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억짜리 '이건희 비행기'
  • 신호철 기자 (eco@e-sisa.co.kr)
  • 승인 200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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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일의 자가용 비행기 '글로벌 익스프레스' 해부


지난 7월17일 오전 5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동아일보사 김병관 전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사돈인 안경희 여사의 빈소를 찾았다. 발인하기 한 시간 전이었다. 전날인 7월1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했던 이회장이 가까스로 조문할 수 있었던 것은 전용기인 글로벌 익스프레스 덕분이었다.




흔히 '이건희 비행기'라고 불리는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고급 비즈니스 용도로 개발된 자가용 비행기. 캐나다 봄바디어 사가 제작한 이 비행기의 가격은 3천6백96만4천 달러(약 4백26억원)로 KF16 전투기(3백50억원)보다 비싸다. 도요타 모터즈·드림웍스 유니버설·다임러 크라이슬러·월 마트 등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이 비행기를 전용기로 쓰고 있다. 이회장은 2000년 3월부터 이 비행기를 탔다.


마하 0.85로 1만2천28km 논스톱 비행


동체 길이는 30.3m, 날개 너비는 28.65m에 13인승이어서 여객기와 비교하면 작은 편이지만, 기름을 한번 넣으면 1만2천28km를 날 수 있어 서울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속도도 일반 여객기와 비슷한 마하 0.85다. 비행기 내부에는 화장실이 2개 있고, 위성 통신기기·커피메이커·전자렌지 등이 있다. 의자를 돌릴 수 있어 기내 회의도 가능하다. 이 비행기를 타본 서울지방항공청의 한 관계자는 흔들림이 적어 무척 편안했다고 말했다.




공중 집무실 :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사용하는 비행기와 같은 기종인 글로벌 익스프레스의 외양과 내부 모습(사진들). 내부는 칸막이가 있어 방 2개로 나뉘어 있으며 위성 통신기기·전자레인지 등을 갖추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주로 국제 회의에 참석할 때 이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암 치료를 위해 미국을 오가면서 글로벌 익스프레스를 여러 차례 이용했다. 시드니올림픽 참관 때 이용한 것도 바로 이 비행기다. 삼성측은 "이건희 회장은 1년에 두세 차례밖에 전용기를 이용하지 않는다. 한 달에 7∼9회 정도는 임직원들이 사용한다"라고 밝혔다. 이 비행기는 지난해 3월 도입 이후 1년 사이에 400 시간을 운항했는데, 대략 지구를 열 바퀴 돈 셈이다.


임직원들이 이용할 때는 고급 기기를 운송하거나 극히 중요한 사업상의 약속을 지켜야 할 경우라고 한다. 삼성 홍보실 최석진 과장은 "일반 여객기 운항 시각에 맞추다 보면 제 시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긴급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신용을 지키기 위해 전용기를 쓴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이익이다"라고 밝혔다.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이건희 회장이 두 번째로 소유한 전용기다. 이회장은 1994년까지는 한진그룹의 걸프스트림이나 쌍용그룹의 챌린저(C6013-A)를 빌려 타고 다녔다. 하지만 한 번 왕복하는 데 4천만원 가량 임차료를 내야만 했다. 그러다 팰컨900B 비행기 2대를 독자적으로 구입해 운영한 것이 1995년. 도입 당시 국내 언론들은 '초호화판 비행기 구입'이라면서 비판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프랑스 다소 사가 제작한 이 비행기의 값은 2백50억원대였다.


팰컨900B는 1998년과 2000년에 각각 미국 회사에 매각되었다. 현재 건설교통부에 등록된 비행기 2백78대 중 자가용 목적으로 등록된 비행기는 '이건희 비행기' 한 대뿐이다.


삼성측은 호화 비행기라는 비난 여론에 민감히 반응한다. 그래서인지 이회장 개인 전용기가 아니라 삼성 임직원들을 위한 비행기라는 점을 유독 강조한다. 현재 법적으로는 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삼성테크윈의 공동 소유로 되어 있다.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외국은 기업이 자가용 비행기를 소유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호화판 비행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건희 비행기'는 현재 김포공항 계류장에 세워져 있다. 국내선 청사에서 활주로 건너편을 보면 하얀색 글로벌 익스프레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거나 접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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