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휴대폰 시대 개막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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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계 위성 통신 ‘이리듐 사업’ 준비 완료…SK텔레콤 동참, 9월 상용 서비스 개시
지난 5월18일 오전 6시16분 미국 밴던버그 공군 기지. 위성 하나가 거대한 화염을 뿜어내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새로운 위성 통신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였다. 그 무렵 지구 반대쪽 서울에 있는 SK텔레콤 목정래 부사장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 위성 발사 주체는 저궤도 위성 이동통신 국제 컨소시엄인 이리듐 사인데, 목부사장은 이리듐코리아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듐 사는 지난해 5월 첫 위성을 쏘아올린 이후 1년 만에 위성 이동통신 사업에 필요한 통신 위성 72기를 모두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최초의 범세계 위성 휴대 통신(GMPCS·Global Mobile Personal Communications by Satellite) 사업 준비가 일단락된 것이다. 이 통신 위성들은 지상 7백80㎞ 상공에 있는 저궤도 6개를 지구 자전 속도보다 빠르게 돌면서 전세계에 이동통신 서비스를 하게 된다. 이리듐 사는 7월 시험 서비스를 거쳐 9월23일 첫 상용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범세계 위성 휴대통신 사업은 7백80∼1만3백55㎞ 상공에 띄워올린 통신 위성들을 연결해 지구촌을 단일 통화권으로 만드는 차세대 위성 시스템을 일컫는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의 단말기 하나로 사막·밀림·극지를 가리지 않고 어느 지역에서나 통신이 가능하다. 전화 통화뿐만 아니라 무선 호출과 팩스 송수신도 가능하다. 기존 이동전화 서비스는 올해 가입자가 2억5천명까지 늘어날 전망이지만,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은 전세계 면적의 20%밖에 안된다. 또 국가마다 다양하고 복잡한 통신 방식을 갖고 있어 기존 이동통신 단말기로는 국가간 통신이 불가능하다.

모토롤라 엔지니어는 이동통신망이 가진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려고 80년대 초 처음 이리듐 사업을 제안했다. 91년에는 모토롤라가 주도하는 국제 컨소시엄이 결성되었다. 그 뒤 미국 통신업체 로럴 사와, 코드 분할 다중 접속 방식(CDMA)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미국 퀄컴 사가 주도하는 저궤도 위성 이동통신 사업 국제 컨소시엄인 글로벌스타도 출범했다.
‘글로벌스타’ 컨소시엄에는 데이콤 등 참여

SK텔레콤은 미국 모토롤라·스프린트, 일본 DDI, 독일 베바콤 등 15개국 20여 개 통신 사업자와 함께 이리듐 사업을 준비했다. 국내 업체로서는 유일하게 이리듐 사업에 참여한 SK텔레콤의 지분율은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를 기준으로 했을 때 3.7%이고, 우선주 전환이 이루어지면 4.4% 가량 된다. 지분 투자 금액은 8천2백만달러. SK텔레콤은 위성 통신 전문업체 이리듐코리아를 설립해 국내 서비스를 전담케 하고 있다. 이리듐코리아는 지난해 10월 정보통신부로부터 위성 이동통신 사업 가허가를 얻었고, 지난 3월 정식 사업 허가 신청서를 정보통신부에 제출했다.

SK텔레콤은 이리듐 국제 컨소시엄이 결성된 지 3년이 지난 94년 뒤늦게 참여했으나, 지난해 8월 말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이리듐 지상 관제센터를 짓고 관련 장비를 설치했다. 이 관제센터는 충주와 진천에 건설된 지구국과 서울 봉천동의 교환국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리듐코리아는 지난 3월부터 장비 성능을 시험하며 올해 7월에 시작될 시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리듐 위성 72기가 돌고 있는 궤도보다 높은 1천4백14㎞ 상공에는 또 다른 통신 위성 56기가 지구 자전 방향을 따라 빠르게 돌 예정이다. 또 하나의 저궤도 위성 이동통신 사업 컨소시엄인 글로벌스타가 쏘아올릴 통신 위성들이다. 글로벌스타의 기본 시스템과 기능은 80년대 초 미국 퀄컴과 스페이스시스템/로럴 사가 최초로 개발했다. 94년에는 에어터치(미국)·프랑스텔레콤·보다폰(영국)을 비롯한 통신업체와 로럴(미국)·알레니아(이탈리아)·다사(DASA·독일) 같은 위성과 통신 장비 제조업체가 참여하는 국제 컨소시엄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에서는 94년 현대전자·데이콤·현대종합상사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글로벌스타에 참여했다. 이 컨소시엄은 3천7백50만달러를 투자해 글로벌스타 지분 6.24%를 확보하고 전략적 사업 파트너가 되었다. 국내 컨소시엄 지분 가운데 70%는 현대전자, 10%는 현대종합상사, 20%는 데이콤이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서 국내 컨소시엄 안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현대전자와 현대종합상사가 글로벌스타에서 발을 빼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 컨소시엄의 주간사 격인 로럴 사와 현대전자가 지분 양도와 관련해 협상하고 있다.

글로벌스타코리아는 지난해 11월 정보통신부로부터 위성 이동통신 사업 허가권을 얻었고, 데이콤이 상용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원래 지난해 8월 첫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다소 늦어져 올해 2월5일에야 첫 위성을 쏘아올렸다. 따라서 상용 서비스도 99년 상반기에나 되어야 가능할 전망이다.

이리듐과 글로벌스타 컨소시엄이 지상 1천5백㎞ 이하 상공을 도는 저궤도 위성을 이용하는 데 반해, 국제위성통신기구는 지상 만㎞가 넘는 중궤도 위성을 이용한 위성 이동통신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국제위성통신기구는 80년대 초부터 3만6천㎞ 상공에서 지구 자전과 같은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도는 정지 궤도 위성을 이용해 선박·비행기·차량에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위성의 궤도와 지상 시스템 사이의 거리가 워낙 멀어 송수신이 0.5초 가량 지연되고, 통신 단말기가 크고 이용 요금이 비싸 대중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국제이동통신기구는 정지 궤도 위성이 가진 한계를 극복한 중궤도 위성 사업(아이코 사업)을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아이코 사업은 지상 1만3백55㎞ 중궤도에 통신 위성 12기를 띄워 전세계에 고르게 퍼져 있는 12개 위성 접속국과 연결하는 통신망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사업은 전세계 44개국 기간 통신 사업자와 위성·통신 장비 제조업체가 참여한다. 한국에서는 한국통신·삼성전자·신세기통신이 60 대 20 대 20 비율로 8천4백만달러를 공동 투자해 아이코 지분 5.84%를 확보했다. 85년부터 국제이동통신기구 회원으로 활동한 한국통신은 아이코 사업에 참여해 지난해 10월4일 정보통신부로부터 위성 휴대 통신 서비스의 국내 가허가를 얻었다. 내년에 본허가를 신청하고 200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기업체·언론·정부 기관이 주요 고객

국내에 아이코 서비스를 제공할 한국통신은 전세계 열두 곳밖에 없는 아이코 통신용 위성 접속국을 천안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해, 동북 아시아 위성 이동통신 시장의 패권을 넘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NEC·파나소닉·미쓰비시, 스웨덴의 에릭슨과 함께 아이코 단말기 제조업체로 선정되었다.

범세계 위성 휴대통신 사업이 대중화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우선 단말기가 일반인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이리듐 서비스에 사용될 교세라·모토롤라 단말기는 5백만원이나 한다. 또 이리듐에 쓰이는 전파는 자동차 지붕 두께 정도를 투과할 수 있다. 따라서 건물 안이나 밀폐된 곳에서는 통화가 불가능하다. 건물 안에서 이리듐 단말기를 사용하려면 창가로 가야 한다. 위성 궤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전파가 강한 이리듐이 이 정도라면 글로벌스타나 아이코는 말할 것도 없다.

이리듐과 글로벌스타의 마케팅 부서는 위성 휴대통신 서비스가 기존 이동통신을 보완하는 통신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이리듐코리아 박기원 마케팅 팀장은 “위성 이동통신 서비스는 기존 이동통신 사업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위성 이동통신 업체들은 기존 이동전화와 연동할 수 있는 시스템과 단말기를 내놓고 있다. 기존 이동전화가 가능한 지역은 기존 무선 통신망을 이용하고, 무선 통신망이 커버하지 못하는 지역은 위성 이동통신을 사용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듐코리아는 국제적 통신을 필요로 하는 기업체·언론·정부 기관이 주요 사용자가 될 것으로 본다.

범세계 위성 휴대통신 사업은 20세기 이동통신인 셀룰러폰 및 개인 휴대통신(PCS) 시스템과 21세기 이동통신 시스템인 IMT-2000 사이에 놓여 있다. IMT-2000은 이동통신 시스템의 완성판으로 무선 통신망을 이용해 음성·영상·데이터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송수신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21세기 초에 실현될 전망이다. 범세계 위성 휴대통신 사업은 통신의 무한 자유를 선언하는 IMT-2000보다 일찍 이 땅에 온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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