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폐쇄? 사실이야? 진짜야?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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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재단, 여당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극렬 반대…여론·대안 외면하고 ‘엄포’
사립학교법 공방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여권이 추진 중인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학교를 자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사립 학교 재단들은, 11월7일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해 자신들의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이 날 집회에서 눈에 띈 것은 색깔론의 등장이었다. 그간 사학 재단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현정권이 ‘사학 죽이기’ 내지는 사학 탈취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날 연사로 나선 김상철 변호사는 ‘(사립학교법 개정은) 학교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하주 한국사립중고등법인협의회장은 “우리 손으로 학교를 폐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편향된 의식을 가진 세력들에게 학교를 넘겨줄 수는 절대 없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참가자들은 ‘박살 열우당/타도 전교조’라는 구호로 화답했다.

그러나 여권 개정안은 다른 진영으로부터도 비난을 받는다. 전교조나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이 사학 재단의 로비에 밀려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무늬만 개혁인 누더기 법안’으로 만들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열린우리당이 애초에 만든 사립학교법 개정안 원안에는, 현재 이사회가 가진 교직원 임면권을 교장에게 넘긴다는 조항이 있었다. 재단의 인사 전횡을 막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지난 10월 당론으로 확정된 개정안에는 이같은 내용이 빠져 버렸다. 이런 식의 절충안에 대해 전교조 등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학 재단은 사학 재단대로 여당안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당이 교직원 임면권 관련 조항 등을 삭제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나머지 내용도 전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특히 문제 삼는 것이 개방형 이사제이다. 개방형 이사제란 전체 이사 정수의 3분의 1 이상을 학교운영위원회가 추천하게끔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사학 재단들은 ‘개방형 이사=점령군’이라며 극도의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오른쪽 인터뷰 기사 참조). 그러나 전교조측 주장은 다르다. “이사회 의결 정족수가 과반수 이상인 만큼 3분의 1인 개방형 이사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이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느니 하는 주장은 지나치다”라는 것이다.

현재 사학 재단들은 ‘학교 폐쇄’라는 배수진을 친 채 결사 항전 태세를 가다듬고 있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에 따르면, 학교 폐쇄에 동참할 의사를 밝힌 학교는 전국 사립 중·고교 1천6백5개교 중 1천5백31개교로 전체의 90%가 넘는다. 사립 전문대·대학 또한 전체 3백29개교 중 2백11개교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들의 결의대로 학교 폐쇄가 현실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현행법상 사학의 설립·경영자가 학교를 폐지하려 해도 교육감이나 교육부장관이 이를 인가하지 않을 경우 법인을 해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한적인 경우에는 이들 학교에 임시 이사 를 파견할 수도 있다. 사학 재단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만큼 학교 폐쇄 주장은 일단 법안 통과를 앞두고 여당을 압박하려는 ‘엄포용 카드’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34.3%뿐

문제는 이들이 이렇게 학교 폐쇄라는 극약 처방까지 들고나온 이유를 국민이 제대로 납득하느냐 여부이다. 지난 10월23일 <시사저널>이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51.8%로 반대한다는 응답자(34.3%)보다 17.5% 포인트 많았다. 이는 사학에도 어느 정도 공공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상당수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현재의 사학 재단은 이같은 여론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비판론자들의 주장대로 개방형 이사제가 문제라면, 사학 비리를 막고 학교 운영 과정에서 민주성·개방성을 담아낼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그러나 사학 재단은 ‘알아서 노력하겠다’는 구두선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극한 대립 속에 교육 현장만 멍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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