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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시절부터 ‘홍석현 중용’ 검토

홍회장, 참여정부내 미국통들의 모임에서 주도적 역할 청와대, 한달 반 전부터 유엔총장 출마 문제 논의

이숙이 기자 ㅣ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12.21(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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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16일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송년 모임에서 강조하려고 했던 대목은 ‘이헌재 경제 부총리 유임’이었다. 언론들의 개각 보도가 잇따르면서 이헌재 경제 부총리의 거취가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경제 정책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김실장이 쐐기를 박으려고 한 것이다.

‘주미대사에 깜짝 놀랄 만한 빅 카드가 기용될 것’이라는 발언은 그 말미에 나온 일종의 덤이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크리스마스 무렵에 홍석현 주미대사 내정 사실을 공개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 날은 예고만 한다는 게 비서실장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는 이미 가닥이 잡힌 경제 부총리 유임보다 ‘깜짝 놀랄 빅 카드가 누구냐’가 더 큰 관심사였다. 빅 카드 얘기가 나온 직후 전화통을 붙들기 시작한 기자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만찬이 끝날 무렵에는 절반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사이 각 언론사는 청와대·외교부·정당 출입기자는 물론 각국 특파원까지 총동원해 빅 카드를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세 시간도 채 안되어 그 빅 카드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임이 밝혀졌다.

‘홍석현 주미대사 카드’는 청와대의 예상대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노무현 대통령이 홍석현 카드를 내놓은 배경에 대해 해석이 분분했고, 한나라당 안에서도 임태희·전여옥 두 대변인의 논평이 정반대로 나올 정도로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청와대 고위 인사들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홍석현 카드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새로운 대미 채널로서의 효용성이다. 노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이른바 ‘서울포럼’으로 대표되는 기존 대미 채널을 대신할 젊고 개혁 성향의 미국 전문가들을 찾는 데 주력했다. 이홍구·현홍주·김경원 등 내로라 하는 외교 안보 전문가들이 속한 서울포럼은 역대 정부에서 외교 안보 라인의 주된 인재 풀 구실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친미 성향을 띠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 터였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비롯해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이 근 서울대 교수 등이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참여정부의 외교 안보 인재 풀 명단에 들었다. 이들은 ‘한·미 전략회의’라는 모임을 따로 만들어 새로운 한·미 관계의 방향 설정을 놓고 토론하곤 했는데, 홍회장이 이 모임의 좌장 노릇을 했다고 한 참석자는 말했다.

인수위 시절 홍회장은 이미 초대 외교부장관 또는 통일부장관 물망에 올랐다. 노대통령 주변에서는 2002년 초 중앙일보가 정부 예산 1%를 대북 지원에 쓰자고 제안한 것을 비롯해 그동안 홍회장이 보여준 행보를 종합해 그를 ‘실용적 합리주의자’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백악관 내부 인사들뿐 아니라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미국 사회 여론주도층의 인식을 한국에 우호적인 쪽으로 바꾸는 것이 차기 주미대사에게 부여된 핵심 과제이고, 그 적임자로 미국 조야에 너른 인맥을 확보하고 있는 홍회장이 선택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홍회장을 낙점한 것이 그의 성향과 인맥 때문이라면, 홍회장이 주미대사 직을 받아들인 것은 유엔 사무총장 자리 때문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홍회장은 일찌감치 차기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염두에 두고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대권 도전설’·‘조중동 분리 전략’ 등 해석 구구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의 임기가 2006년 말로 끝나는데, 대륙 별로 돌아가며 사무총장을 맡는 관례로 볼 때 차기는 아시아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사무총장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전원의 추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고 하는 일본·인도는 차기 사무총장 후보를 내기가 어렵다. 현재 아시아에서 사무총장 출마가 예상되는 사람은 태국 외무장관과 스리랑카 출신 전 유엔 군축담당 사무차장 정도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데 유리한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

홍회장은 이런 정황을 들어 정부가 적극 지원해 달라는 뜻을 청와대에 전달했고, 노대통령 역시 ‘유엔 개혁’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여서 양측이 쉽게 의기투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한 고위 인사는 “한달 반쯤 전부터 홍회장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했고, 검토 끝에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키로 내부 합의가 이뤄졌다”라고 전했다. 돌이켜보면 지난번 남미와 아세안 순방 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번 유엔 개혁을 강조한 것도 사전 길닦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상치 못했던 ‘깜짝 인선’이어서인지 홍회장 기용을 놓고 뒷말도 무성하다. 대표적인 것이 차기 대권도전설이다. 주미대사와 유엔 사무총장을 거쳐 화려하게 정치권에 데뷔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정치권과 재계·언론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홍회장이 큰 꿈을 꾸고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일정상으로는 일단 무리가 따른다. 2006년 말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다면 이듬해 곧바로 대권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차차기를 노릴 수는 있지만, 그 때가 되면 60대로 넘어간다는 부담이 있다. 만약 유엔 사무총장이 안 되면 주미대사 경력을 끝으로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것으로는 ‘2%’ 부족해 보인다. 게다가 국민에게는 서민의 고통을 모르는 대권 주자에 대한 묘한 거부감이 있는 데다, 홍회장 본인이 병역까지 면제받았다는 점 때문에 대권 행보가 그리 녹록치는 않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홍회장 기용이 노무현 대통령의 ‘조·중·동 갈라치기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안 그래도 참여정부 들어 ‘중앙’을 조선·동아와 분리시키려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이번 인사로 확실하게 선긋기를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그런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선·동아와 중앙이 갈라선다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기류다.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조·동과 한나라당이 앞으로 홍석현 주미대사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된다. 마냥 동조할 수만도 없을 테고, 만약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그날로 중앙과의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겠는가”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래저래 ‘홍석현 주미대사 기용’은 이라크 아르빌 방문에 이어 노대통령의 ‘성공한’ 깜짝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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