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새 수석 인선 뒷얘기
  • 崔 進 기자 ()
  • 승인 1998.02.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책기획수석, 정무수석 대신 새 ‘실세’로…지역 안배에도 신경
눈이 펑펑 쏟아지던 2월9일 삼청동 언덕 위의 안가. 김대중 차기 대통령은 이날 저녁 김중권 비서실장을 불러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 오던 정무수석을 최종 결정하는 것으로 새 정권의 청와대 인선을 끝냈다.

“차기 대통령께서는 이번 인사에 흡족해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지요. ”김중권 실장은 청와대 비서진 진용을 짜면서 청와대와 안기부와 검찰 등 4~5개 기관에서 보내온 존안 자료와 주변 지인들의 평가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고 말했다. 웬만한 사람은 모두 만나보았다고 한다.

이번 청와대 인선에서 나타난 가장 도드라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무수석의 위상이 가라앉고 정책기획수석이 우뚝 솟아올랐다는 점이다. 이제 정책수석은 6개 수석 가운데 선임 수석으로 청와대에서 가장 입김이 센 ‘실세’가 되었다.

김 차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전공인 정치와 통일 분야는 직접 챙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청와대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 차기 대통령 본인도 사석에서 정치와 통일 쪽은 손수 챙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외교안보수석을 고를 때 안보 쪽에 무게를 둔 것이나 정무수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도 사실 이 때문이었다.

호남 출신·측근 인사 배제 노력

이번 인선에서는 또 호남 출신과 주변 사람을 가급적 배제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예컨대 당초 유력한 경호실장으로 거론되었던 한 장성은 김 차기 대통령과 일면식이 없는데도 먼 인척뻘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외되었다. 김중권 실장은 “호남이든 영남 출신이든 능력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중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지역 안배에 각별히 신경을 쓴 인사였다.

당료파나 측근 대신 관료와 교수 출신 등 외인 부대를 전진 배치한 대목도 눈에 띈다. 이는 청와대의 기능을‘정치 참모’에서‘정책 참모’쪽으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김 차기 대통령의 한 측근은 말했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YS 정권에서 교수 출신 청와대 참모들이 대개 실패했던 전례를 들어 과연 새 정권에서는 교수 출신 참모들이 성공할지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청와대 인선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사람은 강봉균 전 정보통신부장관. 그는 장관보다 한 단계 낮은 차관급 자리를 제의받고도 흔쾌히 응했다.‘꾀주머니’로 알려진 강수석은 대학 교수 출신 경제수석과 호흡을 맞추어 주로 경제 관련 정책을 양산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직할로 신설될 기획예산처는 강수석의 감독을 받게 된다.

정무수석은 김차기 대통령의 뜻에 따라 위상이나 역할이 크게 축소됐다. YS 정권까지 최대 실세로 통했던 이 자리는 새 정권에서는 정치 연락소 정도에 그칠 것 같다. 정무수석이 누가 되든 예전처럼 절대 힘을 실어주지 않겠다는 것이 김 차기 대통령의 확고한 뜻이기 때문이다. YS 정권에서 기세등등했던 이원종 전 정무수석이라면 지금도 “그 사람 참…” 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김 차기 대통령이다. 문희상 전 의원과 이강래 총재특보가 발표 전날 밤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정무수석에는 인수위 멤버인 김정길 전 의원과 신 건 전 법무부 차관, 한정일 건국대 교수 등이 하마평에 올랐었다. 현정권에서 이석채·김인호 등 주로 관료 출신이 득세했던 경제수석에는 교수 출신이 임명되었다. 김 차기 대통령의 몇몇 측근이 사공일 전 재무부장관과 박영철 금융연구원 원장을 추천했지만 김 차기 대통령은 일찌감치 이번 대선 때 자신의 경제 전략팀으로 활약했던 교수들 가운데 한 사람을 기용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외교안보수석의 경우 임동원 사무총장과 박용옥 국방부 정책차관보 두 사람을 놓고 김 차기 대통령이 막판까지 고심했다. 외교 쪽에 비중을 두면 임총장이 단연 1순위이고 안보쪽에 비중을 두면 현역 장성(중장)인 박차관보가 우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임총장은 수석보다는 통일 부총리를 희망해서 교통 정리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제3의 카드로 남미에 있는 한 대사가 한때 검토되기도 했다.

“외부 인사들, 보좌 잘할지는 의문”

사회복지수석은 가장 많은 사람이 물망에 오르내렸다. 보건 복지 여성 교육 문화 노동 환경 등 7개 분야의 광범위한 업무를 관장하는 이 자리에 문용린 서울대 교수나 이근식 내무부 차관처럼 통합형 인사를 써야 좋을지, 아니면 윤성태 전 보사부 차관이나 조규향 전 교육부 차관 등 특정 분야에 밝은 전문가를 써야 좋을지, 이도저도 아니면 여성계 몫으로 서지문 교수(고려대)와 장명수 <한국일보> 주필, 장 상 이대 총장을 기용할지 다각도로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청와대 인사는 그러나 몇가지 위험 요인을 안고 있기도 하다. 우선 김 차기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해야 할 참모진이 대개 외부 인사라는 점이 과연 어떻게 작용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 여야 관계를 두루 다루어야 할 정무수석의 활동 공간이 너무 협소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