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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경영인 시대’ 열리나

대림그룹 김병진 회장 취임 계기로 ‘분위기 확산’ 기대…재벌들 사정 각기 달라 속단 일러

金芳熙 기자 ㅣ 승인 1997.06.1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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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용 대림그룹 회장(60)의 전격적인 퇴진에 대해 회사 안팎에서 아직도 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기관을 의식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얘기가 떠도는가 하면, 사업 구조를 조정하기 위한 노림수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 비자금 문제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렀고 얼마 전에는 자해(自害) 소동을 벌이기도 했던 이회장 개인의 문제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가운데 어떤 얘기가 옳을까.

“모든 얘기가 다 맞는 것이면서 동시에 다 틀리기도 하다. 이 회장이 경영권을 넘긴 것은 한마디로 자신이 경영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렇게 된 것은 떠도는 얘기들처럼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였다.” 이준용 회장을 잘 아는 한 재계 인사의 말이다.

이회장은 지난 6월4일 그룹 사장단회의를 열어 전문 경영인인 김병진 그룹 부회장(대림엔지니어링 회장 겸임)에게 회장 직을 승계하고, 자신은 명예 회장으로 물러앉았다.

기아型일까 두산型일까

이렇게 화젯거리가 풍성한 것은 재계 순위 15위인 대그룹 오너가 자진 양위(讓位)한 것이 유례 없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30대 그룹 가운데 오너 경영 체제에서 전문 경영 체제로 바뀐 예들이 없지는 않다. 기아와 두산 그룹이 대표적이다.

기아는 80년대 초 회사 임직원들이 오너를 배제하고 회사 회생의 주역인 전문 경영인 출신 김선홍 현 회장을 옹립했었다. 그 후 회사가 정상화하면서 대규모 증자가 이루어지자 당시 오너였던 김상문 일가의 지분이 점차 축소되면서 자연스럽게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자리잡게 되었다.

기아가 일종의 쿠데타에 의해 경영권이 전문 경영인에게 넘어갔다는 점에서 이번 대림의 경우와 다르다면, 두산은 전문 경영인 체제가 아주 짧은 기간만 유지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두산은 91년 페놀 사태로 그룹이 위기에 몰리자 공채 출신 전문 경영인인 정수창씨가 박용곤 당시 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 직을 승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2년여 만에 다시 두산그룹 회장으로 복귀했다(지난해 말 박회장은 동생인 박용오씨에게 회장직 승계).

대림그룹은 위의 두 경우와 달리 오너에 의한 경영권 자진 이양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미 이와 비슷한 경영권 승계 방식을 공언해온 재벌 그룹 총수들도 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전문 경영인을 육성해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특히 현재 1.8%에 머무르는 대우그룹에 대한 자신의 지분도 빠른 시일에 정리해, 자기부터 스스로 전문 경영인임을 입증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 또한 지난해 7월 전문 경영인을 육성해 경영권을 물려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당시 경영권을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은 상속에 따른 세금 부담과 사회적 분위기로 볼 때 앞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과연 일부 재벌 총수들의 말대로 전문 경영인 시대가 도래하는 것일까.

잇단 2, 3세 경영 실패도 영향 미칠 듯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도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는 일부 재벌 그룹 총수의 선언이 모두 총수 개인이나 그룹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 그런 혐의를 짙게 한다. 김우중 회장의 무소유 경영 선언은 그가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공판을 앞두고 있던 95년 11월 말에 나왔다. 긴급 사장단회의를 거쳐 나온 그룹 분위기 쇄신책의 하나였던 것이다. 최원석 회장의 경우도 지난해 7월 가족간 불화와 풍문으로 고통을 받던 때라는 점이 흡사하다.

2세나 3세 들이 당장 경영권을 물려받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공통점도 있다. 대림그룹 이준용 명예 회장의 자녀 가운데는 이해욱씨(29·대림엔지니어링 과장)와 이해승씨(28·대림산업 과장)가 그룹에 참여하고 있으나, 경영권을 승계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다. 비슷한 또래 자식을 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도 아직은 경영 수업을 시키는 중이다. 더욱이 재벌가의 주요 친인척 사이에서는 뚜렷한 업적을 내지 못한 전문 경영인을 평가 절하하는 분위기도 있어, 총수들의 최종적인 결심을 흔들어 놓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대다수 재벌 그룹에는 총수나 친인척들의 지분이 크게 줄어든다 해도 문화재단을 비롯한 일종의 지주 회사들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또다른 메커니즘이 있다. 따라서 전문 경영인들이 잠시 경영권을 맡았다고 해도 막상 2세나 3세 들이 수업을 마칠 시점이 되면 다시 경영권을 되돌려 줄 수밖에 없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요즈음 전문 경영인들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면, 경영 능력이 부족한 2세나 3세 경영자들이 회사를 망치는 예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룹을 살리기 위해 유능한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할 필요성이 늘고 있고, 전문 경영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전문 경영인 체제가 뿌리를 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재계가 대림그룹의 전문 경영인 체제가 기아형으로 귀결될지, 두산형이 될지에 관심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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