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권력 뛰어넘은 DJ 정권 ‘숨은 두뇌’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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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환 총리서리, 1998년부터 정책 입안에 영향 미쳐
'장대환 총리서리’는 정권 말기라는 상황과 국회의 인사청문회 등을 의식해 정권 핵심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이다. 여성인 장 상씨를 총리서리로 임명했다가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아 곤욕을 치른 김대중 대통령은 두루 원만한 인물로 ‘장대환 카드’를 선택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같은 경기고 출신으로 <매일경제> 사장을 지낸 그는 정치권과 언론계에 발이 너르다.





실제로 장총리서리 임명 이후 한나라당은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고 있고, 유력 언론에서는 그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배경에는 장총리서리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절친하고 <동아일보>가 <매일경제>의 배달을 맡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언론계 주변의 분석이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언론계 일각에서는 장총리서리가 <매일경제>(매경)를 조선·중앙·동아에 견주는 매체로 성장시킨 과정에 주목한다. 즉 매경의 급성장은 기자들을 광고 수주에 나서게 하는 등 사업을 위주로 하는 경영을 펼쳤고, 현정권의 경제 정책을 적극 홍보한 데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다.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런 시각을 의식한 듯 장총리서리가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국제 감각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장총리서리가 김대통령을 처음 만난 때는 1988년으로 알려졌다. 당시 평민당 총재이던 김대통령이 인사차 각 언론사를 방문할 때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김대통령과 접점을 넓혀간 것은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이다. 1997년 말 그는 절친한 관계인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 등과 호흡을 맞추어 김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 만든 대통령 비상경제대책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장씨의 ‘지식 강국’=DJ의 ‘지식 기반 경제’



장총리서리가 김대통령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은 계기는 1998년 12월2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두뇌 강국 국민 보고대회’였다는 것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말이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원래 그 행사에 잠깐만 참석하려 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영상 화면에 배우 장미희씨와 ‘번개’ 조태훈씨 등이 ‘신지식인’으로 소개된 뒤 ‘진짜 지식인은 김대중 대통령입니다…’라며 10여 분간 김대통령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이 날 김대통령은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 행사 내내 자리를 지켰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신문사가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김대통령은 그후 신지식인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김대통령은 보고 대회가 끝난 얼마 뒤 신지식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는데, 이들의 명단은 매경이 청와대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장총리서리가 ‘세계 지식 포럼’을 개최하면서 주장한 ‘지식 강국’은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국정 운영 기조의 하나인 ‘지식 기반 경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는 이 포럼에 참석한 빌 게이츠 등 유명 인사들이 김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 동석하면서 김대통령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여성들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우먼코리아 보고서>를 만들어 여성부 창설에 일조하기도 했다.






매경에 오랫동안 근무한 세종대 허행량 교수는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이 한 언론사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경영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라고 분석했다. 매경의 한 전직 논설위원은 장총리서리가 주장한 것은 현정부 정책의 막후 뼈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장총리서리의 두드러진 활동은 당연히 정치권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간부회의에서 ‘문화관광부장관을 하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작성했던 이른바 ‘젊은 피’ 명단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고, 지난 7월11일 장 상 총리서리가 임명될 때도 그의 이름이 총리 후보로 오르내렸다.



그러나 현정권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은 반작용도 불렀다. 지난해 6월 있었던 언론사들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 때 경쟁지인 <한국경제>의 기자는 “모 경제신문사 대주주의 주식 이동 과정에서 탈법이 있었다는 신빙성 있는 제보가 국세청에 접수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라며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계에는 ‘매경이 정권과 친밀한 관계를 이용해 고발 대상에서 빠졌다’는 말이 파다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스스로 추징액을 밝혔으나 매경은 얼마를 추징당했는지 아직까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야당과 언론계 단체들은 장총리서리가 임명된 막후에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다고 의심한다. 그가 장총리서리를 내세워 수렴청정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은 8월9일 성명을 내고 ‘이번 인사의 배후에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의 정치적인 의도가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인사청문위원인 이원창 의원은 ‘장대환 카드’가 박지원씨 작품이라고 단언했다.



장대환-백인호-박지원 3자 관계 주목할 만



장총리서리와 박실장은 1970년대 후반 각각 유학생과 사업가로 뉴욕에서 거주했던 적이 있어 이때부터 안면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언론계에서는 장대환-백인호-박지원 3자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매경 편집국장과 매경TV 상임 고문을 지내고 YTN 사장을 하는 백씨는 장총리서리의 부인인 정현희씨의 고모부뻘 되는 인척이다. 또 백사장과 박실장은 목포 문태고 선후배 관계이다.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이 아들인 장총리서리의 정치적인 후원자 역할을 한다는 말도 있다. 전남 나주 출신인 그는 국회의원과 전남향우회장을 지내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장지량씨는 현정권 들어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군사학회장이다. 2000년 11월 매경 신사옥 개관식에 참석한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이 “아버지인 장지량씨를 보고 이 자리에 왔다”라고 말한 것은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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