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출마한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 인터뷰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4.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신임과 총선 연계는 무의미”/“세대 교체 열망이 한나라당 삼킬 것”
‘아리랑의 고장 정선’이라는 팻말이 보이기까지 진부 톨게이트를 지나서도 한 시간 가량이 걸렸다. 인구는 15만명이 채 안되는데, 면적은 강원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태백·영월·평창·정선. 이곳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우광재’로 불리던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을 만나 탄핵 정국과 총선 이후 국정 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는 4월2일 임계-북면-나전으로 이어지는 그의 유세 행군 틈틈이, 이동하는 차안에서 이루어졌다.

스스로 선거운동을 해 보니 어떤가?
스물네 살 때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와 인연을 맺은 후 나 자신을 위해 악수를 하는 건 처음이다. 원래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고, 사람들을 많이 사귀려는 성격이 아니여서 주변에서 많이들 걱정했는데, 유권자들을 만날수록 소명 의식이 더 강하게 생긴다.

왜 출마했나?
회사 취직하면 로비스트라고 할 것이고, 가만 있으면 비선 역할 한다고 공격할 것이고. 그래서 외국 나가려고 했더니 야당에서 특검을 통과시켜 못 나가게 했다. 가만히 있다가 청와대에 다시 들어가도 무방하지만, 그보다는 고향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당당하게 심판을 받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나, 부담이 되나?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다. ‘뭔가 남들이 못하는 걸 잘 해내겠지’라는 유권자의 기대 심리는 유리한 면이지만,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일거수일투족이 다 공개되기 때문에 법의 테두리를 훨씬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부담감이 크다.

노대통령 후원회장인 이기명씨가 이후보 후원회장도 맡았던데.
출마를 결심한 후 후원회장은 절대 명망가를 모시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괜히 폐만 끼치고 부담을 줄 수도 있어서다. 그러고 나서 누구로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회장이 선뜻 해주신다고 하더라.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지금까지 3백만원 구해다 주셨다(웃음).

특검 결과가 무혐의로 나왔다.
마음의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쉽게 치유될지 모르겠다.

썬앤문에서 5백만원을 받은 의혹에 대해서는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문제는 당사자들의 진술부터가 엇갈린다. (썬앤문) 김성래씨는 63빌딩에서 나한테 직접 주었다고 하고, (대통령 고교 후배인) 김정민씨는 맨해튼 호텔에서 자기가 자기 돈이라며 나한테 주었다고 주장한다. 또 처음에는 증거로 천만원짜리 수표가 있다고 하더니 끝까지 내놓지 못했다. 특검에서 내 친인척 계좌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소추인단이 신청한 증인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참 몰염치한 사람들이다. 청문회도 하고 특검까지 한 사안이다. 결국 거짓으로 판명날 일을 가지고 엄청난 국고와 국력을 낭비한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할 생각은 안하고 또다시 탄핵이라니. 수명 1개월도 안 남은 사람들이 4년이나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게 말이나 되는가? 노대통령은 무척 꼼꼼하고 누구보다 준비된 대통령이다. 지난번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4시간 동안 대통령을 만난 후 차에 올라타며 한 첫마디가 “대통령 잘 뽑았는데!”였다고 하더라.
이번 총선은 결국 탄핵심판론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인가?
박정희 시절에 박권상씨가 38세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했고, 고 건씨가 41세로 도지사를 했다. 박씨가 DJ 정권 때까지 KBS 사장을 했으니 이 세력이 지난 3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한 셈이다. 그런데 3김 투쟁과 뒤엉켜 이 보수 세력이 질적 변화를 이루지 못하자 국민들 사이에서 변화를 촉구하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2년 박찬종 후보가 얻은 100만, 1997년 이인제 후보가 얻은 5백만, 그리고 지난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에게 쏠린 7백만 표(단일화 효과)가 바로 그런 변화의 추동력이다. 그런 열망이 지난 1년 노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가라앉아 있다가 대선자금 수사와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폭발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어느 때보다 세대 교체 열망을 담게 될 것이다.

정동영 의장의 60~70대 폄하 발언이 세대 갈등을 겨냥했다는 비난이 있다.
진의가 어떻든 표현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변화의 주역이 바뀌고 있음은 분명하다. 중국의 경우도 기업체 사장들은 홍위병 세대지만, 부사장은 다 미국 유학파가 장악하고 변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전면에 나선 한국의 40대도 좌우 이념이 아닌 실용주의 노선으로 무장한 전문가가 더 많다. 오히려 (학생)운동만 한 사람은 적다.

총선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는가?
수치로 말할 수는 없지만, 민심의 도도한 흐름이 한나라당호를 삼킬 것이다. 그리고 의석 수가 어찌 되든 총선이 끝나고 나면 한나라당 구성원도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1백20~1백30 석을 얻으면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재신임 카드는 상대방을 인정할 때 의미가 있는 얘기다. 탄핵까지 한 마당에 재신임을 총선과 연계하느냐 마느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는가?
국민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대통령이 복권될 경우 집권 2기는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리라고 보는가?
국회가 바뀌면 정부·국회 간에 새로운 협력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입법부가 보충되고 인재 풀이 늘어나면 대통령이 사람을 많이 데려다 쓸 것이고, 야당 신진 세력들과도 자주 만나 국가 발전을 위한 대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또 국회·정부의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될 것이다. 노사 문제만 해도 단계적 이행 방안이 2백 개에 이르는데, 이것이 법으로 만들어지면 정책 추진이 질적으로 달라진다.

야당 의원들을 내각에 발탁할 가능성도 있는가?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야당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국회에 나가 연설도 하고 야당 당사도 찾아가고, 상임위원회 별로 여야 의원들을 초청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노력하면 한나라당 의원들과도 대화가 통하리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박근혜 의원을 장관시키려고 만나기도 했던 것이다.

언제, 무슨 장관을 시키려고 했나?
(갑자기 말 꼬리를 흐리며)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최병렬 대표가 대구에 가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나라당의 속내가 확실히 드러났다. 이젠 다 지난 얘기다(이 대목에 대해 재차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국회에 들어가면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대통령과 참모들이 10년간 연구해온 지역 균형 발전 모델을 내 지역에서 실험하고, 소속 정당을 초월한 의회 모임을 만들어 정부와 건전한 협력 관계를 모색하겠다.

안희정-국회, 이광재-청와대의 역할 분담이 무너졌다. 안씨와는 출마 문제를 상의했나?
아직 면회를 못 갔다. 희정이는 그림자다. 희정이가 (돈 만지는 역할을) 안했으면 나나 누군가가 했을 것이다. 역할이 달랐을 뿐인데, 아픔 겪으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