략지로 삼는 곳이다. 특히 나주의 경우 화려한 관록의 최인기 전 농수산부장관이 사생결단을 하고 덤벼든, 여당의 기대 지역 제1호다. 여당의 공세도 공세지만 국민회의 내부 경합은 더욱 치열하다. 당 내부로부터 강한 도전을 받고 있는 조직책은, 김명규·조순승·김영진 의원이다. 장흥의 이영권 의원은 선거구 통합이 거의 확실한 데다 동교동계의 중진 김옥두 의원(전국구)이 출사표를 던져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처지다. 영암의 유인학 의원 역시 선거구 통합이라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선량들에 대한 불만이 들끓기는 전북(의석 수 14)도 마찬가지다. 무능이나 공천 분규가 현지 주민의 주된 불만 요인이다. 최근 한 비공개 동교동계 당직자 모임에서 ‘문제 인물’로 입방아에 오른 사람은 오 탄·장영달·채영석 의원이다. 만약 물갈이가 이루어질 경우 전주에서 신 건 전 법무부 차관, 부안과 김제에서는 김진배 전 의원과 장성원 전 <동아일보> 편집부국장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회의의 공천 물갈이는 소문만 무성하다가 해당 의원들의 거센 반발과 대안 부재로 결국 무위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또 대폭 물갈이를 한다 하더라도 과연 이전보다 ‘더 나은 물’로 대체할 수 있느냐 하는 힘든 과제도 남아 있다. 호남 공천은 DJ의 또 다른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읍참마속이 어렵겠지만, 대의를 위해 소연(小緣)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 지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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