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북한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 희박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8.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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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위험 크고 제반 여건 미흡…김정일의 ‘통 큰 결단’ 없으면 물거품 불 보듯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현대는 11월9일 북한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을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날 현대 김윤규 남북경협사업단장은 내년부터 금강산 종합 개발과 해주 공단 조성 사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의 대북 사업 가운데 해주공단 건설 사업은 경제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사업이다. 이 공단은 크기 면에서는 한국에서 두 번째인 구미 전자 공단보다 크다(표 참조).

공단 조성을 추진하는 현대종합상사가 내놓은 구체적인 계획안은 이렇다. 해주를 중심으로 약 2천만평을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경제 특구 공단으로 만들어 국내외 업체에 분양한다는 것이다. 현대종합상사는 빠르면 올해 안에 사업 타당성 검토를 끝내고 개발 계획에 관한 협의를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공단에는 우선 북한 노동력을 이용해 짧은 기간에 사업 효과를 낼 수 있는 섬유·가방·완구·신발·전자 제품 조립·식품 같은 경공업 업체가 들어 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현대종합상사는 중소기업지원팀을 통해 입주 신청을 받고 있다. 현대종합상사 김태호 중소기업지원팀장은 “보도가 나가기 전부터 소문을 듣고 참여하겠다는 업체가 몰려 벌써 2백여 개가 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직항로 개설 같은 몇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해주공단은 내수 부진과 수출 경쟁력 약화 때문에 고전하는 중소 기업에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측은 2천만평 가운데 실제로 공장이 들어설 면적을 8백만평으로 계획하고 있다. 나머지 1천2백만평에는 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생활할 아파트·학교·병원 같은 배후 도시 시설을 만든다는 것이다. 완성만 되면 인구 20만이 거주하는 북한 최대 공업 도시가 해주 근방에 새로 탄생하는 셈이다. 이같은 공단 모델은 중국의 초기 대외 개방 형식인 경제 특구 개념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중국은 80년 경제 특구 네 곳을 열면서 개혁·개방을 시작한 바 있다. 해주 공단 조성이 차질없이 진행되면 이는 지난 10년 동안 지지 부진했던 남북 경제 협력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장밋빛 청사진일 뿐이다. 꼼꼼히 따져 보면 이 공단이 계획대로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과거 한국 기업이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공단을 개발하다가 중지한 경험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토지공사는 92년부터 러시아와 베트남에서 공단을 개발한 바 있다. 그런데 러시아 공단 사업은 지난 6년 동안 조세와 관세 우대 조처에 대해 한·러 간에 세부 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삽도 뜨지 못했다. 베트남 공단 사업은 처음 계약 조건이 한국토지공사 단독 투자였으나, 나중에 베트남이 공동 투자 지분을 요구하는 바람에 투자단이 모두 철수한 상태다. 이 두 나라는 모두 90년대 이후 시장 경제 체제로 돌아섰고 북한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개방도가 높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이 두 나라보다 좋은 조건을 내놓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간의 경제 협력 역사를 보더라도 해주공단 건설 사업은 비관적이다. 남북 경협이 시작된 89년 이래 한국 기업이 숱하게 북한에 진출했으나 대부분 망하고, 제대로 된 사업이 거의 없다. 그나마 굴러가고 있는 것이 대우의 남포 와이셔츠 공장과 몇몇 중소 업체가 하고 있는 식품 사업 정도이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사회주의권 시장을 뚫는 데는 국내에서 1인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사회주의권에서 많은 사업 경험을 축적한 그가 북한에서 하고 있는 사업이 겨우 남포의 공장 하나뿐이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북한을 상대로 사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북한의 경제 특구인 나진·선봉 자유 무역 지대가 투자 여건이 부족해 문을 연 지 10년이 다 되도록 실적이 없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북한은 투자 매력 거의 없는 곳

그만큼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권에 견주어 투자하기에 매력이 거의 없다.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경제팀장 배종렬 박사는 “북한 경제는 △접촉-합의-계약-조업으로 진행되는 경협 사이클에서 합의 사업이 조업 사업으로, 그리고 손익분기점을 넘는 사업으로 진행한 경우가 거의 없고 △경협의 장기적 성과보다는 단기 성과를 중시하고 비경제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사업 성공을 위한 여건을 만들기보다 외화 벌이에 치중하고 △사회간접자본이 거의 없어 한 사업을 진행하려면 길을 닦고 전력을 조달하는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관적인 이유는 또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한국 경제 상황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남북한 간의 실질 무역 규모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특히 올해 1∼4월 교역 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주어 59%나 줄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달러화로 진행되는 남북 거래에서는 접촉·방북 비용 같은 부대 비용과 투자 자금, 현지 운영비를 모두 달러로 지급해야 하므로 채산성이 맞지 않았다. 신용 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기업 상황도 한몫 거들었다.

이런 처지에서 수익성이 낮고 위험도가 높으며 출장비·현지 체류비가 많이 드는 북한 투자는 투자 우선 순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북한 상품을 소비할 국내 내수 시장 또한 극도로 쪼그라든 상황이다.

정부의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이다. 세수 감소, 구조 조정 자금 수요 때문에 정부 단위에서 북한에 투자할 여지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현대의 해주공단 조성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 성공하려면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과거 한국이 만든 수출 자유 지역이나 중국의 경제 특구보다 파격적인 조건을 북한이 내놓아야 한다.

북한이 이런 조처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나진·선봉만 해도 변방이어서 철책선을 둘러 북한인 출입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공단 주위에 철책선을 두른다 해도 북한이 평양에서 가까운 해주에 자본주의 물결이 넘치는 구역을 만들기는 어렵다. 물론 ‘통 큰 정치’를 내세우는 김정일이 결단을 내린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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