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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교범에 타살은 없다

‘허일병 사건’ 법의학 토론회서 자살 결론 고수…“동의 못한다” 참석자 반박도

정희상 기자 ㅣ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2.12.02(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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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일병 사건 법의학 토론회에서 국방부 특조단측 자문위원인 고려대 황적준 교수(사진 마이크 든 이)가 자살 주장을 폈다.



18년 전 군부대에서 의문사한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의 진실을 놓고 국가기관끼리 대립하고 있다.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11월25일 국내 일부 법의학자를 중심으로 허일병 사망 사건 법의학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앞서 특조단은 의문사위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허일병 부대원들을 다시 불러 조사한 결과 이들이 의문사위에서 진술한 내용을 번복했거나 착각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의문사위에서 허일병 사살 현장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중대원 전 아무개씨에 대해서는 본인이 거부하는 바람에 특조단이 끝내 조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오른쪽 인터뷰 참조).


이 날 특조단측은 의문사위의 타살 발표를 반박하면서 자살·타살 여부는 나중에 발표하겠다고 미루었다. 그러나 특조단장은 일부 법의학자를 포함한 국방부측 자문위원 5명이 토론회에서 사실상 자살로 결론내 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곧바로 토론회에 들어갔다.


이 날 토론회에 나선 국방부측 법의학자 4명은 지난 3개월간 허일병 사건을 다시 조사해왔다. 그런데 토론회에서 국방부 자문위원을 맡았던 황적준 교수(고려대)와 이한영 국과수 법의과장은 “처음부터 자살로 보고 있었다”라거나 “결정적으로 자살로 본다”라는 등의 표현을 써서 다른 학자로부터 무리한 예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예외적 사항만 모아 자살 주장”


이들의 견해를 적극 반박한 법의학자는 의문사위 자문위원인 이윤성 교수(서울대)였다. 그는 “자살로 보기 힘든 허점투성이인 허일병 사건에 대해 지극히 예외적인 사항만 모아서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데 동의할 수 없다”라며 이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졌다. 또 “다른 뚜렷한 자살 증거도 없이 부검 소견만으로 자살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속된 말로 법의학이 오버하는 것이다”라고 질타했다. 결국 이 날 법의학 토론회는 국방부측의 자살 결론과 이윤성 교수의 반대 소견이 팽팽히 맞선 채 끝났다.


이윤성 교수 외에도 총기 시체 부검 경험이 풍부한 재미 법의학자 노용면 교수는 의문사위에 허일병 사건이 타살이라고 감정하는 소견서를 보내온 상태이다. 국내 법의학자 가운데 서재관 박사도 의문사위의 자문에 대해 타살에 무게를 둔 대답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허일병 시신을 부검했던 군의관 박 아무개씨 역시 지난 9월 의문사위 조사에서 타살 쪽으로 진술했다. 그러나 그는 11월25일 특조단이 주최한 법의학 토론회장에 나오지 않아, 그가 타살 소견을 번복했는지 여부는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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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위측 자문위원인 서울대 이윤성 교수(위쪽)는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처럼 특조단이 자문위원단을 통해 허일병 사건을 또다시 자살로 결론지으려 한다는 징후는 이미 의문사위가 타살이라고 발표한 직후부터 감지되었다. 지난 8월 말 군헌병을 중심으로 특조단을 구성한 국방부는 민간 자문위원단도 발족했다. 황적준 교수 등 법의학자 4명과 경찰 감식 관계자 및 인권변호사 2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특조단이 구성한 민간 자문위원회에 대해 운영 과정에서 투명성과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초 국방부 특조단 요청으로 허일병 사건 재조사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대한변협 인권위 소속 전해철 변호사는 특조단의 조사 방식에 반발해 중도 사퇴했다. 전변호사는 “자문위원도 객관적인 조사 과정에 참여시켜 주기를 기대했지만 이미 국방부측이 독자적으로 조사를 다 완료한 뒤 입맛에 맞는 답변을 얻으려고 자문하는 기색이여서 사퇴했다”라고 말했다.


전변호사는 특히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주리라고 기대했던 특조단 자문위원 가운데 중요 역할을 맡은 일부 인사가 처음부터 자살을 예단하고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모습에 우려를 감출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일부 법의학자가 사건의 진상과 상관없이 의문사위에 거친 사감을 표현하는 등 진상 규명 의지가 의심되는 현상을 보고 사퇴를 결심한 뒤 국방부에 제출한 사퇴서에도 이런 내용을 담았다.”


이같은 잡음이 있었기 때문에 특조단이 주도한 법의학 토론회는 이미 열리기 전부터 의미가 퇴색했었다. 더구나 의문사위가 허일병 사건 관련 참고인들을 2년에 걸쳐 설득하고 조사한 반면 특조단은 단 두달 동안 참고인들을 조사했을 뿐이다.


특조단의 법의학 토론회 이후 의문사위측은 “특조단이 허일병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진상규명보다는 의문사위 조사 결론을 뒤집기 위해 근거도 없이 자살 결론에 집착했다”라며 국방부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최근 의문사위 활동 시한을 연장하는 법개정이 이루어진 만큼 허일병 사건에 대한 조사를 연장해 진실을 확정짓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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