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동아일보> 기 싸움이 기가 막혀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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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실명 비판·문희상 실장 등 자금 수수 보도로 점입가경
노무현 정권과 <동아일보>의 갈등이 급기야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두 진영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친 곳은 청와대였다. <동아일보>는 이른바 조·중·동 삼각 편대의 최전방에서 노무현 정권을 비판했고, 청와대는 그런 <동아일보>에 정면 대응해 왔다. <청와대 브리핑>이 6월18일과 7월14일 <동아일보> 최 아무개 기자를 실명 비판한 것이 대표 사례다.

노무현 정부 들어 청와대가 칼럼이나 논평에 대해 실명 비판을 한 적은 두어 번 있지만, 현직 청와대 출입기자를, 그것도 두 번씩이나 콕 찍어 비판한 적은 없었다.

1차 실명 비판에는 ‘한 출입 기자의 빗나간 저널리즘’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붙었고, 2차 실명 비판에는 ‘최○○ 기자가 쓴 <기자의 눈>은 근거가 없다’라는 반박문이 실려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 성향도 한 몫

청와대는 <동아일보>의 기사 비틀기가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주장했다. 왜곡 기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청와대는 ‘한·미 정상회담 직전 미국 국방부 관리가 내한해 청와대에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5월7일자) ‘청와대가 밀고자 색출을 위해 언론 대책반을 가동 중이다’(6월18일자) ‘청와대가 MBC·SBS에도 대통령 주례 방송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7월8일자) 등을 꼽는다. 이에 대해 최기자는 “청와대 브리핑팀은 자기들이 모르면 다 오보라고 한다. 기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청와대가 내 기사에 대해 ‘한풀이’니 ‘외눈박이’라고 매도한 것이 오히려 명예훼손이다”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이렇듯 양쪽의 골이 깊어진 이유를 주로 최기자의 글쓰기 스타일에서 찾는다. 최기자가 한마디로 ‘얄궂게’ 기사를 쓴다는 얘기다. 한 기자는 “(최기자는) 무조건 씹기로 작정하고, 거기에 맞는 정보만 찾는 것 같다”라고 했고, 다른 기자는 “같은 얘기를 들어도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쓸지 몰라 모임에 함께 가기가 겁난다”라고 말했다.

최기자는 경제부 기자 때도 가는 곳마다 요주의 인물로 꼽혔다고 한다. 언론사 세무 조사가 한창 논란이 되었던 2000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동아일보 최○○ 기자 출입 금지’라는 경고문이 나붙기도 했었다.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보통 기자들이 새 출입처에 나가면 비판 기사를 세게 써서 자기 존재를 알리고 군기도 잡곤 한다. 이번에도 그런 의도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노무현 정부 사람들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아 충돌이 계속되는 것 같다”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청와대측은 근본적으로 <동아일보>의 논조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여권 흠집 내기라면 무조건 환영하는 신문사 내부 분위기가 현장 기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준법 서약서 폐지와 관련한 보도를 한 예로 들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DJ가 못한 일을 노무현 정부가 했다’는 식으로 과거와 다른 보도를 했지만, <동아일보>는 여전히 색깔론에 기댄 시각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현정권을 씹어야 영남에서 잘 팔린다는 경영진의 고정 관념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친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한 기자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경영진의 의심이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DJ 정부에서 세무 조사로 학을 뗀 경영진이 노무현 정부도 그럴지 모른다며 미리부터 견제구를 던진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동아일보>와 최기자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 방미 때 청와대 당직실에서 대통령 전화를 받지 않은 사건, 청와대 경내에 벼락이 떨어진 사건, 청와대 구경에 나선 한 할머니가 대통령 차량에 편지를 던져 넣은 사건, 대통령이 부산지역 선대위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사건 등 <동아일보>가 특종한 기사들이 민감한 파장을 일으키자, 이에 대해 감정이 상해 있던 청와대가 과잉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청와대 브리핑>을 만드는 청와대 직원들이 대부분 <미디어 오늘> <기자협회보>같이 언론을 다루는 매체 출신이라는 점도 청와대가 ‘미디어 비평’에 훨씬 더 예민한 이유로 풀이된다.

어느 편 잘못이 더 크든, 그동안 청와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노무현 정부 대 <동아일보>의 국지전은 이제 여권 전체로 걷잡을 수없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7월16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 기사가 기폭제가 되었다.

<동아일보>는 이 날 민주당 김원기·이해찬·신계륜 의원과 청와대 문희상 비서실장이 굿모닝시티 윤창렬 대표로부터 거액 로비 자금을 받았다는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그것도 실명을 큼지막하게 박아서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를 취재원이라고 밝힌 이 기사는 정치권에 즉각 평지 풍파를 몰고 왔다. 거론된 인사들이 한결같이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면서, <동아일보>에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출신인 김원기 고문은 “분노보다는 슬픔을 느낀다”라고 했고, 이해찬 의원은 “허위 날조 차원의 보도로 보고 준엄하게 대처하겠다”라고 말했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곧바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야당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공개된 손학규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나머지 거명된 인사들도 줄줄이 고소를 제기했거나 준비 중이다. 형사도 형사지만, 정치인마다 손해배상 청구 액수가 10억원을 넘어서고 있어, 만약 <동아일보>가 패소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당초 자신만만하던 <동아일보>는 하룻밤 사이에 수세에 몰린 분위기다. 당사자들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경한 데다, 검찰에서도 “윤창렬씨가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다”라고 공식 부인했기 때문이다. 정치부·사회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동아일보>가 물정 모르고 너무 오버한 것 같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동아일보>는 7월17일 오후 광화문 사옥에서 항의 집회를 연 김원기 고문 지지자들에게 ‘자체 조사를 통해 오보임이 밝혀지면 7월23일자 1면에 정정 기사를 싣겠다’고 약속했다. 기자와 편집국장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동아일보>가 딱 걸린 것인지, 아니면 정계를 떠나야 할 인사들이 속출할지, <동아일보> 대 노무현 정권의 기 싸움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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