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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권 가도 ‘단독 질주’

文正宇·李叔伊 기자 ㅣ 승인 1996.11.21(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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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게는 지금 다른 당의 대통령 선거 경쟁자들이 가지지 못한 큰 재산이 하나 있다. 시간이다. 여권 후보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과당 경쟁 금지 조처에 발이 묶여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내각제 개헌 관철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 준비에 전념하기에는 아무래도 어색한 처지이다.

반면 국민회의 김총재는 이것저것 눈치 볼 것이 하나도 없다. 그는 원외이기 때문에 정기국회 기간에도 형식적으로나마 의사당에 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다.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까지 남은 14개월 동안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면 그뿐이다. 김총재는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적어도 5~6개월은 벌어놓은 셈이다.

DJ 비서들 “총재님, 경상도 가서 사십시오”

그는 요즘 자기에게 주어진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 맹렬하게 뛰고 있다. 그의 초반 기세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여당에서는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비난까지 나온다. 신한국당 강삼재 총장은 최근 ‘국민회의 김총재는 1년2개월 뒤에나 있을 대선에 대비한 사전 선거운동을 자제하고 심각한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는 논평을 냈다.

실제로 김총재의 요즘 움직임만을 보고 있으면 선거가 바로 코앞에 닥친 것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이다. 그는 나라 안팎을 넘나들며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히 다리를 놀리고 있다. 지난달 중국에 다녀온 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강원도·대구·경남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바로 필리핀으로 날아가 3박4일간 아태지도자회의에 참석하고 지난 11월5일 귀국했다. 의정 활동을 벌이는 국민회의 소속 의원들을 불러 격려도 하고 질타도 했다. 그는 연말까지 대구·경북 도지부 결성대회, 부산시지부 결성대회를 비롯한 각종 지역 행사와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다. 새해에는 미국에 가서 클린턴 행정부 요인들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있기도 하다.

그의 움직임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냥 부산하고 산만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관된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행보는 철저하게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자신의 강점을 더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의 국내 활동은 주로 자신과 당의 취약한 부분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패한 지난 세 차례 대선 때마다 그를 항상 괴롭혔던 것은 바로 색깔 시비였다. 그는 이번 대선 때는 어떻게 해서든 이념 논쟁을 사전에 봉쇄하겠다고 단단히 작심한 것 같다. 그만큼 색깔론을 차단하려는 그의 노력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며 때로는 거칠기까지 하다. 한총련 해체를 거론한 것이나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때 앞장서 북한을 성토한 것이 좋은 예이다. 그는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북한의 테러 위협 정보가 있다며 중국 정부에 특별 경호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방 순회 때마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만나 자기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버리도록 유도하려고 애쓴다. ‘얼굴을 맞대면 생각도 달라진다’는 논리이다. 과거 그의 경쟁자들이 즐겨 겨냥했던 공격 목표를 없애려는 이 노력은 시간을 두고 집요하게 계속될 것 같다. 필요하다면 북한을 공격하는 데도 망설이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동성 연애에 우호적이던 클린턴이 지난 대선에서는 거꾸로 동성연애자를 공격해 그에 대한 비난을 사전에 틀어막았던 것과 같은 전략이다.

역대 선거에서 그에 대해 가장 비우호적이었던 영남 지역 유권자들을 공략하는 것도 그가 역점을 두고 있는 국내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수 없고, TK 유권자들이 현 정부에 대해 이미 등을 돌린 상태이기 때문에 이제는 영남이 결코 넘볼 수 없는 땅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요즘 들어 그의 영남행이 부쩍 잦아진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최근 영남 출신이며 그의 최측근이기도 한 권노갑 의원을 지도위 부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뒤 경북 안동 을 지구당위원장에 전진 배치했다. 경북도지부장 직도 맡을 예정인 권의원은 아예 대선 때까지 경북에 눌러앉아 김총재의 TK 공략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권의원과 같은 영남 출신인 설 훈 의원은 “설득력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가진 김총재가 최대한 그곳 유권자들을 접촉하면 얼마든지 표를 긁어모을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시간인데 우리에겐 시간이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그 때문에 김총재 비서들은 김총재에게 “경상도에 가서 살라”고 주문한다고 한다.

김총재가 영남, 그 중에서도 TK 지역에 특히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자민련이 충청도와 함께 자기들의 텃밭이라고 여기는 TK 지역에 똬리를 틀고 앉아 세를 확장해 앞으로 있을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이다. 국민회의가 단독 집권할 가능성을 한껏 높여 자민련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김총재의 이런 구상이 그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자민련 박철언 부총재의 뒷받침을 받으면 앞으로 대선 국면에서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김총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영남을 찾는 까닭은 당내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에게 경선 도전장을 낸 김상현 지도위 의장이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김총재에 대한 영남 지역 대의원들의 거부감이기 때문이다. 김의장측은 ‘호남과 서울을 제외한 전지역의 대의원 절대 다수가 김의장을 지지하고 있다’라고 장담하는 상황이다. 김의장측은 서울과 전남에서 각각 30%, 전북에서 40%, 나머지 지역에서 절대 다수의 대의원 지지를 확보하면 경선에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고 계산한다. 김의장은 이같은 밑그림을 그려놓고 시간만 있으면 지방으로 달려가 특유의 친화력으로 지구당위원장들을 구워 삶는 중이다. 김총재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김총재를 도와 대통령 선거를 세번 치러 모두 패한 뒤 패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당의 체질을 바꾸는 것도 김총재가 요즘 힘써 하는 일이다. 지난 11월7일 국민회의 당사에는 각층마다 ‘우리는,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플래카드가 일제히 나붙었다. 당의 근무 시간도 1시간 연장되었고, 일직·숙직도 비상 체제로 전환되었다. 모두 김총재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당에 투쟁 의식을 불어넣기 위한 김총재의 처방이다. 그는 자신과 당에 ‘이길 수 있다’는 강한 최면을 걸고 있다.

김총재가 최근 당직자들을 만나면 자주 들려주는 얘기가 있다. 그것은 중국에서 그가 공자묘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이다. 당시 비가 왔는데 안내를 맡은 현지인이 “대통령 선거에서 세번 떨어졌던 미테랑이 대통령 선거를 석 달 앞두고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비가 왔는데, 그는 나중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앞으로 김총재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이종찬 부총재에 의해 국민회의 당보에도 소개되었다. 김총재의 오랜 지지자들조차 그가 뛰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용을 쓰면 뭐하나, 국민이 알아주지를 않는데’라고 자탄하는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김총재의 노력은 비장하기조차 하다.

국제화 시대 ‘최적의 인물’ 이미지 심기

그의 국외 활동은 자신의 강점을 더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 중 가장 국제 사회에서 지명도가 높다는 장점을 활용해 수시로 외국 지도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유권자들의 뇌리에 자신을 국제화 시대에 가장 마음 든든하게 대통령 자리를 맡길 수 있는 인물로 확실하게 각인하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반도 주변 4강 중 중국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남북의 상황 변화 때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중국 방문 때 측근들이 지쳐 떨어질 정도로 강행군하며 중국의 유력 인사들과 접촉했다. 그의 한 측근은 “남북 대치 상황에 결정적인 변화가 올 때 우리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정치 지도자는 김총재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장담한다.

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다른 후보들이 유진산 총재의 낙점만을 기다리는 동안에 발로 뛰어 승리를 거머쥐었던 DJ. 그는 지금 여권 주자들이 김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사이에 맹렬하게 시간을 표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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