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상장,계약자에게는 '그림의 떡'?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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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험학회 토론회 지상 중계/‘재벌 편들기’ 우세
법과대학을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동생과, 공장에 다니며 그를 뒷바라지한 누나. 하지만 동생은 초라한 누나가 부끄러워 합격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 모임에 혼자 나간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 누나.

이 신파극 같은 이야기는 생명보험협회 신이영 상무가 요즘 생명보험사(생보사)들의 처지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는 “생보사들이 국민들의 ‘코 묻은 돈’을 모아서 기업에 투자한 덕에 오늘날 산업이 이만큼 발전했는데도 ‘초라한 누나’ 대우를 받고 있다”라고 한탄했다. 신상무는 지난 8월 4일 서울 태평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생명보험 주식회사의 기업 공개와 이익 배분에 관한 대토론회’에 초청 인사로 참석해 그렇게 말했다. 이 토론회는 한국보험학회가 주최한 제14회 특별 세미나였다.

신상무의 ‘초라한 누나’ 발언에 역시 토론자로 초청된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 김상조 교수(한성대·무역학)는 다음과 같이 공박했다. “삼성생명이 삼성자동차에 담보도 지급 보증도 없이 5천6백억원을 대출해 보험 계약자들에게 입힌 손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김교수는 또 생보사가 재벌의 사금고나 편법 상속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방지하려면 상장하기 앞서 법적·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명보험 업계와 보험 계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한 토론자들의 시각은 그렇게 서로 갈려 있었다.

이 날 토론의 핵심은 단연 생보사 상장에 따른 이익 분배 문제였다. 생보사를 공개할 것이냐, 즉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토론자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것. 이 날 논전을 벌인 전문가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의 기업 공개와 잉여금 배분’이라는 연구 주제를 발표한 김성재 교수(한국외국어대·경영학)를 포함해 10명이었다.

보험 계약자의 분배 요구, 법적 근거 없다?

논의한 내용은 크게 보아 생보사 상장에 따른 이익을 주주가 독점할 것인가, 아니면 주주와 보험 계약자가 분배할 것인가로 압축된다. 상장 요건을 갖춘 삼성·교보를 포함해 국내 생보사들은 모두 주식회사이다. 따라서 주식 상장에 따른 자본 이득은 주주만이 누릴 권한이 있다는 것이 전자의 논리다. 반면 두 생보사의 자산 축적에 기여한 보험 계약자들의 몫을 배제한다면 이는 주주, 즉 재벌에 대한 일방적인 특혜라는 것이 후자의 주장이다.

토론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열기를 더해 갔다. 특히 가장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인 논객은 김성태 교수(연세대·법학)와 이봉주 교수(경희대·국제경영학).

김성태 교수는 참석자 가운데 유일한 법학자였는데, 가장 단호한 논리로 주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영리 보험을 운영하는 주식회사에서 주주말고 누가 경영 결과에 책임을 지느냐는 것이다. ‘보험 계약자가 상장에 따른 시세 차익을 공유할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계약자들이 무리하게 이익을 분배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재산권 보장 원칙에도 위배될 수 있다.’
“경영자는 기여한 만큼만 가져가라”

김교수는 방청석을 향해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호한 기준은 기준이 아니다. 이익 분배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론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 이미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위대한 진리는 단순하다.”

이에 대해 이봉주 교수는 보험 경영에서 단순한 진리란 ‘기여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상장에 따른 이익 분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 과연 한국이 그동안 제대로 된 자본주의 국가였느냐고 반문했다.

이교수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예로 들었다. 지난해 미국의 경제 월간지 〈포춘〉이 발표한 세계적인 생보사들의 전체 자산 중 자본 납입 비율은 평균 4.4%. 이에 비해 국내 생보사들은 1%에도 못 미친다. 그러면서도 국내 생보사들은 올해 3월 이전까지 배당 보험 상품의 70%만 계약자에게 돌려주었다. 주주가 30%를 취한 것이다. 3월 이후에는 85 대 15 비율로 계약자 몫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90 대 10 비율로 계약자들에게 더 돌려주는 해외 생보사들의 배당 기준에는 못 미친다.

즉 한국 생보사들이 주주의 의무는 다하지 않고 열매만 훨씬 많이 거두어 온 셈이다. 이교수는 “납입 자본금이 39억7천5백만원에 불과한 삼성생명이 36조4천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독점하려 든다면 말이 되겠는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의 편을 굳이 가른다면 6 대 4 정도로 주주측에 유리한 발언을 한 논객의 수가 우세했다.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를 그르치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보험계약자측을 대변한 사람들의 주장은 ‘과거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없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는 것이었다.

보험 계약자 편에 선 토론자 중에서 이봉주 교수가 제시한 이익 분배 방법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이교수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제1안은 ‘공모 주식을 100% 이상으로 하여 생보사를 국민 기업화한다’. 제2안은 ‘계약자의 기여분과 주주의 출연금을 토대로 완전히 독립적인 공익 재단을 운영한다’.

“시세 차익 일부, 공익 사업에 내놓아야”

이밖에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논설위원은 신주를 발행해 보험 계약자들에게 우선 배정하는 방식도 바람직할 것으로 보았다.

김종국 교수(전주대·금융보험부동산학)는 상장에 따른 이익을 주주와 계약자가 분배하는 점에는 반대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상장에 따른 시세 차익은 아직 미실현 이익이지만, 만일 발생한다면 일정 부분은 ‘공익 사업’을 위해 내놓아야 한다. 다만 이런 공익 사업은 해당 기업이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단체에 맡기는 것이 좋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보험학회 간부들은 한결같이 생보사 주주인 재벌측 입장을 두둔했다. 토론회는 한국보험학회가 주최한 행사였기에 회의장을 가득 메운 각계 인사들로 하여금 행사를 개최한 목적에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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