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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시발은 ''이산가족 상봉'' 프로젝트

김우중→이명박→정재문 순으로 ‘이산 가족 상봉’ 추진 의혹…성과 없자 색깔론 시비로 방향 선회

李敎觀 기자 ㅣ 승인 1998.04.0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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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는 안기부의 북풍 공작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느 정도 연루되어 있을까. 이 의문들은 이른바 ‘이대성 문건’과 권영해씨 자살 기도 사건으로 갈수록 어수선해지고 있는 ‘북풍 정국’의 최대 미스터리이다. 지난 대선 때 안기부의 북풍 공작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로 인해 이득을 볼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였다는 점에서 이 미스터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이대성 파일’에는 이 미스터리와 연관된 내용이 있다.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이 지난 11월 중순 베이징에서 안병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에게 북풍을 일으켜 달라면서 3백60만달러를 건넸다는 대목이다. 물론 정의원은 즉각 이를 부인하고 이 파일을 공개한 정대철 국민회의 부총재를 고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회창 명예총재측도 ‘도대체 어떻게 북한과 짜고 정치적 이익을 도모했을 것이라는 발상을 할 수 있느냐’면서 격앙했다. 과연 그럴까.

<시사저널>이 안기부의 북풍 공작 의혹을 처음 포착한 시점은 지난해 8월 하순이다. 당시 이병기 안기부 2차장 휘하의 한 핵심 관계자로부터 안기부가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남북 이산 가족 상봉’과 ‘이후보 방북’이라는 두 가지 극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시사저널>은 이 정보를 다각적으로 확인한 뒤 북풍을 막는 차원에서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제411호 커버 스토리로 보도한 바 있다.

이회창 지지율 급락한 시점에 프로젝트 수립

이 프로젝트가 수립된 시기는 지난해 8월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시비로 인해 이후보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던 때이다. 당시 청와대와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 등 여권 핵심부는 위기감을 느끼고 안기부와 함께 이후보 지지율을 올릴 방안을 극비리에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여권 핵심부는, 이후보가 남북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국가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하면 지지율을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 프로젝트를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일을 주도한 곳은 어디일까. 북한 당국과 막후 채널을 갖고 있는 안기부가 맡는 것이 상식이지만, 처음에 추진한 곳은 청와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청와대가 지난해 9월13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극비 방북시킨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당시 청와대는 김회장이 남한에서 유일하게 김정일을 면담할 수 있는 인사라고 판단하고, 그를 방북시키면서 남북 이산 가족 상봉 메시지를 김정일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같은 작업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회장이 김정일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김회장과 함께 방북한 부인 정희자 힐튼호텔 회장은 나진·선봉에 이산 가족 상봉 호텔 건립 사업에 대해 북한 당국과 깊숙이 논의하는 등 진척이 있었다. 그럼에도 김회장이 김정일을 면담하는 데 실패하고, 그가 이산 가족 상봉 제안의 수용 조건으로 가져온 ‘선물’을 북한 당국이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안기부가 개입한 시점은 이 때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이대성 파일이 공개됨에 따라 노출된 안기부 특수공작원 ‘흑금성’인 박채서씨(44)의 대북 라인이 가동되기 시작한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흔적은 9월께 당시 신한국당 이명박 의원이 베이징에서 북한 노동당 장성택 조직지도부 제1 부부장을 만나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이 성사될지를 타진했다는 사실이다. 장성택 부부장은 흑금성의 대북 접촉 라인이었다.

최근 의원 직을 사퇴한 이씨가 장부부장과 논의한 내용은, 북한 해금강에 배를 띄우고 그 배 안에서 이산 가족이 상봉하도록 한다는 이른바 ‘해금강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이씨가 장부부장을 접촉한 것은 당시 여권 핵심부의 남북 이산 가족 상봉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지난 1월31일 <시사저널> 취재진과 만났을 때 장부부장과 그같은 사업을 논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후보를 위한 사업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특히 그가 어떻게 장부부장을 만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장부부장은 김정일의 매제로서 막강한 권력자였고, 안기부에서도 그와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공작원은 박채서씨 한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이씨가 장부부장을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안기부가 이산 가족 상봉 프로젝트에 개입하면서 흑금성을 통해 이씨가 장부부장을 만날 수 있게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씨 북한 실력자 접촉에 ‘흑금성’ 개입한 듯

흑금성 박채서씨와 장부부장 간의 채널을 이어주는 인물은 장부부장의 측근인 리철희 노동당 조직지도부 처장이다. 그는 40대 중반으로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에 들어간 뒤 주로 중국 단동과 베이징 등에서 흑금성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남한 정보를 수집해 왔다.

그러나 이씨의 해금강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한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이씨가 국내에서조차 힘이 없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무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씨는 <시사저널>과 가진 접촉에서 ‘당시 사업이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은 장부부장이 지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 봄이 오면 다시 논의해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머지 않아 다시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여권 핵심부는 ‘이명박 작전’이 무산됨에 따라 또 다른 대북 카드를 서둘러 찾기 시작했다. 색깔론 시비나 북한군의 무력 시위 등 부정적 카드를 활용한 역대 정권과 달리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이라는 긍정적 카드로 이후보 지지율을 만회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 인식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이명박 전 의원의 후속 주자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정재문 의원일 가능성이 높다.

정의원이 안병수 조평통 부위원장을 접촉한 시점은 11월20일이다. 시간으로 보아 김우중 회장이나 이명박씨가 남북 이산 가족 상봉 프로젝트에 관여한 다음이다. 당시 정의원이 김영삼 정부의 재미 교포 대북 비선으로 활동했던 김양일 전 재미한인식품상연합회 회장을 통해 안부위원장을 만난 목적은, 대부분 이씨가 장성택 부부장에게 타진했던 북한 당국의 이회창 후보 방북 초청 및 정상회담과 이산 가족 상봉을 위한 것이라고 앞서의 대북 소식통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정의원의 접촉마저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북한이 여권의 제의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한 대북 소식통은, 당시 북한 당국은 한국 대선 판세를 관측한 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서 북한 당국으로서는 남북 이산 가족 상봉 제의 등을 수용해 남한의 여권 후보를 도와주었는데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 오히려 손해가 된다고 판단했음직하다는 지적이다.

안기부는 대선을 코앞에 둔 12월 들어 북풍 공작 방향을 색깔론 시비와 같은 ‘한풍’으로 바꾸었다. 이는 긍정적 카드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안기부는 월북한 오익제씨가 김대중 후보에게 보냈다는 ‘김후보의 당선을 바란다’는 편지를 12월5일 공개했다. 또 서울지검 남부지청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대선 직전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은 재미 교포 윤홍준씨가 김후보를 비방하는 기자회견을 베이징 등에서 하도록 주선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흑금성이 왜 11월 들어 국민회의와 접촉해 북풍 공작을 제보했으며, 왜 국민회의와 접촉한 내용을 안기부에 보고했느냐 하는 점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안기부가 흑금성을 국민회의에 침투시킨 것은 이산 가족 상봉 등 ‘온풍’이 먹혀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김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즉, 나중에 김후보가 당선되어 북풍 공작에 대해 수사하면 흑금성이 이중 간첩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사법 처리를 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물고 물리는 고난도 정치 공작이 집약된 것이 해금강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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