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진 이인제 ‘본선’에서 보자?
  • 이숙이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4.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방선거 후 겨냥, ‘대선 경쟁력 부각’ 치중
이인제 후보의 거취 문제가 또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슈퍼 3연전으로 불린 대구·인천·경북 경선에서 이후보의 각종 공세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후보가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터진 이후보와 <문화일보> 간의 ‘후보 사퇴’ 보도를 둘러싼 논쟁은 이런 궁금증에 기름을 끼얹었다.



인천 경선이 치러진 4월6일. 경선장에서는 이 날 발행된 <문화일보>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행사장 밖에서는 신문 세 무더기를 사이에 두고 이인제 후보 운동원과 선관위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연단 근처에는 이후보 지지자 30여 명이 몰려들어 경선을 당장 취소하라며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날 <문화일보>에는 ‘이인제 후보가 사퇴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이인제 후보측은 이번 <문화일보> 사건을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이후보는 연설 직후 참모진에게 “<문화일보>에 대한 항의단을 구성하고, 그 자리에 그 크기만큼 정정 보도를 내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강구하겠다는 뜻을 전하라”고 지시했다. 박범진 전 의원은 “<문화일보> 기자가 확인 전화를 해와 아니라고 여러 차례 부인했는데도 그대로 나온 데는 뭔가 의도가 있는 것이다”라며 흥분했다. 이 ‘의도’에 대해 박씨는 ‘노무현 불계승론’을 폈다. 처음에는 이후보가 사퇴해 민주당 경선이 망가질까 봐 걱정했던 세력이 이제는 노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상처를 너무 많이 입는다고 판단해 이쯤에서 경선을 접으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그 ‘세력’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다 아는 것 아니냐”라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또 다른 측근인 이철용 전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배후 세력이라고 확신했다. 김대통령이 노후보를 선택했으며, 그래서 DJ 측근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 강조하는 까닭


그는 DJ가 왜 이인제가 아닌 노무현을 선택했는지 두 가지 이유를 댔다. 하나는 그동안 지역 갈등 해소에 실패한 DJ가 마지막 카드로 ‘영남 후보’를 내세워 치적으로 삼으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사 세무 조사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노후보의 ‘충성심’을 높게 샀다는 것이다. 그는 또 노후보가 단기필마형 정치인이어서 DJ가 퇴임 후 수렴청정하기 쉽다는 점도 DJ 입맛에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현재 이후보 진영에 폭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문화일보> 사건이 오히려 이후보 진영의 자작극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노무현=DJ 그림자’라는 음모론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고, 민주당 경선이 끝까지 가기를 바라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심리를 자극해 ‘동정표’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민주당 선거인단 사이에는 이인제가 사퇴하면 경선도 끝난다는 위기감이 퍼져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이 민감한 때에 기자가 아무 정보 없이 특정 후보의 사퇴를 거론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이후보측이 곧바로 공작이라고 몰아가는 데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기사를 쓴 <문화일보> 김재목 기자는 “매일 이후보와 머리를 맞대는 측근 중의 측근으로부터 들은 얘기이고, 확인 절차를 충분히 거쳐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보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후보 진영에는 끝까지 가자는 쪽과 들러리 그만 서자는 양론이 혼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보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듯하다. 그의 한 핵심 측근은 “경선에 다시 참여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미 진로는 정해졌다. 이대로 그만두면 이인제의 정치 생명은 완전히 끝나지만, 지더라도 완주하면 최소한 경선 불복 시비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다음을 기다리면 된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다음’이란 지방 선거 이후 대선까지의 6개월을 얘기한다. 즉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하거나 노후보가 검증 과정에서 흔들릴 경우 후보교체론이 제기될 것이며, 아니더라도 정계 개편을 통해 정치판이 다시 짜이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이다. 이 때를 대비해 끊임없이 ‘본선 경쟁력’을 강조한다는 것이 이후보측 전략이다. 인천 경선장에서 만난 이후보는 “이제 대의원은 중요하지 않다. 국민을 상대로 직접 승부를 걸겠다”라고 말했다.




노무현과 차별화, DJ와 결별


국민을 상대로 하겠다는 이후보측 선거 전략은 앞으로 두 갈래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노무현과의 차별화이고, 다른 하나는 DJ와의 결별이다.


노후보와의 차별화는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노후보의 정체성과 이념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져 당장은 노풍을 잠재우고, 길게는 노후보와 갈라설 명분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DJ와의 결별은 4월5일 대구 경선에서 시작되었다. 이 날 이후보는 “DJ 정권의 비리를 깨끗하게 청산해야 한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후보측은 또 대구 경선 직후 노후보의 언론 관련 술자리 발언을 공개했다. 이후보는 이 내용을 이미 한 달 전에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달 전에 들은 얘기를 뒤늦게 공개한 데는 나름의 계산법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이후보의 한 참모는 “DJ와 완전히 갈라서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라고 귀띔했다. 노후보의 언론관을 공격함으로써, DJ와 노무현은 언론을 틀어쥐려는 쪽이고 이인제는 언론 자유를 존중한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이후보가 북한 지원 문제에 대해 DJ 정부와 다른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선을 떠나 본선을 노리는 쪽으로 이후보측이 전략을 수정함에 따라 당분간 노후보는 물론 김대통령도 몸살을 앓게 될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