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 “나의 길을 가련다”
  • 徐明淑 기자 ()
  • 승인 199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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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독자 출마 유리’ 판단…민자당 태도따라 말 바꿔 탈 수도
최근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를 둘러싼 정가의 관심은 박찬종 의원의 거취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의원의 민자당 합류 여부는 단순히 한 후보의 거취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공화국 대통령 선거’로까지 불리는 서울시장 선거의 지형을 결정짓는 문제로 확장된다. 즉 여야 후보가 격돌하는 2파전이 되느냐, 여야 후보와 함께 막강한 제3후보가 한판 붙는 3강전이 되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다. 언론과 정치권이 박의원의 거취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다.

박의원의 강력한 부인으로 한때 주춤했던 영입설은 최근 민자당의 서울시장 후보난이 뚜렷해지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난 3월31일 민자당이 광역 자치단체장 경선 후보 신청을 마감한 결과, 서울시장 자리에는 李明博 의원을 비롯한 4명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60년대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어낸 이의원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후보가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히 민자당 안팎의 관심은 ‘외부 영입’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회창·이영덕·정원식 전 국무총리, 이홍구 현 국무총리, 고 건 전 서울시장 등 웬만한 범여권 인사들은 한번쯤 영입 대상 인물로 거명되고 있다. 외부 영입은 아니지만, 이세기 민자당 서울시지부장이 최근 청와대로부터 언질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정치권이 영입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치는 인물은 박의원이다.

그는 시중 여론조사 결과 (23쪽 표 참조)에서 단연 인기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후보감을 가지지 못한 민자당으로서는 당연히 욕심 낼 만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여권 외곽 조직이 은밀히 실시한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여권에서 어떤 후보를 내놓아도 ‘박찬종 카드’보다 유리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잇따른 여론조사에서 서울 시민들은 전통적인 야권 지지 성향이 여전한 데다 성수대교 사고 이후 극심한 민심 이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행정가 후보를 선호하는 민자당으로서도 고육지책으로 ‘정치인 박찬종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정황이 존재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정황은 높은 대중적 인기와 신뢰를 얻고 있는 이회창 카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이회창 카드’는 우선 이 전총리와 껄끄러운 관계인 김대통령의 결심이 선행되어야 하고, 서울시장 출마를 꺼리는 그를 설득해야 하는 등 장애물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다.

경남고 선후배들, 대통령과 다리 잇기 분주

이밖에 김대통령과 박의원의 특수한 인연도 ‘박찬종 영입설’의 한 근거가 되고 있다. 김대통령과 박의원은 부산 경남고 9년 선후배 사이로, 두 사람 사이에는 막강 경남고 인맥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 두루 포진한 경남고 인맥은 대통령 선거 당시 ‘경남이 낳은 두 인물’이 끝내 손잡지 못한 현실을 몹시 아쉬워했다.

지난 2월 ‘청와대와 박의원 교감설’ ‘박의원의 청와대 방문설’ 등이 나돌면서부터 박의원을 민자당에 영입하기 위해 박관용 특보가 나섰다, 최형우 의원이 다리를 놓고 있다,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수 차례 접촉했다는 등 여러 갈래의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민자당 핵심부가 직접 교섭에 나선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김대통령의 경남고 동기 모임인 삼수회를 필두로 경남고 선후배들이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꽤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만일 청와대가 박의원 영입을 구체적으로 시도할 경우, 민자당내 밀사보다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사적인 인맥이 또다시 중간다리 역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박의원 영입을 바라보는 민자당 핵심의 기류에는 다소 편차가 있다.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현철씨 그리고 박관용 특보 등은 박의원 영입에 비교적 적극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수석은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야권 인사 접촉’의 차원에서 박의원을 여러 차례 만났다. 반면 선거 지휘탑인 김덕룡 사무총장은 박의원의 독불장군식 정치 행태와 대권 욕심이 집권당의 장래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박의원 영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당 내의 이견은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나는 대로 곧 해소될 성질의 것이다.

아직은 오리무중인 청와대의 의중과 함께 박의원 자신의 판단은 영입의 또 다른 변수다. 현재 정치권에는 민자당이 구체적으로 영입을 제의해올 경우, 박의원이 끝내 마다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영입설을 적극 부인하면서도 영입설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방치하는 것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려는 계산 때문이 아니냐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박의원 진영은 최근 ‘독자 시민후보 고수’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 첫째 근거는, 박의원 진영의 선거 전략이다. 박의원은 지난 3월 중순 시민 후보 출마를 선언하면서 ‘생활 자치’ ‘주민 자치’ 등 5대 원칙을 내세웠다. 그 핵심을 간추리면, 서울시장 선거는 양김씨의 지역 패권주의에 근거한 중앙 정치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치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선거 구호를 ‘대리자냐 봉사자냐’로 정하고, 선거전의 양상을 양김씨의 대리인과 독립군이 싸우는 구도로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양김 우산으로 들어갈 수 없는 명분을 내세운 만큼, 뒤늦게 민자당 후보로 나설 경우 박의원은 정치 명분으로나 선거 전략으로나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내 표는 반YS 표다”

박의원 진영이 영입을 꺼릴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구체적인 근거는 박의원 지지표의 성향이다. 박의원은 정치권에서는 ‘돈 키호테’ ‘독불장군’ ‘무엇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그런 혹평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박의원이 여론조사마다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배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특히 지난해 신민당 ‘각목 전당대회’가 정치인 박찬종의 이미지와 인기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현상을 불가사의한 일로 받아들인다.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현 정치권을 불신하는 반YS·비DJ 성향의 표가 그에게 몰린다고 파악하고 있다. 정당 개념으로 볼 때는 기성 정당을 철저히 불신하는 정당 혐오층들이다. 좀더 꼼꼼하게 살펴보면, 야당 성향보다는 여당 성향이면서도 뚜렷한 지지 후보나 당을 발견하지 못한 중산층과 여성층, 젊은이들이 박의원을 지지하고 있다고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들은 풀이한다.

박의원 진영에서는 박의원을 지지하는 표를 근본적으로 반YS 성향의 표로 분석한다. 따라서 민자당 간판을 내걸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한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박의원이 여전히 인기 1위 시장감이지만, 민자당 후보로 나설 경우에는 지지표의 23%가 이탈해 박빙의 차이로 이길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정작 박의원 진영은 그 정도 이탈에 그치지 않고,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본다. 실제로 민자당 후보 영입설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면서 박의원 사무실에는 지지자들의 항의 및 확인 전화가 빗발쳐,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민자당 영입설이 이제까지는 박찬종의 주가를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더 계속되면 선거 전략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 박의원 진영의 판단이다. 따라서 머지 않아 박의원 쪽에서는 ‘기존 정당에 입당하지 않는다’는 것과 출마 선언 때 제시했던 ‘후보 연대와 정책연합’을 다시 한번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 근거는, 서울시장 선거의 성격이다. 여론조사 지지도가 아무리 높아도 막상 선거전에 들어가면 정당 후보의 ‘밴드 웨곤 효과’와 유권자들의 ‘사표(死票) 방지 심리’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선거판의 정설이다. 정치권이 박의원의 인기를 ‘거품성’으로 폄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의원의 측근과 가족들은 조직을 업어야 한다는 쪽과 독자 후보를 고수해야 한다는 쪽으로 갈렸다. 그러나 조직 업기를 주장하던 쪽도 최근에는 ‘홀로서기’쪽으로 생각을 바꾼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민자당이 얼마 만큼의 강도로 어떤 명분을 내주면서 영입을 시도하느냐에 따라 박의원 진영의 ‘홀로서기’ 전략에 변화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서울시장 선거는 팽팽한 ‘시민’ 후보가 여야 후보와 경쟁하는 3파전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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