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궁 비리, 제2 수서 사건 될까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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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증 없는 점만 차이…시민단체 "이번엔 의혹 철저 규명해야"
'P·K·K'. 또다시 여권 인사가 거론되었다. 이번에는 '제2의 수서 사건'이라 불리는 '분당 게이트'. 박종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월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성남시 분당구 백궁·정자 지구 일대 도시설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끼리끼리 커넥션'이 벌어졌다며, 여기에 여권 실세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파문은 컸다. 다음날부터 연일 중앙 일간지가 대서 특필했다.




박의원측 주장에 따르면, '분당 게이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여권 소속 시장이 당선된 뒤 건축법이 개정되어 시장에게 도시설계변경권이 부여되었고, 시장이 주도해 백궁·정자 지구 일대 8만6천평을 상업지역에서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해 특정인이 수조원대의 시세 차익을 챙겼다'.


초점은 쇼핑단지로 설정된 3만 9천평의 용도 변경과 매각 과정이다. 애초 이 땅은 포스코개발이 한국토지공사(토공)와 수의 계약을 맺었다(1995년 6월28일). 그런데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포스코개발은 사업성이 낮다며 2백80억원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해지했다(1998년 12월9일). 포스코개발은 쇼핑단지가 주거용 부지로 바뀌지 않는 한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포스코개발은 토공에 수차례 설계 변경을 요청했고, 미분양 토지가 많아 골치를 앓아온 토공도 성남시에 용도 변경을 요구했다. 하지만 건축법이 개정(1999년 2월9일)되어 도시설계변경권을 갖고 있는 성남시는 번번이 이를 거부했다.


그런데 포스코개발이 손을 뗀 뒤, 전격적으로 도시설계변경이 이루어졌다. 여권 소속 김병량 성남시장은 도시설계변경 공람 공고(1999년 12월31일∼2000년 1월30일)를 낸 뒤 문제의 쇼핑단지를 주거용으로 변경했다(2000년 5월9일). 미국 건설 전문 잡지 ENR사가 세계 180위로 발표한 포스코개발이 사업성이 없다며 포기한 부지를 ㅇ개발 홍 아무개 사장과 ㄴ건설 김 아무개 회장이 사들인(1999년 5월24일) 1년 뒤였다.


ㄱ의원 정점 '호남 커넥션' 의심 살 만




분당구 율동공원내 ㅅ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홍사장(강진)과 광주에 본사를 둔 ㄴ건설 김회장(해남), 당시 토공의 담당 책임자였던 김 아무개 본부장(고흥)이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호남 커넥션'이라는 의심을 샀다. 특히 홍사장의 골프연습장에 여권 실세 ㄱ·ㅂ 의원이 드나들었고, 김회장은 여권 중진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16쪽 상자 기사 참조). 또한 ㅅ골프연습장을 애용했던 여권 실세 ㄱ 의원이 지방선거후보자특별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시점(1998년 4∼6월)이 김병량 성남시장이 공천을 받은 시점과 맞아떨어지면서, ㄱ의원을 정점으로 한 거대한 비리 사슬이 그럴듯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같은 정치권 인사 개입은 유언비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수서·대치 지역 공공용지 3만5천평에 아파트 건립을 허가했던 수서 비리 사건과 정황은 비슷하지만, 정치권 개입을 단정할 만한 물증은 나오지 않고 있다. 수서사건은 청와대 비서실장 직인이 찍힌 '협조 공문'이라는 확실한 물증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나마 밝혀질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의혹 제기는 정치권 공방으로 그칠 수 있다. 새롭게 제기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백궁·정자 지구 용도 변경 문제는 지난 3년 동안 성남지역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제기했다. 이 문제를 전담했던 성남시민모임 이재명 변호사는 "시민단체가 제2의 수서 비리라고 규정하고, 관련 자료를 언론사·검찰·감사원에 모두 보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24일 토공 국정감사 때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백궁 지구 특혜 의혹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당시 안상수 의원 보좌관으로서 이 문제를 담당했던 박철휘씨는 성남시의 여론 조작 시비나 토공과 성남시의 밀약은 이미 제기되었던 문제라고 말했다.


"언론, 3년 된 사건 의혹 부풀리기"


10월20일자 〈기자협회보〉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했다. 〈기자협회보〉는 1999년에 이미 보도된 내용 외에 더 진전이 없는데도 일부 언론이 대서 특필하면서 의혹 부풀리기만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기사 검색 사이트(www.kinds.or.kr)에서 '백궁' 이나 '분당'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의혹이 고스란히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토공과 성남시의 해명성 발언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래서인지 여권은 한나라당이 10·25 재선거용으로 근거 없이 폭로 공세를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런 정치권 공방과 관계없이 시민단체는 이번 기회에 특혜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천당 다음에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분당구는 건물 색과 지붕 모양까지 계획한 신도시인데, 급작스레 용도 변경이 이루어진 이면에는 이권을 둘러싼 비리 사슬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혹을 해소할 공은 이제 검찰로 넘어갔다. 3년 동안 줄기차게 제기된 의혹이 불거진 마당에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승남 검찰총장은 지난 10월19일 "막연한 의혹만 가지고는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이미 성남지청이 내사해 종결한 사건을 섣불리 수사했다가, 제2의 이용호 게이트처럼 '검란'으로 비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검찰의 이같은 어정쩡한 태도가 결국 의혹만 부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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