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슬람 국가 간의 피의 보복 시작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1998.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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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빈라덴 없애려 미사일 폭격 회교권 나라들, 반미 운동 확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거점을 둔 반미 테러리스트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43)과 그의 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길고 긴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은 8월7일 발생한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파 사건 주모자로 그를 단정한 이래 치밀한 응징 계획을 세웠다. 그 1차 대응으로 미국은 8월20일 전격적인 미사일 공격을 단행했다.

이날 새벽 홍해와 아라비아 해에 진입한 미군 함정에서 발사된 75발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은, 빈라덴의 은신처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테러 기지와 아프리카 수단의 한 화학 시설을 폭격했다. 이어 미국은 22일 빈라덴이 미국에서 보유한 모든 자산을 동결했다.

수단에서는 문제의 화학 시설이 의약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 당국은 이 시설이 치명적 신경 가스인 VX가스를 포함해 고성능 폭약을 만드는 화학 공장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2백63명의 사상자를 낸 8월7일의 폭파 사건에 쓰인 폭약이 바로 이 곳에서 제조되었다는 것이 미국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때마침 자신의 섹스 스캔들을 뒤로 한 채 매사추세츠 주의 휴양지에서 망중한을 즐기던 클린턴 대통령은, 휴가 이틀 만에 긴급히 백악관으로 돌아와 굳은 표정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일부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공격 시점을 미리 정하지 않았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미국 국민 절대 다수는 클린턴 대통령의 공격 결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번 군사 공격이 있고 난 뒤 <워싱턴 포스트>와 ABC방송이 여론조사를 한 결과 66%가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만족을 표시했다.

빈라덴, 미군의 사우디 주둔에 불만

테러 거점에 대한 이번의 군사 공격은 그 규모로 보아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최대이다. 그러나 폭격 규모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사실은 90년대 들어 세계 곳곳에서 미국을 상대로 조직적인 테러 활동을 벌여온 빈라덴과, 그가 이끄는 테러 조직에 대해 미국이 마침내 소탕 작전에 나섰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반미 테러 조직으로 알려진 빈라덴 조직은 전세계 12개 국에 3천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미군의 무차별 공격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진 빈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부자집 아들이다. 그는 건설업으로 떼돈을 번 아버지로부터 무려 3억 달러를 물려받았을 만큼 상당한 자금력을 갖고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그는 수단에 알 히지라 건설 회사와 와디알 아키크 수출입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그밖에도 자신이 5천만 달러를 투자한 알 샤말 이슬람 은행의 최대 주주다. 바로 이들 회사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국제적인 반미 테러 활동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빈라덴은 지난 79년 옛 소련군이 회교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회교 반군 조직 탈레반을 재정적으로 돕기도 했다. 그 덕에 그는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탈레반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 부자집 아들이 왜 반미 테러 조직을 건설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미국 정보기관은 지난 91년을 회교 원리주의자인 그가 반미주의자로 돌아선 분기점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해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걸프전을 벌였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우디에 계속 미군을 주둔시켰기 때문이다. 걸프전이 끝난 지 7년이 넘은 지금도 그는 ‘회교 성지’인 사우디에 미군이 주둔하는 데 대해 한을 가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판단하는 그의 반미 테러 행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의 가담이 확실해 보이는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대사관 폭파 사건은 단일 테러 규모로는 최대다. 96년 6월 사우디 다란의 미군 막사 코바르 타워 단지 폭파 사건(미군 19명 사망), 97년 11월 이집트에서 발생한 회교 테러 조직의 외국인 관광객 58명 살인 사건, 93년 10월 소말리아에서 발생한 미군 헬기 추락 사건(미군 18명 사망)에도 그가 깊숙히 관여했다는 것이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이다.
또 그는 92∼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회교 반군에게 무기 구입 자금을 지원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거점을 둔 자신의 테러 조직말고도, 이집트의 회교 테러 조직인 ‘무장 저항 그룹’과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에 대해서도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빈라덴은 96년 6월 사우디 다란의 미군 막사 폭파 사건이 터진 지 4개월 뒤 걸프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같은 전쟁 선포는 지금까지 배후에서 자금 조달 역에 머물렀던 그가 전면에 나서 반미 활동을 하겠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96년 11월 아프가니스탄의 한 은둔지에서 파키스탄의 일간 신문 <알 쿠드 알 아라비>와의 회견을 갖고 ‘과거 내가 10년간 소련군과 싸운 것에 비하면 미군과의 싸움은 쉬울 것이다. 나는 기필코 목표를 이루어 마호메드 면전에 엎드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난 5월말 파키스탄에서 반유태계 국제 이슬람 전선 총회가 열렸을 때 ‘앞으로 얼마 안가 나의 대미 위협이 실천에 옮겨질 것’이라고 말해,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파 가능성을 예고하기도 했다.

미국이 막상 빈라덴 테러 조직과의 전면전을 선언했지만, 미국의 고민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관계가 좋지 않은 회교권으로부터 또다시 냉대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전세계 10억 회교인 가운데에는 빈라덴의 테러 행위에 반대하면서도 ‘반미 성전’ 동기에는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클린턴 대통령도 지난 20일 공격 명령을 발표하면서 ‘이번 군사 행동이 결코 회교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메시지가 회교권 주민들에게 먹혀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아랍권이 가장 혐오하는 유태계 나라 이스라엘을 가장 감싸 주고 지원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불행한 전쟁 시작됐다”

특히 회교권은 미국이 과거 이라크·이란·수단·리비아 등 회교국에 대해서 아무런 주저없이 무력을 사용해 온 데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에 대해서는 너그러이 봐준 것이 미국의 태도였다는 것이다.

할라 마수드 미국·아랍 반차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2일자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회교도의 생명을 경시한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이 무력을 쉽게 사용하는 대상이 바로 회교권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제 사회의 분위기는 회교권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미국의 군사 행동에 대해 긍정적이다. 다만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만이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미국은 이번 군사 행동이 유엔 헌장 제51조의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감행되었기 때문에 국제법상으로 아무 잘못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번 단 한 차례의 군사 공격으로 빈라덴 조직이 와해되리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으로 치면 7천9백만 달러나 되는 75발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의 테러 기지에 퍼부었지만, 정작 초라한 시설만 파괴했을 뿐 핵심 목표물인 빈라덴은 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테러 조직에 대한 ‘심리적인 파괴 효과’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과거 국무부에서 대테러 조직 책임자를 맡았던 로버트 오클리 씨의 견해이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혹시나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테러 행위에 수수 방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상대가 약하면 약할수록 더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군사 공격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미래의 불행한 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테러 조직과의 전쟁을 ‘미래의 불행한 전쟁’이라고 표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실존하는 정부는커녕 영토도 없이 활동하는 국제 테러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테러 조직은 마음만 먹으면 전세계에 널려 있는 미국 기관들이나 미국 민간인에게 언제든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미국 정부가 테러 조직과의 전면전을 지금껏 망설여 온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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