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라
  • 공병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96.06.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만남을 뜻한다. 우리는 숱한 만남을 통해서 자신이 지닌 지식의 지평을 넓히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다듬기도 한다. 수많은 만남 가운데서도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의 만남은 정말 유쾌한 일이다. 특히 책을 통한 만남이 아니라 직접 만날 기회를 잡는 일은 대단한 행운이라 하겠다. 지난달 내게 이런 행운이 두 번이나 찾아왔다.

한 사람은 <로마인 이야기>로 국내 독자에게 널리 알려진 문필가 시오노 나나미씨이고, 또 한 사람은 8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뷰캐넌 교수였다. 한 사람은 로마·베네치아·피렌체 역사와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를 다룬 역사 에세이의 저자인 60대 여성 문필가, 다른 한 사람은 정치학 부문에 경제학의 분석 영역을 확장해 공공선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한 70대 노학자이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 아주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사고에서 비슷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라는 면에서도 엇비슷한 점이 많았다. 두 사람 모두 현실을 인식하는 바탕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가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마키아벨리적 인간관이라고나 할까.

 
시오노 나나미와 제임스 뷰캐넌의 ‘마키아벨리적 세계관’


두 사람 모두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도 같았다. 20세기 사회주의라는 대실험이 엄청나게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된 배경에도 따지고 보면 낭만적인 인간관에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인 인간은 공익이나 타인의 이익을 위해 분투 노력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다. 이처럼 평범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경제는 물론 정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치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정치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가졌던 환상, 즉 정치가나 관료는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욕구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시오노씨는 <마키아벨리 어록>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를 복원하려 시도하고 있다. 뷰캐넌 교수 역시 <로맨스 없는 정치>라는 주장으로 정치가나 관료들 역시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분투·노력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가정 위에서 학문을 전개해 왔다. 물론 이 이론의 밑바탕에는 마키아벨리적 인간관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는 두 사람의 논리는 조직이나 국가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조건에까지 확장된다. 배움이 많은 사람일수록 지식인들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두고 싶어한다. 한국 사회에서 인텔리의 역할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어느 지식인의 주장에 대해서 시오노씨는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율리시즈 카이사르의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일만을 봅니다. 하지만 지식인은 보고 싶은 것 외에 다른 것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식인들은 스스로는 소중하지 않게 여기지만 보통 사람들이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는 배움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신의 생업이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개개인의 생활에 정부나 인텔리가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뷰캐넌 교수 역시 개개인에 의한 사적인 계약이나 교환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을 번영의 조건으로 들었다. 개인을 대신하여 제3자가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지식인 중심의 사고나 중상주의적 사고에 대해서 끊임없이 회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한 사람은 논리의 귀결을 통해서 얻은 번영의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환경에 적합한 시스템으로 변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환경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은 보통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같았다. 시오노씨는 이같은 결론을 로마나, 피렌체, 그리고 베네치아 역사를 공부하면서 얻은 것 같았다. 뷰캐넌 교수는 개인의 권리를 철저히 보호하는 법과 제도로 바꾸는 것, 즉 헌법 개혁에서 변화의 해법을 구한다. 실(實)의 세계에 사는 노학자와 허(虛)의 세계에서 살아온 문인이 얻은 진실은 하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