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송 영이 스케치한 지방 선거 풍경
  • 송 영(소설가)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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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무책임과 유권자 무관심 겹친 ‘걱정스런 선거’
풀뿌리 민주주의의 역사적 출발이라는 6·27 지방자치 선거, 그 유세 현장을 몇 군데 찾아가 보았다. 중앙에서는 여야 대변인들이 새로 등장한 정치 이슈들을 놓고 설전이 한창일 때였다. 신문과 방송도 여기에 장단을 맞추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유세 현장에 가 보니 어느 곳이나 너무 적적하고 한가한 분위기였다. 여주군수 후보 연설회가 열린 여주국민학교 정문 앞 어느 식당 여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관심들이 없어요.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유세하는 날 밥장사나 좀 될 줄 알았는데 손님도 없어요. 사람들이 모여야 손님이 들지요.”

여주국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여주인의 말이 실감났다. 청중은 별로 없는데 눈치 빠른 장사치들이 구석마다 천막을 치고 한판 벌여놓고 있었다. 소주·맥주에 각종 청량 음료와 안주거리가 웬만한 구멍가게 뺨치게 잔뜩 진열되어 있고, 화덕과 철판을 가지고 와서 연기를 날리며 고기를 굽고 지지는 적극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에 보답할 고객이 보이지 않아 민망했다. 현장에서 숫자가 제일 많은 것은 입후보자의 운동원들이었다. 네 가지 선거를 치르니까 운동원들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쇼’ 닮아가는 정치와 선거

재미있는 것은 청중과 운동원 사이에 뚜렷한 세대 차가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도 이런 사정은 비슷했다. 유세장 입구에서 요즘 위세를 떨치는 홍보 카드를 배포하는 운동원은 대체로 청년층이거나 30대 부녀자들이었다. 청중석에 자리잡은 사람은 대부분 장년층과 노인뿐이었다. 지방에서는 이 현상이 한층 뚜렷했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유권자의 무관심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무관심은 거의 충격적이다. 명동 거리에서 한 야당 시장 후보가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는데도 멋지게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이 외면하고 가버리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태도에서 지지 여부와 관계없는 무관심을 여실히 읽어 낼 수 있었다. 정치가 시민으로부터 무관심을 유발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젊은 세대의 지나친 무관심은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다.

여주에 비하면 서울 근교인 과천 운원중학의 현장 풍경은 훨씬 세련된(?) 것이었다. 여기에도 적지 않은 노점상이 등장했다. 그러나 소주나 맥주 대신 청량 음료와 과자류가 주된 메뉴다. 이곳에서는 혈색 좋고 씩씩한 청년과 아리따운 아가씨 들을 유난히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순수한 청중이 아니고 자원봉사자로 등록된 운동원들이었다.

후보에 따라 운동원들의 유니폼 색깔이 달랐다. 녹색·남색·분홍색 등 컬러 시대답게 다채롭다. 그들의 성분이야 무엇이든 젊은이들이 있는 유세장은 역시 활력이 넘친다. 그들은 카드를 배포하기도 하고, 소대 규모로 장내를 행진하며 지지하는 후보 이름을 연호하기도 하고, 후보가 등단해서 연설할 때는 박수부대 노릇까지 도맡았다. 그들의 등장으로 장내의 진지한 분위기가 훼손되는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체육대회장에 온 것처럼 재미는 있었다.

정치는 점점 쇼를 닮아가는 것 같다. 하긴 유세장에 연예인들이 등장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정치인보다 연예인을 더 선호하는 것은 확실하다. 여주국교에도 별로 유명하지 않은 개그맨이 나타났다 해서 잠시 소동이 벌어진 것을 보았다. 필자는 끝내 그 개그맨을 구경하지는 못했다.

경험보다 소중한 자산은 없다는 것을 후보들의 연설을 들어 보고 다시 확인했다. 말솜씨로 적임자를 골라내는 것은 아니지만 제한된 시간에 지나친 눌변은 분명 감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구나 새로 성립된 통합선거법의 특징은 ‘돈은 묶어두고 말은 푼다’는 것 아닌가. 다른 때와 달리 비교적 말솜씨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이번 선거에서 경험 많은 사람은 분명 득을 볼 것 같다.

지방 후보들은 대체로 지역과 자기의 깊은 연고, 거기에 따른 자기의 투철한 애향심을 자랑했다. 여주의 한 후보는 자기와 여주의 연고만 늘어놓는 데 제한 시간 대부분을 썼다. 물론 내용 가운데에는 자기가 고향을 위해 그동안 해온 업적이 빠지지 않았다. 경력이 많은 그는 말솜씨가 비교적 수준급이었으나 미래 청사진에 대한 언급이 너무 없는 것이 큰 결점이었다.

어느 후보는 4대가 함께 모여 사는 자기 가정 자랑도 했다. 그는 여주쌀의 주가를 올려놓겠고 컴퓨터 농업을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내용이 비교적 충실했는데 말솜씨가 너무 어눌한 것이 흠이었다. 후보가 내세우는 공약에 관해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믿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이나 농촌보다 도시로 올라올수록 공약은 거창해지고 진실성이 덜 느껴지는 것 같다. 여주와 과천만 비교해도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여주군수 후보들은 비교적 실현 가능한 제한된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과천에 오니 공약이 훨씬 거창해지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 과천 어느 시장 후보는 30분 동안 줄곧 공약만 나열했다. 어찌나 가짓수가 많던지 그것을 다 셀 수도 없고 적지도 못했다.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주차난을 일소하겠다, 도로를 새로 개설하고 넓히겠다, 급수 문제를 완전 해결하겠다, 주택가의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방음벽을 설치하겠다, 주부를 위해 평생교육원을 개설하겠다, 종합 병원을 하나 새로 짓고 보건소도 종합 병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 중고교 교육의 인간화와 활성화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 등등. 처음 등장한 그 후보가 어찌나 많은 공약을 내걸었던지 뒤에 나선 후보들은 공약 부분에서 쩔쩔매는 것 같았다. 공약 독점이라고나 할까.

선거 때마다 공약이 늘 말썽이다. 요즘 신문을 보면 전국적으로 지역개발 공약이 대유행인 모양이다. 지방자치 시대니까 자기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것은 나무랄 수가 없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모든 당선자들이 지역 개발 공약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면 한국은 당분간 전국토가 공사장이 되지 않을까. 지금도 각종 공사로 시달리는 처지인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국민의 의식 수준 경시하는 후보들

일부 정치인의 연설 어조에서는 문제점도 발견되었다. 너무 흥분한 탓인지 이따금 청중에게 반말조 언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초년생들은 이런 결례를 범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른바 고위급 베테랑들에게서 이런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런 사람은 찍어주지 말자 이거야.” “우린 너무도 많이 속아 왔다. 그렇지 않아? 여러분!” 그 사례를 여기 다 옮길 수는 없다. 현장에서 불쾌감을 느낀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어법은 광복 직후에 일부 거물 정치인이 자기 권위 과시용으로 쓰던 것이다. 그 나쁜 전통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것 같다. 서울에서 주로 느낀 것인데, 청중을 마치 선도하는 것 같은 일부 국회의원들의 말투도 아주 고약하게 들렸다. 언어란 정신의 표상이라는 말을 그들 정치인에게 들려주고 싶다.

공약의 허구성을 말했지만, 지방 선거를 앞두고 등장하는 각종 이슈에도 허구성이 도사리고 있다. 공약의 허구성이나 이슈의 허구성이나 모두 정치권이 아직 투표권자의 인식 능력이나 생각을 경시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간평가론과 살림꾼론이 맞물리는데, 이 이슈를 둘러싼 여야의 지나친 설전은 무의미한 것일 뿐 아니라 유권자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는 행위라고 여겨진다.

무관심이 이 선거의 특징이기는 하나 예외가 있다. 서울시장 선거가 그것이다. 친구들이나 이웃 부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시장이 누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늘상 화제로 떠올랐다. 어찌 보면 자기들 살림에 더 직접적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는 구청장이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관심 밖이고, 구의원이나 시의원 후보에 이르면 누가 누군지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어느 후보가 비오는 날 아파트 입구에 서서 비를 맞으며 홍보 카드를 나눠주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그는 건장하고 옷도 잘 입은 호남형이었다. 그러나 이 날만은 어느 신장 개업한 가게를 선전하러 나온 세일즈맨처럼 초라하게만 보였다. 다가가서 보니 어느 당의 시의원 후보였다. 소감을 물었더니 매스컴과 사람들이 시장 후보 빅 3에게만 너무 관심을 보이고 시의원 따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맥이 풀린다고 하소연했다.

어떤 신사가 아파트 상가로 들어와 카드를 내밀기에 자세히 봤더니 그 카드에 얼굴이 나와 있는 구청장 후보였다. 이런 후보는 자원봉사자를 구하지 못했거나 돈이 너무 없어 협력자를 얻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혹은 전술적으로 직접 뛰는 방법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한꺼번에 네 가지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구청장이나 시의원이나 구의원 후보에 관해 전혀 사전 지식 없이 투표장으로 나가는 이상한 선거가 되고 말았다. 인상이 좋은 사람이 뽑힐 수도 있고 이름이 특이한 사람이 뽑힐 것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오갔다. 한 선거의 후보를 평균 다섯 사람으로 가정해도 네 선거의 후보를 합치면 스무 사람이나 되니 그 이름만 기억한다는 것도 보통 사람 능력에는 벅찬 일 아닌가. 하물며 그들의 이력·인격·공약과 생각을 파악한다는 것은 특별한 열정을 기울이지 않는 한 불가능하지 않았겠는가.

홍보 전단에 적힌 자잘한 이력 사항과 공약을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후보 판별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개가 엇비슷한 이력을, 최대한 부풀려서 깨알같이 적어놓은 종이 쪽지를 통해 이들에게 한동안 지역 정치와 행정을 내맡길 근거와 확신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다.

후보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 알리기에 필사적이었다. 이들은 일찍이 텔레비전 같은 데 자주 나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여주에서는 반트럭을 개조해서 양쪽 벽에 도의원 입후보자 사진을 큼지막하게 붙이고 거리를 질주하는 운동원이 있었다. 등에 네모난 쓰레기통을 지고 다니며 거리나 유세장 쓰레기를 주워담으며 카드를 나눠주는 신종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쓰레기통 좌우에 후보 사진을 부착하면 효과 만점일 것 같은데 이건 선거법 위반이라고 한다. 유세장마다 자동차가 만원이었다. 청중이 타고 온 차가 아니라 선거 홍보물을 붙이거나 가득 싣고 있는 선거운동원들 차량이다.

이번 선거는 자동차 선거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동차의 이점을 후보마다 십분 활용했다. 서울 강남에는 자동차 와이퍼를 안테나 식으로 변형해 후보 기호를 와이퍼가 손짓하며 달리는 차량도 등장했다. 다소 괴상하게 보였지만 이 아이디어야말로 이번 선거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어차피 후보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기 불가능하니까 무조건 그 기호를 찍으라는 신호인 셈이다.

누구를 찍어야 하나? 많은 유권자가 투표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도 혼란을 느꼈다. 혼란은 후보를 모르는 데서도 오지만 중앙 정치인들이 날마다 양산해 내는 각종 허구적인 이슈에서도 왔다. 한때 정부는 선거 과열을 지나치게 우려했던 적이 있었다. 그 우려가 타당한 것이었다면, 이번 선거 과정에서 고요와 무관심은 이상적 상황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정치에 관해 지나치게 열기가 식어버렸던 이번 선거의 상황을 도리어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무관심은 공동체 사회에 대한 외면과 그 해체를 예고하는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무관심은 더욱 큰 염려를 자아낸다.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정치는 앞으로 더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치인은 시민 앞에서 더 겸허하고 성실해질 필요가 있다. 무관심과 냉소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정치라 할지라도, 그 냉소의 대상인 정치가 인간사에 미치는 커다란 영향을 감안해서 유권자들도 선거에 좀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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