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을 주목하는 이유
  • 양동표 (딜로이트 앤드 투시 파트너) ()
  • 승인 199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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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면서 요즘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신문·잡지·방송이 온통 중국 이야기만 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중국에 관한 기사가 자주 나온다. 루빈 재무장관 일행이 중국을 방문했고, 데일리 상무장관이 중국에 갔다오면 곧이어 강택민이 클린턴을 방문하게 된다. 몇 해 전만 해도 일본에 관해 떠들썩하던 미국 언론의 관심사가 이제는 중국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관심의 깊이도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에는 최혜국 대우 연장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권 문제 등 거시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이제는 중국 경제의 구조 조정, 공산당내 권력층의 변화, 소비자나 서민들의 경제 생활, 그리고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겪는 어려움 등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이야기가 많다. 강택민이 미국을 방문하면 중국 이야기는 더욱 많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중국에 20세기 세계 경제 견인차 구실 기대

중국 이야기의 양이나 깊이보다도 더욱 흥미로운 현상은 미국 매스컴이 중국에 관해 상당히 긍정적인 논조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제적 여유를 만끽하면서 서양의 팝 문화에 심취하는 모습을 그린 기사는, 중국의 젊은 세대를 따스한 눈으로 보고 있다. 생산 시설이나 생산 과정이 엉성해서 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어지는가 하면 실어온 원료가 공장 마당에 쏟아져 빗자루로 쓸어 담는 맥주 공장의 풍경을 묘사한 기사에는, 그런데도 이러한 거대한 공장을 그런대로 질서 있게 운영하는 것이 대단하다는 놀라움이 깔려 있다. 중국의 땅덩어리와 인구의 거대함에 놀라면서 그 큰 나라가 20년도 안되는 사이에 제법 굴러가는 경제 기계로 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국은 경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
사실 등소평의 개방 경제 정책이 시작된 지 겨우 19년 만에 중국이 이루어낸 변신을 보면 놀랄 만하다. 사진으로 보는 상해의 빌딩숲은 뉴욕이나 런던을 연상케 하고 광동 지구의 공장들은 미국의 인더스트리얼 파크를 보는 듯하다. 중국은 앞으로 30만 개가 넘는 국영 기업을 민영화해서 기업 그룹을 약 천 개 만들 계획이며, 이 기업 그룹들은 한국의 재벌을 본따서 만든다고 한다. 미국 언론은 한국의 재벌이 90년대에 들어 외부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따라서 한국 재벌 스타일의 기업 그룹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현재 중국 전체 경제 생산량의 13%만이 민간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국영 기업이 생산하는데, 중국은 이런 국영 기업을 대대적으로 민영화하려는 것이다. 다만 민영화 과정에서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는 실업 사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강택민은 클린턴과 만난 자리에서 민영화 쪽으로 경제 구조를 조정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장 4천8백여개 물품에 대해 관세를 평균 26% 가량 내리겠다고 밝힐 계획이다. 그러면서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다시 요청하고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게 되면 곧 모터롤라나 휴렛팩커드 같은 미국 기업에게 한층 더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중국이 경제 구조 조정을 성공적으로 마쳐서 비능률적이고 관료적인 국영 기업을 시장 경제 논리대로 움직이는 민간 기업으로 변신시킨다면 그 영향은 세계적일 것이라고 미국은 믿고 있다. 마치 80년대에 일본 경제가 세계 경제의 견인차 노릇을 했듯이 다음 세기 초에는 중국이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현지에서 불공정한 대우나 심지어는 불법적인 대우를 받는 예가 늘어나고 있는 사태에 관해서도 몹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데일리 상무장관이나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강택민에게 중국 정부가 이런 문제에 조용히 개입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그후에 우리나라도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가 되어 세계 무대에 나섰다. 요즈음 우리나라가 구조 조정을 겪느라고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은 이처럼 다음 세기의 강자로 등장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늘 우리의 생존을 좌우해 왔다. 일본의 경제 분야 패권, 동남아의 눈부신 경제 성장, 중국의 용틀임…. 이렇듯 급박하게 전개되는 주변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생존할 수 없다. 수만 리 밖에서 미국이 왜 그토록 중국에 관심을 갖는지를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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