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PK, 함께해요 TK”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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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부산·경남 출신 ‘티 나게’ 중용…PK 잡고 TK 얻는 ‘북진 정책’ 추진
"노무현이 당선되면 그건 민주당 정권이 아니라 영남 정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영남에서 유세할 때마다 소리 높여 강조한 대목이다. 그때만 해도 영남 사람들은 이런 호소에 코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뚜껑이 열린 이후 영남, 특히 부산 지역 민심은 확실히 달라졌다. 청와대와 내각의 요직에 부산·경남 출신이 대거 진출하면서 ‘영남 정권 맞네!’ 하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만 해도 비서관급 이상 참모 가운데 10명 가량이 노대통령의 부산사단 출신이다. 요즘 대통령의 형 문제에서부터 검찰 개혁, 고속철 민원에 이르기까지 ‘해결사’로 투입되고 있는 문재인 민정수석을 비롯해 이호철 민정1 비서관·최도술 총무비서관·박재호 정무2비서관·안봉모 국정기록비서관이 대표 선수이다. 부산 선대위원회가 추천한 몇몇 행정관급 인사도 비서실 곳곳에 포진했다.



내각에서는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을 필두로 진대제 정통부장관·허성관 해양수산부장관·박봉흠 기획예산처장관이 PK 출신이다. 국무위원 20명 가운데 부산·경남 출신이 넷, 대구·경북 출신이 넷으로 영남 출신이 전체 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여기에 역시 부산 출신인 조영동 전 <부산일보> 총무국장이 국정홍보처장에 내정된 데 이어, 최근에는 국정원장에 신상우 전 의원이 내정되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신씨는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로서 대선에서 부산상고 인맥을 묶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국정원장에 여러 사람을 추천했지만 노대통령의 의중이 이미 신씨에게 있었다. 최근 김원기 고문과 정대철 대표, 문희상 실장이 의사를 타진했는데, 신씨는 ㄱ씨와 함께 들어가는 조건으로 수락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부산 출신이 대거 요직에 진출하면서 이른바 서울팀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서울팀은 경선 때부터 노대통령을 보좌한 비영남권 참모진을 총칭하는 내부 용어. 청와대 한 고위 인사는 사석에서 ‘부산 출신이 겁나게 밀고 들어온다’며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호남 출신인 정순균 전 인수위 대변인이 국정홍보처 차장에 기용된 것도 부산 출신 처장을 견제하기 위해 서울팀이 적극 천거한 결과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민주당·호남 인사 “죽 쒀서 개 줬다”



아닌 게 아니라 민주당과 호남 지역에서는 ‘죽 쒀서 개 줬다’는 상실감이 적지 않다. DJ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어찌된 게 영남 사람들은 저렇게 자기 지역 사람을 끌어다 써도 아무 비판이 안 나온다”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호남 출신인 민주당 간부는 그나마 정찬용 인사보좌관이 버티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인재를 물색하는 자리에 호남 출신을 절묘하게 배치한 덕분에 호남 민심을 이 정도에서 잠재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은 왜 내부에서 걱정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산·경남 출신을 전진 배치하는 것일까. 우선 노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꼽을 수 있다. 가능하면 자기가 직접 검증한 인물을 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노대통령의 고향이자 정치 기반인 부산·경남 인맥이 발탁된 것이다. 노대통령에게 부산 인맥은 클린턴의 ‘아칸소 사단’과 같은 셈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티 나게’ 부산 인맥을 중용하는 더 큰 이유는 내년 총선 때문이라는 것이 내부 설명이다. 한 참모는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자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 중 부산 민심을 얻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썼다. 하지만 대부분 부산 아시안게임 지원이나 선물거래소 이전 같은 정책 차원의 접근이었다. 그러나 부산 민심은 인사라는 감성적 요소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2000년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들이 ‘중앙 부처에 PK 출신 1급이 있으면 그건 천연기념물이다’라고 외쳤는데, 그것이 먹혔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은 노대통령이 우선 PK 출신을 대거 발탁하는 것으로 부산 민심을 무장 해제하려 한다는 얘기다.



이런 ‘부산 우대 작전’은 지난 대선 때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부산에 아무리 신경을 써도 성과가 없지 않느냐며 시큰둥했지만, 노대통령은 국민참여운동본부를 부산으로 옮기고 정동영·추미애 의원을 상주하도록 하는 등 달걀로 바위 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노대통령이 영남 출신을 중앙에 뽑아 올리는 동시에 틈만 나면 ‘지역 언론과 지역 대학, 지역 경제계가 삼각 네트워크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주목하라고 주장했다. 노대통령은 이 삼각 네트워크 체제를 활성화해 총선에 출마할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변화의 새 바람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조성래, 부산 총선 이끌 ‘투톱’



부산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인 정윤재(83학번)·최인호(85학번)·송인배(87학번) 씨 등 부산에 남은 노무현사단에 그런 임무가 부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각각 부산 사상지구당, 해운대·기장지구당, 경남 양산지구당을 맡아 다음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다. 이들을 묶어내는 현장 지휘자는 조성래 변호사다. 부산 민변 출신으로서 지난 대선 때 부산시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조변호사는 현재 민주당 당 개혁위원이기도 하다. 결국 중앙에 문재인, 부산에 조성래 투톱 시스템이 내년 부산 총선을 이끌게 되는 셈이다.



문재인 수석이 3월7일 부산 고속철 문제로 한 달이 넘게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지율 스님을 만나러 부랴부랴 부산으로 내려간 것도 치밀한 민심 관리의 일환이다. 부산 지역 신문의 한 기자는 “이 지역 시민단체와 종교계에서는 부산 고속철 문제가 대구 지하철 참사만큼이나 심각한 현안이다. 고속철 중단을 공약으로까지 내건 마당에 노대통령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 평론가들은 이러한 청와대의 총선 전략을 이른바 ‘북진 정책’으로 해석한다. DJ 정권에서는 호남과 충청을 기반으로 영남을 공략하는 동진 정책을 쓴 반면, 노무현 정권은 부산을 거점으로 남쪽에서부터 위로 지지 세력을 확대하는 북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DJ 정권 초기 문희상 비서실장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이 주장했다가 외면당한 ‘민주세력 연합론’과 궤를 같이한다. 여권 인사들은 호남+충청+TK를 겨냥한 동진 정책이 영남인들의 강한 거부감 때문에 결국 실패한 데 반해, 영남 내부에서 출발하는 북진 정책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를 위해 중앙에 올라와 있는 부산사단도 다음 총선에 대거 출마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인사에서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이 많이 발탁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서울팀 일각에서는 이런 영남 우대 전략을 걱정하기도 한다. 전국을 조망해 총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지나치게 한 지역에 치중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가 충북도민의 오랜 숙원인 청남대 규제를 풀겠다고 한 것은 이런 균형 유지의 필요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영남은 인사로 풀고, 충청도는 행정 수도 이전과 청남대 개방 같은 정책으로 풀겠다는 얘기다.
호남 지역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다. 오히려 대북 송금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부담스럽게 생각할 만큼 호남 민심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그렇다고 호남표가 한나라당으로 가겠나 하며 ‘믿거라’하는 것이다.



노대통령 주변에는 부산에서 과연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느냐가 총선 승패의 관건이라며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영남을 좀더 지원해야 한다는 사람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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