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처남들 “누님 부부는 냉정해”
  • 안철흥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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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변변한 직업 못 가져…이형택씨 사건에 “믿기지 않는다”
이희호 여사 집안은 대식구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나왔고, 우리나라 의사 면허 4호인 이여사의 부친 이용기씨는 6남2녀를 두었다. 이여사는 이 중 넷째이자 장녀이다. 위로 오빠 셋이 있으며, 아래로 여동생 한 명과 남동생 셋이 있다. 오빠들 가운데 증권업협회장을 지낸 첫째 강호씨와, 의사로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후보의 주치의를 지낸 둘째 경호씨는 별세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59)는 큰오빠인 강호씨의 차남이다. 이형택씨는 조카들 중에서도 이여사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으로 꼽힌다. ‘DJ의 처조카’로, 이형택씨보다 먼저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은 이영작 한양대 석좌 교수(60)다. 이교수는 이여사의 둘째 오빠인 경호씨의 아들이다. 이형택씨와는 사촌간.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한 영작씨는, 미국 정부의 통계 기관에서 책임자로 일했던 통계 전문가이다. 그는 1985년 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 직을 물려받을 정도로 DJ의 신임을 받았다. 이후 대통령 선거 때마다 그는 여론조사를 하고 선거 전략을 짜며 ‘고모부’를 도왔다.


형택·영작 두 ‘처조카’ 빼고 친정 식구 모두 평범


이들 두 ‘처조카’를 빼면, 이여사의 친정 식구들은 대부분 평범하게 살고 있다. 생존 인물 중 유일하게 이여사의 손위인 태호씨(82)는 수십 년간 서울 신림동에서 살고 있다. 일본대학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국내에서 방직회사 임원을 지냈지만, 1970년대 초반에 ‘퇴직 당한’ 이후 지금껏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동네 사람들조차 그가 대통령 처남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고 한다.


이여사의 바로 밑 동생이, 김대통령이 야당 시절 자주 이용했던 ‘목동 안가’의 주인인 이른바 ‘목동 처제’ 이영호씨(78)다. 영호씨는 이여사의 친정 식구 중 거의 유일하게 형부와 언니를 무시로 만날 수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김대통령이 노르웨이에서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할 때도 김대통령의 며느리들과 동행했다. 남편과 사별했으며, 거둘 사람이 없는 ‘깨끗한 주위 환경’이 청와대 출입을 자유롭게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평이다.




그 밑으로 남동생 셋이 있다. 상호(76)·철호(74)·성호(70) 씨가 그들. 이상호씨는 서화와 골동품을 취급하는 고미술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서울 종로4가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데, 주변에 사람이 꾄다는 말을 듣고 있다. 지난 총선 때 서울 종로에 출마했던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측근은 당시 상호씨와 함께 다니던 몇몇이 돕겠다고 찾아오기도 했으나 돌려보낸 일이 있다고 말했다. 상호씨는 지난해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을 타기도 했다. 강원랜드 김광식 사장에게 인사 로비를 해 사위인 이 아무개씨를 강원랜드 서울지소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이철호씨는 중령으로 예편한 뒤, 30여년 동안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은 채 소일하고 있다. 그러나 물려받은 재산으로 경기도 용인에 사놓은 땅값이 뛰어, 상당한 재력가라는 평. 5남1녀 자식 가운데 3명이 대학 교수이다. 집권 전에는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녔으나 집권 후 구설에 오를까 봐 팔아버렸다. 현재는 ‘11호 자동차’(걸어다닌다는 뜻)를 타고 다닌다.


그도 광화문 ㅇ빌딩 3층에 20평 남짓한 사무실이 있다. 한달 임차료가 70만원으로 주변에 비해 싸게 얻었다. 그 또한 주변이 복잡하다는 말을 듣는다. 청탁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정권 초에는 부도 위기에 몰린 영남의 한 건설업체가 그에게 구명 로비를 펼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별반 효과는 거두지 못했던지, 이내 부도 처리되었다.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 김의경씨는 “대통령의 처남이라고 하지만, 실상 정권 쪽에 줄 닿는 데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희호 여사의 막내 동생인 이성호씨는 올해 일흔이다. 여섯 살 때 부모를 여의었기 때문에 이여사가 직접 키우다시피 한 동생이다. 때문에 형제 중 이여사와 가장 가깝다.
성호씨는 6·25 직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아예 정착했다. 워싱턴 한인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오랫동안 여행사를 경영했다. 그러나 DJ의 처남이라는 사실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 대사관에서 교포들을 위협해 여행사 이용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사업을 접었고, 그 여파로 지금껏 부인과 별거 중이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국한 그는, 현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펙스평화관광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직원 7명에 연 매출액은 20억원 정도다. 경상비를 제하고 나면 순익은 거의 없다는 것이 성호씨의 말이다.

민주당에서 종종 이용했으나, 지난 총선 때 ‘물갈이’가 많이 된 이후로는 이용률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교동계 인사들은 변함 없는 단골이다. 최근 하와이로 출국한 권노갑씨도 이 여행사를 이용했다. 성호씨는 현재 서울 마포에 보증금 3천만원에 월 100만원씩 내는 월세 아파트를 얻어 혼자 살고 있다.


“예전엔 경찰, 요즘엔 청와대 감시 받는다”




이들 형제들은 매달 한 번꼴로 가족회의를 연다. 서울 시내 식당에서 주로 모이는데, 형제들끼리 5만원씩 거두는 ‘더치 페이’를 한다. ‘목동 처제’가 형부나 언니의 당부와 걱정을 형제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그럴 때면 가끔 ‘매형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사사건건 간섭이냐’는 불만이 터지기도 한다고. 얼마 전에는 상호씨가 중간에 일어나서 나가버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 형제들은 피해 의식이 매우 강하다. 미국에서 살았던 성호씨를 빼면, 1970년대 이후 이들 형제 중 누구도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 성호씨는 “야당 때는 경찰의 감시를 받았는데, 대통령이 된 뒤에도 여전히 청와대의 감시를 받고 산다”라고 말했다. 이형택씨 사건이 터진 직후에도 이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전화 한통씩을 받았다. ‘행동에 각별히 조심하라’는 누나의 당부였다. 철호씨는 “누님이나 매형 모두 냉정한 사람이다”라고 평했다. 매년 정초의 가족 모임을 빼면 지난 4년간 한번도 부르는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랬는데도 이형택씨가 엄청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데 대해 이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이철호씨는 “믿기지 않는다”를 연발했고, 성호씨도 “안타깝다. 성실했던 사람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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