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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승박덕’한 자의 몰락

추적 ‘김희완의 삶’/정치 입문 이후 권력 좇아 ‘갈지자 행보’

이숙이 기자 ㅣ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6.03(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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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신문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해 도피했다가 39일 만에 검거되어 구속되는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 부시장(46)이 5월24일 구속되었다. 김씨는 김홍걸씨와 최규선씨, 타이거풀스 대표 송재빈씨, 포스코 유상부 회장과 수시로 만났고, 최씨 구속 직전 최성규 전 총경과 함께 대책회의도 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규선씨가 이회창 후보측에 2억5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얘기도 김씨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송재빈씨 주장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의 초점은 김씨가 최규선 게이트의 막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모아질 전망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김희완이라는 인물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홍준표·이회창 등 거물급과 맞붙었던 후보’ ‘조 순 서울시장 때 정무 부시장’ 정도면 아주 많이 아는 경우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꽤 일화가 많은 인물이다. 생존하는 거물 정치인을 다 모셔본, 변화무쌍한 행로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와 등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젠가 나라를 한번 들썩이게 만들 위험한 인물’이라는 평도 나왔다. 어쨌든 이번 최규선 게이트를 계기로 김씨는 전·현직 대통령 아들 구속에 직·간접으로 연루되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게 되었다. YS 차남 김현철씨 구속의 도화선이 된 1996년 가을의 이른바 ‘쩔룩쩔룩 발언’(현철씨가 장애인인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을 비하한 발언)을 녹음하게 만든 사람도 김씨였기 때문이다.


김씨가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대통령 아들들의 몰락에 연거푸 등장하는 것일까. <중앙일보> 기자를 지낸 김씨는 1985년 당시 신민당 이민우 총재의 공보비서로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회사 선배였던 홍사덕 의원의 추천을 받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YS·DJ 아들 구속에 모두 연루


1987년 대선에서 그는 김영삼 후보의 공보 비서를 맡았다. 박경식씨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 때다. 당시 YS 주치의였던 박씨는 김씨를 ‘열심히 일했지만 아직 서툴렀던 비서’로 기억했다. 한 예로 기자실 부스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기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형 이미지에 깍듯한 매너가 몸에 밴 그는 거친 야당판 중진들에게 ‘반듯한’ 젊은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지구당을 카페처럼 만들자’ ‘도우미를 쓰자’는 반짝 아이디어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1990년 3당 합당 때 그는 YS와 결별했다. 홍사덕 의원을 따라 민주당에 남은 것이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예의 바르고 아이디어가 많은 정치인’으로 기억하는 김씨에 대한 이미지는 이 꼬마 민주당 시절 형성된 것이다.


김씨는 1992년 총선에서 ‘젊은 피 수혈’이라는 명목으로 이기택 대표의 공천을 받았다. 홍사덕 의원 바로 옆 지역구를 배정받아 이른바 ‘수도권 개혁 벨트’ 전략을 구사한 것. 하지만 그는 국민당 조순환 후보에게 1천9백79표 차로 석패했다. 새벽 4시까지 김씨가 앞서갔으나 조순환 후보가 살던 아파트 투표함에서 몰표가 나오는 바람에 막판 대역전극이 벌어진 것이다.


정가에서는 이 때의 패배가 이후 김씨의 행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한다.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권력의 문턱에서 좌절한 경험이 ‘조금만 더 하면 될 텐데…’ 하는 집착을 낳았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이후 물불 안 가리고 권력을 좇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1992년 대선 때 김씨와 DJ 선거운동을 함께 했던 한 민주당 고위 인사의 증언이다. “김씨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사생활에 대한 자료를 가져와 선거전에 써먹자고 했다. 한때 자기가 모시던 보스의 비밀을 새 주인에게 꼬아바친 것이다. 하지만 ‘나야 정치를 할 만큼 했지만, 자네들은 앞길이 창창한데 어쩌려고 그러는가’ 하며 DJ가 거부해 무산되었다.”





ⓒ 연합뉴스
김희완씨는 국회의원 선거에 세번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박경식 “김희완은 정치인 아닌 브로커”


1995년 조 순 서울시장 당선을 이끌어낸 그는 이듬해 국민회의 후보로 서울 송파 갑 선거에 재도전했다. 그러나 ‘모래시계 검사’로 바람을 일으킨 홍준표 후보에게 9천여 표 차로 크게 패했다. 이때부터 그는 홍의원의 선거 사무장을 집요하게 설득해 결국 홍의원의 부정 선거 혐의를 폭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법원의 무혐의 처리.


김씨가 YS와 갈라서면서 뜸했던 박경식씨를 다시 만난 것이 바로 그즈음이다. 1996년 5~6월께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김씨는 홍의원에 대한 재정 신청이 어떻게 하면 받아들여질까 궁리 중이었고, 박씨는 자신과 소송 중인 벤처 기업 메디슨을 현철씨를 비롯한 정권 실세들이 밀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그 해 10월22일 김씨는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과 박씨의 병원으로 찾아갔다. 메디슨에 관한 자료를 구하러 간 것이다. 마침 YS 주치의인 고창순 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시 김희완씨는 내게 질문을 써주며 고박사와 대화하도록 유도한 뒤 이를 녹음했다. 이날 김씨는 현철씨로부터 오는 전화도 모두 녹취하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따랐다”라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이렇게 해서 녹음된 것이 현철씨가 이성재 의원을 비하한 발언이다. 이 발언에 이어 YTN 인사 개입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현철씨는 결국 구속되었다.
김희완씨가 구속되던 날 병원에서 만난 박씨는 김씨를 ‘정치인’이 아닌 ‘브로커’라고 비난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은혜고 뭐고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김씨는 현철씨와 협상해 재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데만 쓰겠다며 테이프를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하지만 일단 테이프를 가져간 후에는 ‘줬으니 내 맘이다’라는 식으로 발뺌했다. 나는 김씨가 정무 부시장이 되고 결국 재정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도 이 테이프 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정에서 그는 나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서슴지 않았다.”


테이프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어쨌는지 김씨는 DJ 정권 들어 서울시 정무 부시장에 올랐다. 정치권에 들어간 지 13년 만에 제대로 된 월급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불운은 계속되었다. 노력 끝에 따낸 1999년 6·3 재선거에 출마하려던 그는 송파 갑이 공동 여당인 자민련 몫으로 돌아가자 발 빠르게 자민련에 입당해 공천을 따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상대 후보로 나선 데다 때마침 터진 옷 로비 파문으로 여권 지지도가 급락하는 바람에 세 번째 도전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국회의원의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16대 총선을 두달 남짓 앞둔 2000년 2월 홍사덕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전국구 의원 직을 얻지 못하자 두달 만에 탈당했고, 다시 두달도 안 되어 최고위원 출마를 준비하던 권노갑 민주당 고문의 참모로 들어갔다. 김씨가 최규선씨와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된 것은 이때부터로 알려진다. 일찌감치 권력의 맛을 보았지만 스스로는 권력 획득에 실패한 두 사람이 극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최규선 비리를 폭로한 천호영씨는 “김희완씨가 돈이 될 만한 일을 물어오면 최규선씨가 홍걸씨를 팔아 돈을 거둬들였고, 이를 똑같이 나눠 가졌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술자리가 잦고 돈 씀씀이가 큰 대신 김씨는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스타일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재선거 직후 무일푼이었던 김씨는 현재 100억원대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다. 검거 직후 그는 돈을 모은 이유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돈 없는 상태에서 선거에 한번 떨어져 보라”고 답했다. 선거가 그의 삶에 치명적인 ‘독약’이 되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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