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돌풍 준비하는 30대 총선 출마자들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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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출신 주축 30대 대거 출마… 연대의식 발판 ‘세대교체’ 주역 노려
<노동자신문> 발행인 이태복씨의 신한국당 입당은 당내 보수파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무산됐지만, 그와 함께 개혁 인사 영입 케이스로 입당 제의를 받았던 문화방송 기자 심재철씨(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는 별다른 저항 없이 당 부대변인으로 안착했다. 이 두 사람에게 입당하라고 제의한 이는, 요즘 신한국당 공천 물갈이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강삼재 사무총장이다. 선배 의원들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강총장조차 당내 보수파들의 견제에 어쩌지 못해서 이씨에 대해서만큼은 두 손을 들고 만 셈이다.

이로써 이 두 사람을 시작으로 재야 또는 개혁 성향의 인사를 대거 영입해 총선에 내보내려던 신한국당 민주계의 전략은 일단 벽에 부딪혔다. 결국 30대 신예 심재철씨만 혼자서 입당한 꼴이 됐다. 아직까지 신한국당 내에서 심씨 입당과 부대변인 임명에 대해서 이렇다 할 반발은 없다. 심씨는, 방송사에 입사하는 과정에서 이미 사상 검증을 거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라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서울역 앞 시위를 주도한 심씨의 신한국당 입당은 이처럼 당내에서는 특별한 잡음 없이 넘어갔지만, 정작 심씨의 변신을 ‘예상 밖의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오히려 다른 당 동년배 세대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심씨는 최근까지 주변 사람들이 ‘낌새’를 챌 만한 일을 전혀 벌이지 않았다. 더구나 심씨는 광주일고 출신이어서 신한국당에 몸을 실을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방송사 기자 생활을 하면서 대표적인 청년 단체인 21세기 전략아카데미에서 운영위원을 맡고 있었다. 현재 이 단체에 소속했던 30대 중에 정치권에 뛰어든 사람들은 대부분 민주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과거 운동권 동료들은 심씨의 변신을 뜻밖의 일로는 생각해도,‘변절’로 보지는 않는다. 그와 절친한 한 운동권 선배는 심씨가 신한국당에 입당한 데 대해 ‘먼 안목으로 평가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당장 ‘학생운동 경력을 팔아 먹었다’는 비판이 요란하게 울려퍼졌을 것이다. 그만큼 모래시계 세대로 통칭되는,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젊은 세대들의 제도 정치권 진입은 이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80년대 학생 운동 주역, 수도권 집중 공략

지난 지방 선거를 전후해 이들은 기성 정치권에 매우 낯선 주제를 던졌다. 이른바 ‘30대 역할론’이 그것이다. 요컨대 광복 이후 그 어느 세대보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독재 운동을 벌였던 30대가 나서서, 3김 정치가 낳은 파행적 구조를 세대적 관점에서 극복해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특히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정치에 전면 복귀한 이후 3김 대립 구도가 더욱 격화되자, 이들 젊은 세대의 정치적 행동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청년 세대 1백50인 선언과 천인 선언이 이어졌다.

상황이 이쯤 되자 기성 정치권이 반응하지 않을 리 없었다. 기성 정치권은 이들 청년 세대가 아군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적군으로 돌변하지 않도록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이러한 청년 세대의 움직임에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DJ는 국민회의를 창당하기도 전에 이들을 만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설득하기도 했다. 간첩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었다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난 허인회씨(전 고대 학생회장)를 영입한 것도 그 무렵이다. DJ는 국민회의 창당 대회에서 “30,40대 젊은 층을 대거 영입해 젊은 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YS 진영에서도 이런 흐름을 주시했고, 주로 민주계 소장파가 물밑에서 이들과 접촉했다. 물론 이들 청년 세대의 주류는 개혁 신당을 거쳐 통합민주당 쪽에 대거 합류했다.

이들이 이번 총선에‘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각당에서 선거 준비에 돌입한 젊은 세대의 면면만 훑어 보아도 이번 총선에서 30대 돌풍이 새로운 선거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선거에 뛰어든 젊은 군단이 수적으로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들 중에는 당선권에 접근해 있는 인물들도 꽤 있다. 만약 지금 정치권에 불고 있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인기가 거품이 아니라면, 15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 젊어질 것이다. 92년 14대 총선 당선자 중에 30대는 국민회의 신계륜 의원(현 42)과 자민련 조일현 의원(현 40) 둘뿐이었다. 14대 국회 최연소자인 이용삼 의원(현 38)은 93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또 다른 특징은 여야를 막론하고 각당이 이들 젊은 군단을 당의 사활이 걸린 수도권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20,30대 젊은 유권자가 표의 흐름을 좌우하는 수도권 선거의 특성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 이 때문에 모래시계 세대의 정치권 진출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동년배 일부에서는“젊은 사람들이 기성 정당 득표 전략의 장식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무튼 현재까지 신한국당 공천이 확실한 30대 대표 주자 세 사람도 모두 수도권에서 출마한다. 이번에 영입한 심재철 부대변인은 안양 동안 갑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상도동 막내 세대이자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김영춘씨(전 고대 총학생회장)는 서울 광진 갑에서 민주당 강수림 의원에게 도전하고, 역시 상도동 막내이자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이성헌씨(전 연대 총학생회장)는 서울 서대문 갑에서 거물급인 국민회의 김상현 의원과 싸운다. 애초에 서대문 을에서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이씨가 옆 지역구로 옮긴 이유는, 야권 거물급과 맞붙여 세대 교체 바람을 일으키려는 당 지도부의 표적 공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모래시계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영입한 허인회씨가 구속되는 바람에, 국민회의는 신한국당의 세대 교체 공세에 다소 애를 먹고 있다. 국민회의에서는 14대 선거 때 나웅배 현 부총리를 상대해 기대 이상으로 선전을 펼쳤던 김민석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영등포 을 공천을 받았고, 정가에 율사 출신 30대 여성 부대변인 바람을 일으킨 추미애씨는 광진 을에서 출마한다. 국민회의는 이 두 사람이 젊은 표와 여성 표를 끌어모으기를 기대하고 있다. 송파 을에 출마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저자 김진명씨도 30대이다.
아직 공천 작업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민주당은 젊은 군단을 대거 투입하는 쪽으로 수도권 선거 전략을 짜고 있다. 사실상 정치권에 진입한 모래시계 세대의 주력군은 거개가 민주당 간판으로 총선에 뛰어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젊은 세대의 주류가 개혁 신당을 거쳐 민주당에 합류하는 정치 경로를 밟아 왔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민주당 젊은 군단은 두 부류로 나뉜다. 80년 서울의 봄 시위를 주도한 김부겸 부대변인(과천·의왕), 이기택 고문 비서 출신인 김용수 부대변인(고양 을), 김찬호 원내 행정실장(은평 갑), 최병권 전 정책실장(안양 동안 갑), 고명석 정책전문위원(마포 갑) 등이 30대 당료 출신이고, 개혁 신당 신형식 부대변인(노원 을), 장신규 젊은 연대 공동대표(마포 을), 황이수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안산 갑), 이재경 전 고대 부총학생회장(동대문 갑)이 최근 합류한 젊은 군단의 대표 주자이다.

자민련은 다른 정당에 비해 30대의 비중이 덜한 편이지만, 여기에도 몇몇 눈에 띄는 인물은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약하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심양섭씨가 경기 군포에서, 전 광운대 총학생회장 장 일씨가 서울 도봉 을에서 각각 출마한다.

“당적은 달라도 우리의 지향점은 하나”

민주당에 압도적으로 몰려 있기는 하지만 선거판에 뛰어든 모래시계 세대는 이처럼 각 정당에 고루 퍼져 있다. 그러나 당에 대한 이들의 소속감은 매우 약한 편이다. 오히려 이들은 소속 정당에 상관없이 30대의 정치세력화라는 ‘또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편 정당에 들어간 과거 동료를 향해 선배 세대들처럼 삿대질을 하지는 않는다. 당은 달라도 선거판에서 30대 바람을 일으켜 서로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내자는 것이 요즘 이들의 생각이다. 일부에서는 아예 ‘4당에 흩어져서 그럴 게 아니라 공동 선언문이라도 내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다가도 당을 달리하면 원수지간이 되고 마는 기성 정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상이다. 기성 정치권에 집단적으로 도전을 감행하고 있는 모래시계 세대는 이번 총선에서 이러한 ‘이질적인 꿈’을 시험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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