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대리이사 맡은 오종남 청와대 비서관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9.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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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 대통령 비서실 산업·통신 비서관, IMF ‘대리 이사’ 부임
대통령 경제수석실 오종남 산업·통신 비서관(47)이 ‘특명’을 받았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9월 초부터 국제통화기금(IMF) 대리이사(altanate director)로 부임해 한국 경제의 개혁 전도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미국 워싱턴 콜롬비아 특별구(DC)에 있는 국제통화기금에 가기 위해 이미 비행기 표를 끊어 놓았다.

오비서관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청와대에 들어와, 경제 개혁을 주도한 강봉균 경제수석을 실무 차원에서 뒷받침한 인물이다.

권력 핵심부를 떠나 미국행을 결행한 그가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에 가서 97년 말 경제 위기를 맞은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해냈던 경제 개혁의 성과를 알리고, 앞으로 해야 할 과제에 대해 외국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오겠다.”

“IMF 내 한국 위상 높이겠다”

한국은 외환 위기를 넘겼으나 재벌 구조 개혁 작업이 진행되면서 금융 시장이 불안해졌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 정책이 최종적으로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지금까지 해낸 것이 많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오비서관은 세계적인 경제학자와 관료들로부터 한국 경제 개혁에 대한 견해를 직접 듣고, 경제 개혁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생각이다.

오비서관은 이런 공식적인 임무와는 별도로, 스스로 작정한 임무가 하나 더 있다. 지금까지 국제통화기금 내에서 대리 이사에 만족해야 했던 한국의 위상을 정식 이사로 격상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에 출자한 지분이 많지 않아 정식 이사 자리를 아직 갖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 이사 직위는 출자 지분에 따라 배분된다. 한국은 출자액이 적은 다른 국가의 지분을 합쳐 간신히 ‘이사’ 자리를 얻었지만, 그 앞에 ‘대리’ 자를 떼지 못한 상태.

이 힘겨워 보이는 또 다른 임무 수행을 위해 그가 공략하려는 사람은 다름아닌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 “캉드시 총재와는 친분이 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와 한국 경제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오비서관은 외국인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영어 실력도 뛰어나다. 국제통화기금에 가더라도 부임 초기 겪게 되는 시행 착오가 적을 것이다.

오비서관은 행정고시 17기 출신. 24년 동안 관료 생활을 하면서 미국 서던메소디스트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학구열이 대단하다. (경제학자가 아닌)경제학도에게 국제통화기금 이사 직책은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전세계에서 온 많은 경제학자와 함께 세계 경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도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미국 유학 시절 나를 지도했던 교수가 국제 전화로 축하해줄 정도였다.”

오비서관은 한국 경제 전체에 대한 구조 조정 작업을 진행하
면서 겪은 경험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오비서관은 성탄절을 빼고는 휴일을 가진 적이 없다. 그 탓에 가족을 챙길 시간이 없었다. 그 사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승엽군을 홀로 워싱턴 DC로 보냈지만,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아들을 아무 연고가 없는 미국 땅에 홀로 두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더욱이 미국 이민법에 따르면, 보호자가 없는 만 17세가 되는 유학생은 귀국하게 되어 있어 이 점도 그의 미국행을 재촉했다. 승엽군이 곧 만 17세가 되는 것이다.

그는 대리 이사로서 새로운 임무에 충실하겠지만, 이제 자기를 돌아보고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얻게 된 것이 무척 만족스럽다. “지난 1년 반 동안 원 없이 일했다. 또 권력의 핵심부에서 1년 반 이상 있으면 오만해지기 쉽다는 점도 나로 하여금 떠날 것을 종용했다. ”

오비서관은 1년 가량 머물다 귀국할 계획이다. 우선 이기호 경제수석이 빨리 돌아오라고 벌써부터 채근하고, 그 자신도 할 일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 확실하지 않다. 아직까지 ‘인공위성(관가에서 국제 기관에 파견되거나 유학 가는 공무원을 이렇게 비유한다)’이 1년 만에 복귀한 사례는 없었으니 2∼3년 가량 걸릴 수도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자리를 떠나니만큼 빨리 돌아오고자 한다.”그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디로 갈까. 청와대나 친정인 재정경제부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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