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계 ‘분가’ 이사철 왔나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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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혁 의원 민자 탈당, 선거 이후 난기류 예고…‘당을 烹 하는’ 의원들 꼬리 물 듯
인천시장 후보 경선을 주장하며 민자당 지도부와 대립했던 강우혁 의원이 4월20일 민자당을 탈당하고 자민련에 입당했다. 전날 민자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공천과 관련해 잡음을 빚고 있는 인천·경기 등 5개 지역의 광역 단체장 후보 결정을 유보했으나, 강의원은 당의 최후 통보를 기다리지 않고 당을 뛰쳐나갔다. 그는 자민련에 입당하면서 “내가 민자당을 먼저 팽(烹)해 버렸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강의원의 탈당을 애써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기색이다. 21일 민자당 이춘구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나 나는 계파와 관계없이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후보를 결정하고 있다. 강의원의 탈당을 민정계 의원들 사이에 퍼져 있는 불만의 표출로 봐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후속 탈당자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김덕룡 총장도 이와 관련해 “당내에 이견이 있으나 심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 지도부의 희망 사항일 따름이다. 현재 민자당에서 당 지도부의 얘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당내에서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들이 떠돈다. 강의원의 탈당을 즈음해 민자당 내에서는 느닷없이, 강의원과 마찬가지로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을 주장하며 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임사빈 의원이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를 만났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직자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종종걸음을 쳐야만 했다. 임의원이 민주당 이총재를 만난 일이 없고, 지금은 당의 결정을 관망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혀 소동은 가라앉았지만 당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하다.

충청권 등 일부 지방의원들 속속 이탈

사실 ‘후속 탈당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이춘구 대표가 장담하기 전부터 민자당을 탈당하는 인사들은 줄을 잇고 있는 형편이다. 강의원이 탈당하기 전 문희갑 전 의원, 주병덕 전 충북지사, 이판석 전 경북지사, 윤석조 서주산업 회장(충북) 등이 민자당 공천에 대한 불만 때문에 또는 무소속 출마를 위해 당적을 버렸다. 또 3선 경력인 김현규 전 의원이 다음 총선 때 대구에서 출마하기 위해 민자당을 떠났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영향력 아래 있는 충청권의 민자당 소속 지방의원들이 속속 자민련에 입당하고 있으며, 일본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이 대거 당선한 데 자극을 받은 다른 지역의 일부 지방의원들도 심심치 않게 민자당에 탈당을 통보해 오는 상황이다.

강의원이 탈당한 이후 가장 주목되고 있는 곳은 후보 결정을 유보한 경기와 경기 지역이다. 경기도에서는 이인제·임사빈 의원과 정동성 전 의원 등 5명이 도지사 후보 경선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민정계인 임사빈 의원과 정동성 전 의원은 당 지도부가 경선 없이 민주계인 이인제 의원을 낙점할 경우 탈당을 불사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지부장을 맡고 있는 이한동 국회부의장은 18일까지 제출하게 돼 있는 도지부 운영위의 후보 공천에 관한 의견서 제출을 미루며 고심하다 강의원이 탈당하자 이인제·임사빈 의원만의 제한 경선 쪽으로 마음을 돌린 상태이다. 만약 당 지도부가 경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임사빈 의원과 정동성 전 의원이 탈당하고 민정계 중진인 이부의장과 당 지도부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강보성 전 의원과 우근민 전 지사가 민자당 후보 자리를 놓고 각축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한때 강보성 전 의원 쪽으로 기울었다가 지금은 주춤한 상태인데, 이 지역에서도 경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우 전지사가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 강의원이 탈당한 뒤로 당 지도부가 공천을 둘러싼 갈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당을 떠나는 사람이 꼬리를 물 수 있다.

물론 일부 민주계 의원들의 얘기대로 강의원의 탈당이 반드시 지방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하리라고 볼 수만은 없다. 강의원은 사실 일찌감치 탈당함으로써 민자당을 도와준 측면도 없지 않다. 강의원의 탈당은 어떤 면에서 민자당에게 후보 공천을 둘러싼 계파간 갈등을 봉합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수습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최근 당 중진들과 연쇄 접촉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강의원의 탈당으로 인천시장 선거에서 민자당이 불리해졌다고만 볼 수도 없다. 강의원이 자민련 후보로 출마하면 선거는 강의원과 민자당의 최기선 전 시장, 그리고 민주·신민 두 당의 통합야당 후보로 유력시되는 한영수 의원의 3파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강의원이 여권 표를 잠식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야당 후보 2명과 여당 후보 1명이 각축을 벌이면 여당 후보가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경선을 둘러싼 민자당의 갈등이 봉합된다 해도 강의원의 탈당은 지방선거 이후 민자당의 앞날이 결코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김종필씨를 포함해 민자당을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발로 나갔다기보다는 쫓겨났다고 보아야 옳다. 그들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당을 떠났다. 그러나 강의원은 `‘선제 공격’을 했다. 그는 평생을 여권에서 살아온 사람답지 않게 공격적이었다. 자기 말대로 그는 민자당을 먼저 ‘팽(烹)’해 버렸다.

강의원이 후보 경선 도전장을 내밀기 전까지만 해도 민자당 내에서는 인천시장 후보를 결정하는 데 시비가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김대통령의 오랜 가신인 최기선 전 시장은 이미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선거 준비에 착수한 상태였다. 그는 구마다 개인 사무실을 두고 지역의 선거 전문가들을 끌어들여 지역에서는 “최기선씨가 가용할 인력을 싹쓸이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최 전시장은 사실 그동안 많은 자금과 정력을 투자한 상태이기 때문에 물러날래야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민자당 지도부로서도 그런 그에게 민정계 대의원들이 다수인 인천시지부 경선에 참여하라고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민정계 다수 ‘동조’ 분위기

강의원은 그런 사정을 훤히 알고 있으면서도 경선을 하자고 버텼다. 그는 그때 이미 탈당을 결심하고 경선을 주장한 것 같기도 하다. 강의원의 탈당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숨을 죽이고 있던 민정계가 자기 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강의원은 탈당하면서 민자당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는 “과거 야당 식의 수법, 뒤에서 음해하고 인신 공격을 하는 작태에는 이제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92년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이종찬 후보를 밀었던 그는 “그 이후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었다”고 얘기했다. “재산 공개 때 아무 근거 없이 경고 대상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언론 플레이를 하다가 실사를 해보고 입 다물고 있더니, 이번에 경선 후보 등록을 하자 다시 뒤에서 그 문제를 거론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또 정치 보복을 생각하지 않고 있으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한 측근은 “평생을 살아도 적은 적이고 동지는 동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는 얘기도 한다. 민정계 소외 그룹들은 15대 총선에서 물갈이될 것을 예감하고 마음을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제 여당 사람의 생리를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지방선거 후 민자당 의원들의 대거 탈당설은 설로만 그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민정계 소외 그룹이 탈당하리라는 것은 사실상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강의원의 처신에 대해 민정계 다수가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인천시장 후보 경선 문제가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사실 인천의 지역구 의원 다수가 당 지도부의 의중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김윤환 정무장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민정계 다수의 정서는 당을 뛰쳐나간 강의원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강의원 탈당 그 자체보다도 강의원 탈당을 통해 드러난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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