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뉴스] 진승현 게이트, 수사도 ''닮은꼴''
  • 권은중 기자 (jungk@sisapress.com)
  • 승인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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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준 때처럼 정 · 관계 로비 추적 '지지부진' ··· 야당 "한스종금 사건 은폐용"
32세인 정현준씨가 주도한 동방금고 불법 대출 사건이 채 잊히기도 전에 27세 청년 실업가 진승현씨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서울 열린금고에서 3백77억원을 불법 대출한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되었다.

신용금고를 인수해 금고 돈을 마치 자기 주머니 돈처럼 주무르면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해 세상을 경악시킨 이 두 사건의 당사자는 모두 고려대 경영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사라진 대출자금 수백억원의 행방을 놓고 정·관계 고위 인사 이름이 거론되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흡사하다. 그러나 사채업자를 끼고 벤처 기업을 인수하던 정현준씨와 달리 외국 유학파인 진씨는 영국 리젠트 그룹으로부터 외자를 유치해 코리아온라인이라는 지주 회사를 설립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이 진씨의 비리 혐의를 알게 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검찰은 아세아종금(한스종금 전신) 간부들이 태양생명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것을 수사하다가 한스종금 합병·매수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로비를 인지했다. 검찰은 압수 수색을 통해 신인철 사장의 비자금 장부를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장부에는 금감원 김영재 부원장보에게 4천9백만원을 전달한 것은 물론 은행 관계자와 여러 공기업 직원들에게 전달한 뇌물 내역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진씨는 도피 중에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로비는 신인철 사장의 독자적 행동이고 나와는 관련 없다”라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또 신씨가 공금 23억원을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신씨가 김부원장보에게 준 돈을 추적한 결과 이 자금이 진씨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점을 주목하고 한스종금 설원식 전 회장의 비자금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사건을 8월에 인지하고서도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에 직면한 검찰은 진승현씨와 설씨 부자의 신병을 확보해야 사건을 풀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진씨는 8월부터 변호사를 통해 자진 출두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도피 생활을 계속하고 있고, 설씨는 미국에 체류하고 있어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검찰의 이런 지루하고 성의 없는 수사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검찰총장 탄핵소추안까지 상정하려고 했던 한나라당이었다. 11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진승현씨 금융 비리 사건을 제2의 정현준 게이트라며 정·관계 로비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열린금고 사건은 한스종금 사건의 전모를 감추기 위해 금감원과 검찰이 터뜨린 은폐용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한스종금은 대한방직 설원식 전 회장이 소유한 아세아종금이 4월 스위스 프라밧방크컨소시엄(SPBC)으로 넘어가면서 한국과 스위스의 앞글자를 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진승현씨가 바로 이 거래를 대행했었다. 그러나 SPBC는 대한방직의 보유 지분 28%를 단돈 10 달러에 인수하고 7월14일까지 한스종금 증자대금 3천만 달러를 주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계약은 물거품이 되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 계약을 주도한 진씨가 페이퍼 컴퍼니를 내세워 한스종금을 인수하려 했다는 관측이 분분했다. 진씨는 한스종금을 인수하면서 설 전 회장과 주식 6백20만주를 2백4억원에 사겠다는 이면 계약을 맺는가 하면, 금감원이 증자 보증금을 한스종금에 예치할 것을 요구하자 3백30억원을 한스종금에서 대출해 한스종금에 넣어두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검찰은 현재 △한스종금 인수 과정 △신인철씨의 정·관계 로비 △열린금고 불법 대출과 주가 조작 여부 세 가지에 수사력를 집중하고 있다. 특히 금감원이 올해 초 세 번이나 한스금고 자기자본비율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급등시킨 점과, 열린금고에서 각각 2백94억원과 3백억원을 불법 대출한 진씨에게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이때 금고 감독 책임자가 자살한 장내찬 전 국장이어서 동방금고 사건 때 의혹이 제기된 장 전 국장의 커넥션이 또다시 거론되고 있다.

“또 금감원 때리기인가”

그러나 금감원은 8월부터 수사를 실시해 지금까지 13명을 구속시켰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자 검찰이 또다시 금감원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며 못내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이미 김영재 부원장보를 구속할 때부터 금감원 내부에서는 검찰이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금감원 죽이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었다. 특히 열린금고 불법 대출의 경우, 대출금이 전액 회수되었을 때 내릴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징계를 내렸는데도 언론과 검찰이 마치 금감원이 진씨를 비호한 것처럼 몰고 간다고 비판했다.

만약 검찰이 얼마 전 동방금고 수사 때처럼 정·관계 로비와 관련된 의혹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금감원 때리기에만 골몰한다면 검찰은 다시 한번 여론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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