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기업 홍보사, 불황에도 ‘쑥쑥’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8.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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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업체 홍보 대행사, 불황에도 ‘쑥쑥’…“장래성 화려” 인기 직업으로 각광
대량 감원 시대에 신입 사원을 뽑는 곳이 있다. 외국 기업체 홍보 대행사들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보 대행사는 모두 20여 개. IMF 한파가 이들을 비켜 간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위축되지 않고 건실한 성장세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역사나 실적 면에서 홍보업계의 선두는 메리트 커뮤니케이션즈이다. 서울 올림픽 홍보 요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이 회사는 올해에만 벌써 신입 사원 3명을 선발했다. 현재 총인원은 36명. 코카콜라·암웨이·퀄컴 등 내로라 하는 20여 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감원 시대에도 “신입 사원 모집”

실무 작업을 총괄하는 이는 정윤영 부장(34). 그는 고려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 해외사업부에서 3년간 근무하고 메리트 커뮤니케이션즈로 옮겼다. 처음에는 홍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95년 2월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든 후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 한국은 월드컵에 네 번 출전했다는 것을 빼면 일본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공동 개최권을 따내게 된 것은 순전히 홍보 덕분이다.” 그는 아직도 96년 6월3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공동 개최가 확정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과장이던 그는 이제 부장으로서 고객사의 홍보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고객사에 맞게 직원을 배치해 팀을 구성하고, 경영진과 실무진 간의 교량 역할을 떠맡는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부장 자리에 오른 것도 눈길을 끌지만, 영어가 필수적인 홍보업계에서 순수한 ‘토종’이라는 점도 신선하다. 영어는 일을 잘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홍보맨에게 필요한 자질은 세가지라고 말했다. 똑똑할 것(Smart), 열심히 일할 것(Working hard), 좋은 성격(Nice). 그는 이 세 가지를 묶어서 ‘SWAN’이라고 표현했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이은경 대리(24)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홍보 대행 업계에 뛰어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에서 건축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 돌아왔다. 처음에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에서 인턴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영어 학원 강사를 병행했는데, 이때 수입은 지금의 3배나 되었다.

하지만 그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가 정식 사원으로 뽑겠다고 하자 기꺼이 ‘박봉’을 선택했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여기서 배우고 경력을 쌓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3년 정도 경험을 쌓은 뒤 외국 회사의 마케팅 담당 매니저로 옮길 생각을 갖고 있다. 사실 이것은 홍보 대행사 직원들 대부분이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외국 회사로 옮기면 연봉이 껑충 뛰고, 업무도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이씨는 미국의 자동차 업체인 GM의 홍보 업무를 맡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GM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요약 번역해 GM 코리아에 보낸다. 아침 회의가 열리기 전에 그날그날의 보도 내용을 전해 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국내 자동차 업계 동향을 분석하거나, 기자와 광고 대행사 직원들을 만난다.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때는 밤 12시도 좋지만, 보통은 오후 6시면 퇴근한다.

홍보사 직원들의 업무는 전부 돈으로 환산된다. 고객사의 홍보에 들인 시간을 분 단위까지 계산해서 합산하고, 여기에 시간당 비용을 곱해 홍보 비용을 계산한다. 이것이 고객사에 청구하는 홍보 비용이 된다. 직원들의 시간당 비용은 회사와 직급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평사원은 10만원 미만, 부장급은 20만원 정도이다.

IMF 사태가 닥친 후 달라진 점은 각종 이벤트가 현격히 줄어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자 간담회와 상품 설명회, 기자 초청 본사 방문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행사 중심으로 영업해 온 업체들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IMF 벗어나면 장밋빛 미래 활짝”

반면 외국 기업과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그 업체의 홍보 업무를 총괄하는 경우에는 불황의 여파가 비교적 덜하다. 이들은 한국 경제가 단기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홍보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박현정 과장은 “국내 업체들은 홍보를 비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외국 기업들은 투자라고 생각한다”라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한때 언론사·광고사로 쏠렸던 대학생들의 관심이 요즘은 홍보 대행사로 쏠리고 있다. 주요 고객이 모두 외국 업체들이어서 급여·근무 여건이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게다가 한국 경제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면 외국 기업체들이 대거 들어올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홍보 대행사는 호황을 누릴 것이 분명하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갖기에는 충분하다.

업계 관계자들도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장밋빛으로 보는 데는 이견을 단다. 직원들의 급여는 대기업 직원보다 좋은 편이 못되고,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널리 이해되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사회의 인정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이 때문에 메리트 커뮤니케이션즈 정윤영 부장은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환상을 깨뜨려 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환상을 갖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분명히 장래성 있는 직업이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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