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교육제도에 '시장 법칙' 적용하라
  • 孔柄淏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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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 문제는 시장 기능을 과감히 도입함으로써 충분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교육을 개혁하려면 교육과 관련되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수많은 고정관념이나 신화의 굴레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지난 5월 말 발표된 교육개혁안에는 안타깝게도 이런 고정관념 혹은 신화의 잔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반 국민이 교육에 대해 갖고 있는 신화는 무엇인가.

첫 번째 신화는 ‘교육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 신성한 것’이라는 관념이다. 최근 들어 많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일반인과 다른 도덕 기준을 적용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교육의 신성함에 대해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렌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학문도 그 기원에서는 주로 성직과 같이 교감적인 마술에서 성장한 것이다.” 학문의 심오함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시대에나 충분히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 심오함 속에는 심지어 그 무엇인가를 강요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효과적인 요소까지 들어 있다고 믿는다. 교육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한 관리나 전문가들은 결코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개혁의 첫걸음은 ‘교육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법칙이 잘 적용될 수 있는 상품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대학은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두 번째 신화는 ‘교육 산업은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믿음이다. 교육개혁안은 정부가 투자 재원을 확보해서 주도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자나 깨나 우리는 ‘작은 정부’를 노래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천 과정에서는 늘상 큰 정부를 찾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총론은 작은 정부, 각론은 큰 정부라는 모순에 끊임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교육개혁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교육 투자 재원은 국민총생산(GNP)의 5% 정도가 확보되고, 이것을 배분하는 권한은 관련 부처가 가지게 된다. 결국 교육 개혁의 최대 수혜자는 관련 부처가 되고 마는 셈이다.

전통적으로 공공재를 생산하여 공급하는 일은 정부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이다. 교육은 사회의 존속과 발전에 필수이고 외부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흔히 정부만이 공급할 수 있는 공공재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돈을 내지 않고 공짜를 즐기려는 ‘무임 승차자’를 쉽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다. 정부가 걱정하는 것처럼 교육이 수요보다 적게 공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회 균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의무 교육에 대한 정부 개입은 타당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학 교육과 같은 고등 교육에까지 정부가 개입을 강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세 번째 신화는‘정부는 국·공립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왜 정부가 국·공립 대학을 유지할 책임을 져야 하는가. 국·공립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 굳이 국민의 세금을 쓸 필요가 있는가. 흔히 국·공립 대학의 존립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행 제도는 국·공립 대학과 사립 대학의 등록금을 차등화하고, 차액만큼 납세자의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국·공립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보조금을 받아야 할 만한 학생들인가. 그동안 구미의 학자들은 정부가 국·공립 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소득 역진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납세자의 세금을 받아서 납세자보다 훨씬 돈이 많은 학생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모순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립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일반 국민보다 가난하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어떤 정책이나 규제는 재산권을 이전하는 기능을 한다. 국·공립 대학 정책은 정부가 임의로 납세자의 재산권을 국·공립 대학 학생들에게 옮기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같은 정책은 정당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공립 대학의 민영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네 번째 신화는 ‘정부는 사립 대학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공립 대학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정당하지 못한 것처럼 사립 대학에 대한 지원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소득 이전 정책이다. 대학 교육은 철저히 수익자 부담 원칙에 입각해서 운영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얻는 수입의 대부분은 자신의 소득으로 귀착된다. 이같은 소득 귀착의 특성을 감안하면 사립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 틀림 없다.

다섯 번째 신화는‘대학의 설립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이건 제조업이건 간에 보호벽을 스스로 만들면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대학 산업에 진출한 기존 대학들은 과보호되어 왔다. 한국에도 돈을 충분히 지불할 의사가 있으면서 경영 능력도 함께 갖춘 채 대학 시장에 진출하려고 기다리는 예비 투자자들이 얼마든지 있다. 막대한 재정을 들여 대학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대학 설립을 과감히 자유화함으로써 값싼 비용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길을 택해야 한다. 대학 설립이 현재의 엄격한 포지티브 시스템(원칙 규제)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원칙 허용)으로 전환된다면 경쟁력 없는 학과와 대학의 통폐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마치 기업을 사고 파는 것처럼 경쟁력 없는 대학에 대한 매수 및 합병(M&A)이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여섯 번째 신화는‘정부가 사학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기여 및 기부금 입학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특례 인정이다. 또 개혁안에는 교직원 자녀처럼 대학 발전에 공이 많은 사람의 자녀에 대해, 혹은 농·어촌 출신자에 대해 특혜를 주자는 발상이 들어 있다. 이같은 생각이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법조계에서 수십 년 봉사한 판·검사의 자녀는 사법고시에서 특혜를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봉사한 사람이라면 그 자녀는 행정고시에서 특혜를 받아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승자와 패자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리고 시장 경제 체제의 강점은 각자가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을 스스로 책임지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부금 입학제는 승자와 패자를 미리 정해버리는 제도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이념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하이에크 교수는 “승자와 결과를 미리 안다면 경쟁은 분명히 의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경쟁이 의미가 없음은, 우리가 번영의 토대로 누리고 있는 시장 경제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기여금이나 기부금을 통한 특례 입학은 사학의 재정난 해결과 같은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기부금 입학 허용은 위험한 발상…등록금 자율화해야

일곱 번째 신화는‘정부가 등록금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사학의 재정난 해결이나 기부금 입학과 같은 어려운 과제 대신 정부가 손쉽게 실시할 수 있는 정책은 등록금 자율화이다. 시장이란 거기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상품이 품질과 가격에서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기호와 형편에 맞추어 시장에서 물건을 고를 수 있다. 그것이 공급자나 수요자 모두에게 이로운 정책이다.

일부 사람들은 등록금 폭등으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그러나 몇 가지 전제 조건만 마련된다면 시장에서 무한정 가격을 올릴 수 있을 만큼 배짱 있는 공급자는 없다. 이같은 원리가 대학이라고 해서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품질에 관계없이 똑같은 가격을 지불하고 교육을 받는 것만큼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억울한 일은 없다. 또한 인상된 등록금의 일부분을 일정 소득 이하 학생들에게 보조금으로 지불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을 통로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등록금 자율화와 같은 정책은 정치적인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보 공개의 원활화와 대학 설립 자유화와 같은 몇 가지 전제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여덟 번째 신화는 ‘대학을 평가하기 위한 정부 기관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개혁안은 대학에 대한 평가와, 그같은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가칭 교육과정 평가원을 설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소비자들은 대학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시장 경제가 성공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에 존재하는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대학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대학 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시 값에 맞는 품질을 갖춘 대학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관을 설치하여 자신들의 권한을 확대하기 앞서 좀더 솔직해져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의 권익을 위한다면 정부가 갖고 있는 대학이나 각종 교육기관에 대한 정보는 민간 단체나 언론기관 그리고 사설 기업들에 의해 자유롭게 공표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정보의 공표권을 정부가 확보하느냐, 아니면 민간이 확보하느냐 하는 것은 교육 시장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종합기록부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이상과 현실에는 늘상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교육은 결코 우리에게 실험의 장이 될 수 없다. “필라델피아에서 좋은 것이 파리에서는 나쁠 수도 있고, 페테르스부르크에서는 가소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해밀턴의 경고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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