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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총수 앞에 총선 회오리

나웅배 부총리, 정치 논리의 개입 저지가 숙제…호황 마무리도 큰 일

金芳熙 기자 ㅣ 승인 1996.01.04(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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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인 88년의 일이다. 자신이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에 기용된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나웅배씨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5공 말기 재무부장관을 거쳐 상공부장관에 재직하던 그는, 정권이 교체될 날이 다가오자 주저없이 이임 준비를 하고 있었다.

5공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노대통령이 그를 발탁한 것은 뜻밖이었다. 재무부·건설부·체신부 장관이 유임된 것 역시 그랬다. 나웅배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을 재정경제원장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한 이번 인사 역시 파격적이기는 그때와 마찬가지다. 그때처럼 그는 마지막까지 언론이나 관가의 하마평에 오르내린 인물이 아니었다.

88년 초 5공의 마지막 경제팀을 대부분 유임시키거나 승진 발령한 데는 말못할 이유가 있었다. ‘경제 대통령’임을 자임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제 정책 기조만큼은 후임자가 계승해 나갔으면 하고 바랐다. 이 때문에 그는 노대통령의 첫 경제팀 조각(組閣)에 깊이 간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경제 분야 핵심 멤버이자 나중에 6공 경제 정책의 실세가 된 김종인씨의 입각을 거부하고, 경제 수석으로 자신을 보좌했고 당시 재무부장관이던 사공일씨를 유임시켰다.

최선은 아니라도 현실적 대안

이런 상황에서 나부총리는 최선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언론이나 관가에서는 육사 시절 노대통령의 스승이었고 뒷날 나부총리에 이어 부총리에 기용된 조 순 서울대 교수도 꼽았으나, 당시 국무총리로 입각한 이현재씨와 같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라는 점이 걸렸다. 장덕진씨도 끝까지 하마평에 오르내렸으나, 그에게는 노동부장관 직을 제의했을 뿐이다.

김영삼 정부 들어 네 번째 경제 총수로 임명된 나웅배 부총리는 6공의 첫 경제 총수로 중용될 당시의 처지와 너무 흡사하다는 점이 화제가 되고 있다. 12·20 개각에서 그는 그동안 하마평에 오르내린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이나 한승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물리쳤다. 두 사람은 학자 출신이어서 경제 관료들의 입방아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이헌 경제수석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 자신은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보다 경제 총수 쪽을 선호했으나,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경제 상황은 88년 상황과 비슷하다. 호황의 정점을 지났기 때문에 경기를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6년 전 나부총리가 처음 주재한 경제장관회의에서는 물가 안정과 부동산 투기 억제, 통상 현안, 노사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민생을 안정시켜 호황을 잘 마무리하는 것 역시 이번 경제팀의 주요 과제다. 나부총리의 취임 기자회견이나 처음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가장 먼저 등장했다.

그러나 경제 관료들은 경제 부총리로서 나웅배씨의 재임 9개월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건국 이래 최초였던 흑자 경제가 몰락한 서막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당사자는 당시 첫 경제장관회의에서 ‘경제장관회의를 허심탄회한 토론의 장으로 만들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의 선언은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당시 한국은행 독립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으나 나부총리는 이를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나부총리 “정경 유착 근절하겠다”

그는 경제기획원에 연구전담반을 만들어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 데 힘을 쏟기도 했다. 그는 당시 ‘재임 기간에 토지 제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고쳐 후세에 물려주겠다는 것이 나의 각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집권당인 민정당의 반대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토지공개념 도입에 앞장선 것은 나웅배·박 승 경제팀의 후임자인 조 순·문희갑 팀 몫이었다.

4·27 총선에서 집권당이 패하고 나자 경제 정책은 줄곧 혼선을 빚었다. 경제 관료들은 당시 나부총리가 정치 논리의 개입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부총리 재임 기간이 될 96년 4월에도 총선이 있고, 이번에도 집권당이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는 점 또한 공교롭게도 비슷하다.

경제 정책에 대한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기존 경제 총수들에게 주눅들었던 데다가 비자금 파문으로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위안이 되는 면이 있다. 이번 경제팀을 보고 기업의 사정을 고려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웅배 신임 부총리는 이 점을 의식한 듯, 뼈대 있는 취임사를 했다. 비록 ‘기업 활동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정경 유착과 기업계의 부패한 관행을 근절해 나가겠다’는 주목할 만한 발언이었다. 경제 부처 장관 두 번, 부총리 세 번을 거친 그는 이제 자신에게 따른 관운에 단지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가에서 널리 통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명예로운 경제 총수가 되는 일은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장수 경제 관료가 되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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