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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강남이 얼어붙었지만..

토지공개념 도입 발표 후 아파트 거래 실종…“불패 신화 불변” 주장도 많아

차형석 ㅣ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10.21(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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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7일 금요일 오후 5시,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백화점 문화센터. LMS부동산 컨설팅 이문숙 대표는 두 시간짜리 유료 강의를 마치고 나서도 한 시간 동안이나 ‘강남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였다. 이들은 10월 말에 발표될 부동산 대책이 강남 집값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 했다. 특히 오피스텔과 상가 투자에 대한 질문이 잇따랐다. 부동산 가격을 주도한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꼭지점에 다다랐다고 판단해서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자기 형편을 밝히지 않다가 한 아줌마가 용기 있게 말을 꺼내자 봇물 터지듯이 투자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서초와 마포에 집 두 채가 있는데, 딸 이름으로 아파트를 사둘까 한다. 어떨 것 같습은가?” “현금으로 20억 정도가 있고, 5억을 융자받아서 서울 송파에 있는 상가 건물을 사고 싶다. 어디를 사면 좋을지 찍어달라.” 이대표는 “시장 조사도 할 겸 강남에서 강의하는데, 요즘은 아파트보다는 임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상가나 토지에 장기 투자를 하고 싶다는 상담이 많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은 ‘강남 불패’ 앞에 무기력했다. 재건축 아파트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소형 평형으로 지어야 한다고 규정한 9·5 조처가 발표되고 나서도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는 투자자들은 대형 평수 아파트의 가격을 올렸다. 그런데 지금 강남의 분위기는 그때와는 상당히 다르다. 적어도 이번 조처가 변죽만 울리는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강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이다.

“청와대 386들이 강남 집값 박살내려 한다”

지난 10월13일 토지공개념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은 강남권 재건축을 중심으로 호가가 하락하고 급매물이 나오면서 하락세로 반전했다. 아파트 가격 정보업체 닥터아파트가 2003년 10월17일을 기준으로 조사한 주간 매매가 변동률에 따르면, 수도권 재건축 대상 단지의 매매가는 0.73% 떨어졌다. 전 주까지 0.9% 상승세를 보인 것과 대조를 보였다.

서울 강남에서 15년째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매물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매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도자든 매수자든 관망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가 보여준 장부에는 10월 초순 이후에는 부동산 거래 내역이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나마 9월께 아파트를 사겠다고 문의해온 고객 명단 옆에는 ‘보류’ 혹은 ‘계획 변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날 중개업소에 전화한 30대 고객은 해약 의사를 밝혔다. 추석 전에 융자 3억원을 끼고서 구반포에 있는 22평형 아파트를 6억5천만원에 산 이 고객은 잔금 지불을 계속 미루고 있는 중이다. 가격이 급락할 것 같아 불안해서다. 그는 계약금 6천5백만원을 날리더라도 해약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개점 휴업 상태’라고 말한다. 불안 심리가 강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거래가 끊겼고,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매매는 없이 호가에 의해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10% 정도 가격이 빠져도 큰 타격은 없다. 차라리 정부의 대책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소강 상태를 보이면서 강남 부동산 업계에는 흉흉한 ‘386 부동산 음모론’까지 돌고 있다. 타워 팰리스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 일을 하는 이 아무개씨는 “청와대 386들이 12월 안에 강남 집값을 40%까지 박살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는 소문이 강남에 돌고 있다”라고 전했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10월 말에 있을 정부의 발표에 얼마나 민감해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강남 사람에게 강남은 여전히 ‘기회의 땅’

이 소문을 전한 이씨는 부동산 ‘선수’ 출신이다. 19년 전부터 친척의 조언에 따라 재개발 부동산에 주로 투자해 종잣돈 1천4백만원을 십수억대 재산으로 불렸다. 그는 “된다 하는 소문이 돌면 샀다. 이것저것 재면 돈 못 번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따지면 늦는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까지 1가구 4주택자였다. 그는 지난 8월께 갖고 있던 부동산을 정리했다. 가격이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했고, 상황을 지켜보다가 내년 상반기에 ‘남쪽’(강남)으로 내려가 상가에 투자해볼 계획이다. 주변에 친한 ‘선수’가 남쪽에 내려가 전세·융자를 끼고 아파트 5채를 구입한 다음 ‘큰돈’을 버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세와 융자를 끼고 자기 돈 5천만원으로 사들인 아파트 5채가 2년 만에 한 채당 1억3천만원으로 올랐다.

정부의 부동산종합대책을 예의 주시한다고 하면서도 그에게 ‘부동산 장기 불패 신화’는 여전한 듯했다. 그는 “부동산은 1억이 오르면, 5천만원이 빠진다”라고 말했다. 결국 언젠가는 오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강남 사람들은 한강 다리 넘기를 싫어한다. 내가 봐도 강북과 강남은 동네 분위기가 다르다. 차라리 남쪽으로 내려가는 게 수익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강남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남 사람들에게는 강남이 여전히 ‘기회의 땅’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배 아무개씨도 강남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배씨는 결혼 이후 21년 동안 여덟 번 이사했다. 융자를 얻어가며 집 평수를 늘려가는 ‘부동산 투어’를 해 청담동 46평형 아파트에 입성했다. 지난해 7월 올림픽선수촌아파트를 팔고 잠시 전세를 살았는데, 그 사이 집값이 2억5천만원이나 뛰어 낭패감을 느끼기도 했다.

자식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해 교육 환경에 신경 쓸 이유는 없지만, 그에게 강남은 여전히 매력적인 땅이다. 그가 보기에 강남은 경제·문화가 가장 발전했고, 눈높이를 유지해주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재건축 예정 아파트로 옮겨와 세금 문제 때문에 3∼5년은 부동산 가격에 신경을 안 쓰겠다는 그는 “20년은 강남에 살 텐데, 앞으로 집값이 어떻게든 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남 집값만 해결하면 된다고 접근하는 방식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의심하는 전문가도 꽤 있다. 부동산뱅크 윤진섭 취재팀장은 “강남에 사는 사람은 돈 많은 실수요자라고 봐야 한다. 집값이 요동하더라도 강남 지역을 벗어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닥터아파트 김광석 정보분석팀장도 “강남에도 실수요자 중심의 아파트가 많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확연히 관망세로 돌아선 강남 사람들. 정부가 공언한 대로 강남 집값을 잡을지. 모두가 10월 말에 발표될 정부의 부동산종합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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