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 2000 ‘요 지경 정치 경제학’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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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부의 동기식 강제 방침으로 파란… 정권 실세 외압설 불거져
예상대로 10월2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과정위)의 정보통신부(정통부) 국감장에서는 IMT 2000 사업의 정책 혼선에 따가운 비판이 쏟아졌다. 기술 표준에 관해 시장 자율 원칙을 세웠던 정통부가 최근 개입으로 급선회해 엄청난 혼란을 빚자 과정위 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안병엽 장관을 거세게 몰아세운 것이다. 특히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정부가 더 이상 특정 기업을 동기식으로 유도하려고 사전 조율에 나서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여 정부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김위원은 동기 선정 방침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동기 기술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 2000 사업은 사업자들의 사업허가 신청서 마감(10월31일)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은 10월10일 안장관이 기술 표준에 대한 기존 입장을 돌연 뒤집은 데서 말미암았다. 그는 작심한 듯 국민과 업계에 혼선을 끼쳐 유감스럽다며, 기술 표준을 업체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강제하겠다고 밝혔다. IMT 2000 주파수 대역을 동기(同期)와 비동기(非同期), 표준을 임의로 지정할 수 있는 임의 대역 세 가지로 나누어 반드시 동기 사업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장관의 폭탄 발언에 통신업계는 날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것이 IMT 2000 사업권은 세 장인데, 한국통신(KT)·SK텔레콤·LG글로컴이 모두 비동기로 신청할 경우 3등을 한 사업자는 사업권을 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올 12월 하순 심사 결과 발표에서 탈락한 사업자에 대해 내년 3월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반드시 동기를 신청해야 한다. 결국 비동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IMT 2000 사업권을 딸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정부가 강제 방침을 천명한 이후에도 하늘이 두 쪽 나도 비동기 고수 입장을 접을 수 없다며 ‘마이웨이’를 외치고 있다. 정통부는 동기 사업자를 유도하기 위해 특혜를 주겠다는 당근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이들은 비동기를 접을 만한 특혜는 없다고 일축했다. 따라서 누가 3등을 할까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 사업자들은 저마다 1등을 자신하고 있다. 한국통신은 기술력과 유·무선 사업 경험을 두루 가진 국내 최대의 통신 전문 기업임을 강조하고(남중수 본부장), SK텔레콤은 이동 통신 분야의 절대 강자이며 우량한 재무 구조를 내세우고 있다(조민래 상무). LG전자가 대주주인 LG글로컴 역시 PCS 사업 획득 경험과 가장 앞선 비동기 기술력을 자신의 강점으로 들고 있다(이정식 상무).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3등의 운명에서 자유로운 사업자는 아무도 없다. 예측이 가능한 계량 평가 부분에서 SK텔레콤이 다소 앞서기는 하지만, 세 사업자 간에 큰 차이가 없는 데다, 전체 사업 심사에서 계량 평가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불과해 더욱 변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83%나 차지하는 비계량 평가 항목에서 세 사업자가 어떤 점수를 받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크게 영업 부문과 기술 부문으로 나뉜 비계량 평가에는 시장 분석의 합리성과 서비스 제공 계획의 우수성, 시스템 구성 및 서비스 품질 목표의 우수성 등 총 17개 항목이 있다. 그러나 비계량 평가에 말 그대로 심사위원의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사업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실상 정부가 심사위원을 선임하므로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비동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은 초긴장 상태다. 특히 자신이 주표적이라고 여기는 SK텔레콤은 ‘괘씸죄’를 걱정하는 눈치다.

누가 꼴찌가 되든 이로 인한 엄청난 후유증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만약 한국통신이 떨어진다면 한국 통신 기업의 맹주를 떨어뜨린 셈이 되고, SK텔레콤의 경우도 2세대 이동 통신 분야의 절대 강자가 3세대(IMT 2000) 사업자를 선정하는 국내 시험에서 떨어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새가 된다. 정보통신 전문 그룹을 지향하는 LG 역시 그룹 차원에서 사활을 걸고 있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따라서 누가 되든 3위 사업자가 사업 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그런 반발은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후유증은 사업자 반발로만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탈락한 기업의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된다면 이 기업의 주주들이 집단 반발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SK텔레콤의 경우 벌써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국가 신인도에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엄청난 후유증이 예견되는 탓에 정보통신 업계는 막판에 조율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세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를 신청하는 상황을 막지 못해 한 사업자를 떨어뜨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정부가 사전 조율을 꾀하려는 흐름은 있어 보인다. 안장관이 10월16일 SK텔레콤 손길승 회장과 조정남 사장을 만난 것을 비롯해 정통부 관료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설득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통부가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의 마음을 돌릴 가능성 또한 지극히 낮다는 사실이다. 한국통신 경영진은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일절 삼가고 있지만, 비동기를 고수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외국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꼭 동기가 있어야 한다면 정부가 대주주인 한국통신이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한국통신은 펄쩍 뛴다. 비동기식 채택을 전제로 세계 유력 통신 기업과 외자 유치 및 전략적 제휴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강요에 의해 동기식을 채택할 경우 협상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 가치가 떨어져 민영화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노조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 NTT도코모 등과 외자 유치 협상을 진행중인 SK텔레콤도 ‘타협은 없다’고 못박았다. 한 임원은 만약 경영진이 동기로 선회한다면 주주들로부터 배임 혐의로 소송당할 것이 확실하다며, SK텔레콤을 탈락시킬 수는 있어도 동기로 마음을 바꾸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SK텔레콤은 10월19일 이례적으로 LG전자와 비동기 시험용 장비 구매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해 확실하게 비동기 고수 의지를 보였다(통신 장비 공급 계약은 대개 장비 업체가 발표한다).

결국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런 딜레마는 정부가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는 한달여 동안 업계의 자율 합의를 유도했다. 정통부는 신청 마감 시한(원래 9월 말)을 한달 연기하며 기술표준협의회(위원장 곽수일 서울대 교수)를 만든 것도 그런 의도에서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10월6일에 나온 합의문에는 사실상 합의가 없었다. 오히려 통신사업자와 제조업체 간의 갈등을 해소할 접점이 없음을 재확인해 주었다.
사실 IMT 2000 사업을 둘러싸고 동기냐 비동기냐 하는 기술 표준 논쟁은 이미 지난 6월부터 시작되었다. 비동기는 세계적인 대세이며 3세대에서 비동기로 가더라도 동기 기반을 잃는 것은 아니라는 통신사업자측의 주장과, 시장은 작더라도 한국이 확실한 기술 및 수출 기반을 가진 동기식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는 통신 제조업체측의 주장이 날카롭게 대치했었다. 결국 정부는 지난 7월 기술 표준을 업계 자율의 복수 표준으로 하겠다고 최종 정리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막판에 와서 안장관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을까.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안장관을 어떤 강력한 힘이 움직였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청와대 개입설. 이기호 경제수석·김영용 산업통신 비서관이 적극 나섰다는 의혹인데 반론도 적지 않다. 이수석이 대북 사업에 몰두했었고 IMT 2000 사업을 챙긴 흔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청와대와 정통부에 정책 변경을 지시한 막후 주체는 ‘청와대는 청와대인데 청와대에 있지는 않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에 있지 않은 현정권 실세라는 얘기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통신업계 관계자 사이에 이 권력 실세와 삼성이 한묶음으로 회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실세가 삼성의 로비를 받아 정통부로 하여금 ‘자율’에서 ‘강제’로 선회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정부의 강제 방침은 대북 투자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사업자들에게 알아서 남북협력기금을 출연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삼성에게도 대북 투자를 적극 늘리도록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삼성전자가 동기 채택을 강력히 주장했으며, 이번 조처의 가장 큰 수혜자가 삼성전자라는 점이다. 삼성은 2세대 CDMA 내수 및 수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왔다. 2.5세대로 분류되는 IS95C의 장비도 사실상 독식(2조원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약 3세대인 IMT 2000 사업에서도 동기 사업자가 둘이 될 경우 삼성은 앞으로 5년간 국내 시장에서만 10조원대의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김운섭 기획관리 담당 상무는“통신 제조업체 입장에서 동기식이라는 확실한 시장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 동기식 사업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1동2비보다 물론 2동1비를 지지한다. 지금부터라도 비동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 승산이 있다고들 보지만 모토로라·루슨트·노텔 같은 세계적인 업체들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로비설은 부인했다.

IMT 2000 사업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가. 정부가 동기식 강제 방침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혹은 세 사업자들이 모두 비동기 고수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부와 업체는 정면 충돌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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