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그룹 공중 분해, 내막을 밝힌다
  • 로스앤젤레스·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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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구 전 회장, 미국에서 ‘재산권 반환 소송’ 제기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 서쪽으로 30분 가량 차를 달리면 태평양 해변을 따라 형성된 샌타 모니카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샌타 모니카 윌셔 가에 있는 배링턴 플라자 아파트먼트에는 올해 78세인 한국 노인이 살고 있다. 15평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이 노인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좌반신이 마비되어 왼쪽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하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어야 겨우 걸을 수 있다. 이 노인의 이름은 조봉구. 한때 재계 순위 9위까지 오른 삼호그룹의 창업자이다.

조씨는 서울 강남에 부동산 개발 열풍이 일던 70년대에 부동산 업계에 신화를 남긴 인물이다. 강남 테헤란로 주변 역삼동·방배동·도곡동과 제주도에 각각 수백만평씩 땅을 가졌던 조씨는 한국 최대의 부동산 재벌이었다. 조씨가 산 땅 부근의 땅을 사서 갑부가 된 이들도 있었다. 그가 고향을 등지고 미국 땅에 발을 디딘 해는 84년 7월. 국제그룹이 해체되던 무렵 그는 뇌출혈로 쓰러져 좌반신이 마비되었다. 그 뒤로 국내에서 조씨에 대한 소식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 조씨가 14년이 지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12월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에 재산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조흥은행과 대림그룹. 조흥은행과 대림그룹은 캘리포니아와 로스앤젤레스에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미국 국내법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조흥은행의 해외 점포와 대림그룹의 자회사는 모두 캘리포니아 법인이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주법의 적용을 받는다.

조봉구씨는 소장에서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84년 8월 전두환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씨와 대림산업 이준용 사장이 결탁하고 김만제 당시 재무부장관(현 포철 회장)과 송기태 당시 조흥은행장이 실무 작업을 맡아, 삼호그룹을 부실 기업으로 분류한 뒤 대림그룹에 넘겼다’라고 주장했다.
“로비 안했으니 이런 일 당하지 않느냐”

삼호그룹은 전두환 정권이 국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80년대 중반 단행한 부실 기업 정리 명단에 올랐다. 86년 5월31일 경제기획원 산업정책심의회가 국제그룹 5개 사와 삼호그룹 4개 사를 산업합리화 대상 기업으로 선정하자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든 두 대기업은 하루아침에 공중 분해되었다.

삼호그룹은 이보다 2년 전 이미 대림그룹에 넘어갔다. 김만제 당시 재무부장관은 84년 8월24일 조씨의 둘째아들 조용시씨(47)를 장관실로 불렀다. 조봉구씨는 당시 뇌출혈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 조용시씨가 삼호그룹 경영을 맡고 있었다. 조용시씨는 그 만남에서 ‘사형 선고’통보를 받았다.“오전 10시30분 장관실로 들어갔더니 김만제 장관 혼자 있었다. 김장관은 ‘우리나라 일부 기업들의 부실 상태가 감당할 수 없는 선까지 이르렀다. 고위층과 협의해 산업합리화 조처를 마련했다. 삼호는 대림에 합병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조흥은행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장관실을 나온 조용시씨는 곧바로 송기태 조흥은행장을 찾아갔다. 조씨는 송행장과의 면담에서 외압의 실체가 누구인지 ‘감’을 잡았다고 주장한다. “조흥은행장은 ‘위에서 만들어 놓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위임장이라는 제목만 씌어진 백지에 서명하라고 했다. 은행장은 ‘위에 로비를 하지 않으니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느냐. 위가 어딘 줄 알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막대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 당시 어느 기업보다도 자산 구조가 건전하다고 인정받던 삼호그룹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은 건설 업체에 중동 바람이 불었던 78년부터였다. 쿠웨이트 주택부가 발주한 자하라 지역 주택 공사를 2억 달러에 수주했으나 해외 공사 경험과 기초 지식이 없이 뛰어들어 낭패를 보았다. 그 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로 진출해 4억달러 규모의 알카라치 아파트 공사를 맡았다. 77년 수출 백억 달러를 달성한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큰 공사였다. 한국 정부는 당시 2억 달러를 지불 보증해 주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났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까탈을 부리며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돈을 주지 않자 한국 정부가 지불 보증한 2억 달러를 갚을 길이 없어졌다. 이 두 공사가 실패하자 삼호그룹 주력사인 (주)삼호는 3억5천만달러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조봉구 회장은 곧 이어 7억 5천만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민방위부 공사를 수주하면서 회생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82년 이철희·장영자 사건이 터지면서 삼호그룹을 비롯해 국내 기업 대부분의 신용이 떨어졌다. 제2 금융권은 삼호그룹의 단기 채권 7백55억원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외 건설 시장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삼호의 자금 조달 능력은 급격히 떨어져 제 2 금융권이 돌리는 어음을 자력으로 막지 못했다. 삼호의 주거래 은행으로 담보 어음을 막아주던 조흥은행도 덩달아 부실해졌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진 조흥은행은 84년 2월부터 경영관리단을 파견했다. 당시 삼호그룹 처리를 맡았던 조흥은행 위성복 수석상무(당시 영업 3부장)는 “국제그룹은 전두환 정권이 부당하게 해체한 측면이 있지만 삼호그룹 처리는 그렇지 않다. 당시 삼호그룹이 가진 총부채에다 부동산을 포함한 총자산을 뺀 손실액이 2천8백97억원이나 되었다”라고 말했다. 위씨는, 84년 2월29일 삼호의 단기 채무가 5백24억원이나 되었으나 조씨 일가는 이를 갚을 만한 자금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84년 8월24일 대림산업이 삼호그룹 계열사를 위탁 경영하기 시작했고, 86년 5월 정부의 산업합리화 조처로 대림산업에 완전히 합병되었다.

김만제 포철 회장 “합병 통보했다” 인정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당시 재무부장관)도 측근을 통해 84년 8월24일 조용시씨를 만난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조씨의 증언과는 다르게 주장했다. 김회장은 “조용시씨를 만났을때 이미 일(부실 처리)이 다 진행된 상태여서 통고만 한 것이다. 당시 조씨는‘(모두 처분하지 않고) 남겨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후 조봉구씨 부자는‘삼호그룹을 돌려달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냈지만 노태우 정권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여러 번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조씨 부자는 미국 국무부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게도 진정서를 보냈다.

이러한 노력들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조봉구씨는 그린 브로일렛 테일러 필러 & 패니시 LLP 법률회사(존 테일러 법률회사)를 찾았다. 조씨로부터 사건 개요를 들은 존 테일러 법률회사의 경제 사건 전문 변호사들은 사건 일지와 관련 증거물을 면밀히 검토한 후 승소할 수 있다고 보고, 승소 후 배상금의 25%를 받는 조건으로 무료 수임하게 되었다. 현재 경제 사기·탈세·부패 사건 전문 변호사 3명, 재판 진행 전문 변호사 5명이 맡아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존 테일러 변호사(84쪽 인터뷰 참조)는 “조흥은행과 대림그룹이 빼앗은 삼호그룹의 재산과 이를 이용해 얻은 이익 전부를 받아내겠다. 대략 20억 달러를 웃돌게 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재판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조씨 부자가 승소하면 대림그룹과 조흥은행은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거나 미국내 자회사들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철수해야 한다.

14년이나 지난 사건이 지금 커다란 문제로 재론된 데는 산업합리화 조처라는 불투명한 경제 정책에 1차 책임이 있다. 전두환 정권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실 기업을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진행한 산업합리화 조처는 당시부터 의혹의 대상이었다. 산업합리화 조처 때 국제·삼호·진양·남강·정아를 부실 기업으로 분류한 기준이 무엇인지, 인수 기업 선정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인수 조건은 무엇이었는지 정부와 관련 은행은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

당시 김만제 재무부장관과 부실 기업 정리 실무 책임자였던 임창렬 재무부 이재국장(현 경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과 김우석 재무부 이재1과장(현 재정경제원 국제금융증권 심의관)은 정리 대상 기업의 부채 규모와 인수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내역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임창렬 이재국장은 “인수 기업에 대한 지원 규모를 밝히면 우리나라 은행들의 경영 상태가 외부에 노출되고, 부실 기업의 부채 규모를 밝히면 해외 신용도가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임창렬 당시 이재국장 ‘도피성 해외 파견’ 의혹

임창렬 국장과 김우석 과장은 여러 가지 의혹을 남긴 채 부실 기업 정리를 마치자마자 각각 국제통화기금과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 해외 파견 근무를 나갔다. 재정경제원의 한 고위 관리는“부실 기업 처리 과정에서 벌어진 무원칙과 권한 남용을 의식해 임국장과 김과장은 도피성 외유가 짙은 해외 파견 대상이 되었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조봉구씨는 “삼호가 부실 기업이었다면 주거래 은행인 조흥은행이 부도를 내고 기업주를 구속되게 해야 했다. 또 부동산을 비롯한 삼호 자산을 팔아 빚을 청산한 다음 다른 기업이 인수했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벌 구조 조정 논의가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재벌 구조 조정은 분명한 원칙과 투명성 있는 정책에 의해 유도되어야 한다. 뚜렷한 원칙 없이 산업 구조 조정이 진행된다면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를 살리기 어렵고, 훗날 또 다른 의혹에 휘말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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