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평]역사가 경제를 가르친다
  • 공병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96.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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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역사상 국정에 국가 경영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한 나라일 것이다. 이들은 부의 불균등과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라 만들기 작업에 동참하도록 일체감을 조성하려 애썼?
 
일상 탈출. 여행은 언제나 즐거움과 놀라움을 함께 가져다 준다. 이번 여름, 나는 뜻하지 않게 이같은 행운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국내에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라는 여류 소설가의 작품 세계를 둘러볼 기회를 말한다. 이번 여행은 시오노의 작품을 좋아하는 한국과 일본의 독자들이 직접 그 현장을 찾는 일종의 테마 기행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7박8일 일정으로 30여 명의 독자들이 밀라노·베니스·피렌체·로마를 여행하면서 특히 시오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바다의 도시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의 역사소설로 한국과 일본에서 폭넓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소설가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마치 손에 잡을 듯 자세히 그린다. 때문에 작품의 현장을 둘러보는 일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시오노는 작품에서 의도적인 교훈이나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인물들과 사건들의 디테일한 면을 집중해 다루고 있다.

‘사람의 일생이나 역사는 저명한 사실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디테일이 기입될 필요가 있다. 디테일이 떠받들어야 저명한 사실도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디테일에 애정을 쏟는다.’

이같은 작품관 때문에 그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과 교훈을 얻어낼 수 있다. 특히 필자와 같은 이코노미스트가 이같은 소설을 즐기는 데는 베네치아·피렌체·로마 역사 속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흥망성쇠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이득 때문이다.

 
정치 권력 전횡 막고 천년 영화 누린 베네치아


여행은 르네상스기를 주도하였던 도시 공화국들인 밀라노·베네치아·피렌체 등으로부터 로마로 이어지게 된다. 베네치아는 우리에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나 <오셀로>로 친숙한 도시이다. 베네치아는 바다 위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5세기 무렵 훈족과 아틸라족의 침공을 피해서 그들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개펄 위에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1797년 나폴레옹에게 멸망하기까지 천년의 영화를 누렸던 도시 국가이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관광 도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18세기와 19세기 초엽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서 화려한 명성을 드날렸던 곳이다. 시오노 작품의 중심무대인 행정 중심지 두칼레 궁전(원수 관저), 문화와 행정의 중심지인 산 마르코 광장, 그리고 상업 중심지인 리알토 다리는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베네치아라는 나라를 방문했던 괴테는 개펄 위에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던 베네치아인들의 지혜와 노고를 육체의 눈 대신에 지성의 눈으로 보기를 권하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전부 고귀함에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은 하나로 통합된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생긴 위대하고 존경 받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 훌륭한 기념비는 어떤 한 사람의 군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전 민족의 기념비인 것이다.’

왜, 오늘 베네치아 이야기가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가. 베네치아는 약 7만에서 최고 17만명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였던 도시 국가이다. 오늘날의 수치로 환산해 보면, 한국의 대기업과 거의 맞먹는 규모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나라가 자급자족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천년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는가가 필자의 관심거리였다.

그들은 철저히 상업을 장려함으로써 성장의 다이내믹스를 유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치 체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 이를 위해 정치 권력이 자의로 상업에 개입하는 것을 억제하는 독특한 견제와 균형의 공화정 정치 체제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베네치아를 ‘베네치아 주식회사’라고까지 부른다. 아마도 역사상 국정에 국가 경영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베네치아는 조그만 상업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아드리아 해의 곳곳에 우호적인 도시들을 확보하여 바다의 고속도로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굳건한 상업 국가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 들이었으며 일찍부터 정보의 중요성에 눈을 돌린 사람들이었다. 정보가 곧바로 돈과 나라의 안위와 직결된다는 신념에서 해외 주재관들을 정보요원으로 활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들은 또한 부의 불균등과 대상인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오래 전에 많은 사람이 지분에 참여하는 합작회사를 운영했다. 이같은 참여가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나라 만들기 작업에 동참하도록 일체감을 조성하는 데 큰 동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대상인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폈던 행정 지도나 공정거래법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르네상스를 주도하였던 또 하나의 도시가 피렌체이다. 베니스에서 남서쪽으로 버스로 3시간30분 정도 달려갈 거리에 놓여 있는 도시이다. 이 국가는 금융업으로 번성했던 메디치 가문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곳이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영웅을 배격했던 베네치아와는 너무나 다른 정치 체제를 가졌던 도시 공화국이다. 그러기에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당시 여러 유력 가문들 사이의 암투를 시사하기라도 하듯 중후한 요새를 방불케 한다.

시오노 작품에서 이 도시는 위대한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라는 사람과 함께 등장한다. 시오노는 지극한 현실주의자인 마키아벨리를 그의 친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작품의 중심 무대는 피렌체 시내에 있는 마키아벨리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1분 거리에 있는 폰테 베키오 다리, 그리고 이 다리를 건너서 있는 시뇨리아 광장과 마키아벨리가 15년간 봉직했던 피렌체공화국의 정청(팔라초 베키오 궁전) 등이 마키아벨리 시대를 연상시켜 주고도 남음이 있다. 시오노의 작품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그 옛날을 회상해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한가지 아쉬움은 마흔네 살에 해직 당한 마키아벨리가 관직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중에서도 <군주론>을 썼던 산장(산타드레아 인 페르쿠시나)을 볼 수 없었던 점이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시절은 피렌체가 몰락해 가던 때였다. 피렌체라는 도시 공화국과 이를 좌지우지했던 메디치 가문의 몰락으로부터도 우리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특히 메디치 가문의 흥망은 야성을 상실한 상인들이 어떤 길을 걷게 되는가에 대해 후인들에게 경고를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야성을 상실한 상인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상인은 영원한 상인으로 남아 있을 때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상인이 비즈니스 외의 다른 분야에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할 때, 상인은 쇠퇴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간접자본 중시한 지혜

끝으로 우리들의 여행지는 <로마인 이야기>의 무대인 로마다. 현재 출간된 5권까지의 이야기는 그 대부분이 로마 시내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폴로 로마노 주변을 봄으로써 어느 정도 현장감을 가질 수 있다.

팔라티노 언덕의 계곡에 있는 로마 문명의 첫 발상지인 공회장은 고대 로마의 정치·경제·종교·문화의 중심지이다. 이곳은 로마제국의 영광이 기틀을 잡는 데 바탕이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원로원의 집회와 로마 군대의 개선, 그리고 중요 행사 및 민중 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사회간접자본을 중시했던 로마인의 지혜는 로마의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다. 특히 옛 도로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구아피아 가도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로마 시대 초기부터 과도한 사회 복지나 부의 편중을 염려하고 이것을 방지하려 시도되었던 여러 가지 개혁 조처들은 2천년을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어떤 나라나 조직도 흥망 성쇠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시오노는 개개인의 자발성과 창의성, 그리고 다양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나 조직은 그 생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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