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평]‘복지 국가’의 빛과 그림자
  • 孔柄淏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9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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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세상살이에는 불변의 진리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 공짜라는 것이 드물며, 몇몇 사람이 공짜를 누리는 뒤안길에는 누군가 땀 흘려 일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도 그 중 하나다.

연일 대규모 파업이 계속되는 프랑스를 보면서 다시 한번 ‘공짜 점심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해 본다. 프랑스가 당면한 문제는 비단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현란한 구호에 녹아나 허겁지겁 환상적인 복지 국가 제도를 도입했던 유럽 국가 대부분이 직면하고 있는 아픔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어려움이 쉽게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프랑스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분에 넘치는 생활을 즐겨 왔다.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시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복지 제도는 실시된 지 50년 만에 거의 파산 직전이다. 무려 2천3백억프랑(34조 5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 적자가 사회보장 부문에서 발생하였다.

프랑스의 파업은, 따지고 보면 고통을 분담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현 정부가 처음 손댄 부문은 공무원과 공공 부문으로, 임금 동결과 연금 각출 기간 연장을 중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무원노조가 거세게 저항해 현 정부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국민 ‘마마 보이’ 만드는 정부 과보호

시라크 대통령이 초대 재무장관으로 알랭 마들랭을 기용하였을 때, 필자는 프랑스에서도 영국의 대처식 개혁이 가능할까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알랭 마들랭은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도 그리 흔치 않은 자유주의자이다. 시장 경제에 대한 철저한 신념을 갖고 복지제도가 가져올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문제점을 예리하게 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개혁 조처인 정부 보조금 지출에 대한 삭감계획안이 발표되자마자 여론의 반발은 대단하였다. 결국 시라크 대통령은 마들랭을 해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프랑스 개혁의 앞날에 암울함이 몰려오는 전조라고나 할까.
오늘의 프랑스는 대처 총리가 영국을 개혁한 데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강한 중앙집권식 경제와 관료 집단의 힘이 막강한 체제를 갖고 있지만,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리더의 신념에 따라서 얼마든지 개혁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작지만 강한 정부론에 기반을 두고, 시장 경제를 적극 도입하고 개인에게 더 많이 책임을 묻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만이 프랑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란 철저하게 다수결 원리에 의해 운영된다. 소수가 아무리 원하더라도 다수가 원하지 않으면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어려움이다. 현재의 생활 수준에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것이 노동조합들의 기본적인 처지임을 생각하면 복지제도 개혁은 쉽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경쟁 구조에서 나오게 마련인 패자를 구제하는 데 찬성한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까지도 사회적 책임으로 돌리는 복지제도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복지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개개인이 자존 자립할 정신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 정신의 피폐는 현대 복지 국가가 가져온 가장 비난받아야 할 폐해이다. 마치 부모의 과보호가 아이들의 자립심을 망쳐버리듯이, 복지 국가는 정부가 국민을 ‘마마 보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또한 복지제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 시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복지 수준의 비용을 부담해야 할 사람들은 다음 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투표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는 다음 세대에게 무리한 부담을 지우는 일이 정당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프랑스 사태는 강 건너 불 같은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연금제도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론이 서서히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패자에 대한 최소한의 부조를 넘어서는 선진국형 복지국가론의 허와 실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뷰캐넌은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더 많이 저축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평생의 노작 끝에 얻은 결론임을 고백하였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나라 역시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진리를 제도화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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