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한나라당 새 당사,사무실인지 헛간인지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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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한나라당 새 당사, 냉·난방 전무…기자들까지 ‘생고생’
요즘 열린우리당 당사에서는 화장실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 여의도 호화빌딩에서 영등포 청과물시장 내 폐건물로 당사를 옮긴 지 보름. 그 사이 가장 많은 민원이 제기된 것이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 1층에서는 청과물 경매가 이루어지고, 2, 3층은 농협 사무실로 썼던 이 3층짜리 건물에는 남녀 화장실이 층마다 딱 한 칸씩 있었다. 그것도 좌변기가 아니라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 수세식.
그러다 보니 시도때도 없이 당직자와 기자 들이 화장실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는가 하면, 남녀 화장실 천장 부분이 트여 있어 옆 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한 방송사 남자 기자는 “큰 일을 보고 일어나려다 다리가 저려 꼼짝을 못한 뒤로는 최대한 참았다가 점심 때 주변 식당에서 해결하는 버릇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사정은 당 지도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당사 이전을 진두 지휘했던 남궁석 의원은 지도부 회의 때 “이 건물은 ‘춥고 덥고 싸고’가 해결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라며 미안해 했다. 새 당사는 냉·난방 시설이 전무해서 실내 온도가 싸늘하고 물도 찬물만 나온다. 이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기자들이 종종 눈에 띈다. 지금 쓰고 있는 전력만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해 날씨가 더워져도 에어컨 설치는 엄두도 못 낼 판이다.

당직자와 기자 들을 괴롭히는 또 한 가지 골칫거리는 각종 냄새다. 새로 칠한 페인트로 인한 ‘새집 증후군’에다, 날씨가 좀 흐릿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 탓에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 때문에 당사 곳곳에서 반으로 가른 양파와 숯을 볼 수 있다. 3월25일에는 ‘울금’이라는 약초도 등장했다. 유은혜 부대변인은 “전남 진도의 한 울금농장 주인이 냄새 때문에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내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희색이 만면하다. 당사 임차료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주변 물가도 싼 데다, 새 당사로 옮긴 후 지지율까지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이 당사를 찾아낸 공보실 이은상 부장에게 상을 줄 계획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의 당사 사정은 훨씬 더 열악하다. 3월23일 새로 선출된 박근혜 대표가 옛날 당사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천명한 뒤 한나라당은 여의도 옛 중소기업전시관 터에 천막과 컨테이너로 새 당사를 짓고 있다. 열린우리당처럼 있는 건물을 수리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허허벌판에 새 집을 세워야 하는 탓에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3월27일 현재 현장에는 천막 세 동과 컨테이너 다섯 동이 설치되었다. 천막은 각각 기자실·회의실·종합상황실로 쓰일 예정이고, 양옆에 늘어선 컨테이너 사무실에는 대표실·선대본부장실·대변인실 따위 팻말이 나붙었다. 사무실마다 전등·전화·컴퓨터 선은 끌어다 놓았지만, 냉·난방은 꿈도 못 꿀 처지여서 몇 군데에 석유 난로가 배치되었다.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다 보니 박대표가 현판식을 한 후에도 실제 당무는 이곳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박대표가 아침 회의를 주재할 때만 기자들과 당직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회의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곤 한다. 박대표 역시 비례대표 심사위원장들에 대한 위촉장을 국회에서 주는 등 주로 국회 대표실을 이용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배용수 부대변인은 일요일(3월28일)까지는 이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걸림돌이 남아 있다.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컨테이너는 가능하지만 천막은 사무실로 쓰면 안 된다는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강수 총무국장은 “구청에서는 천막은 차고로만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컨테이너 가지고는 중앙당 인력을 다 수용할 수 없다. 일반 가정에서도 용도는 차고로 하고 불가피하면 공부방이나 사무실로 쓰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영등포구청의 여의도 담당자는 “전기·가스는 기존 선로만 있으면 끌어다 써도 되지만, 천막을 사무실로 쓰는 것은 명백한 불법(건축법 시행령 5조 5항 위반)이다”라며 뭔가 조처가 필요하다는 뜻을 비쳤다. 그렇게 될 경우 천막 당사에서 새출발을 하려는 박대표가 시작부터 불법 시비에 휘말리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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