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업 36%, 돈 벌어 이자도 못 갚어
  • 소종섭·이문환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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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 명단 최초 공개…
섬유·화학·전자 분야 '심각'


〈시사저널〉은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백36개 기업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상장 기업들을 처음으로 공개한다(12월 결산 법인 5백70개사 대상·금융사 제외). 상장 기업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01년 상반기 결산 보고서를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업체는 1백91개 기업(36%)으로 밝혀졌다. 상장 기업 10개 가운데 3.6개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돈 벌기 힘드네" : 상반기 상장 회사 결산 결과 특히 섬유, 전자·통신 업종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 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라는 것은 영업 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갚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 기업 가운데는 대기업 계열사도 상당수 들어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74쪽 상자 기사 참조).


8월20일 상장회사협의회는 상장 회사들의 이자보상배율 현황을 발표하면서 이자보상배율이 높은 상위 20개사 명단만 공개했다. 한때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을 일부 공개했다가 기업들의 항의가 빗발쳐 곤욕을 치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 이한득 연구원은 "기업에 관한 정보가 자유롭게 공개·유통되어야 시장 원리가 잘 작동할 수 있다. 기업의 좋지 않은 측면을 숨기려는 풍토가 오히려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상장 기업이라면 이자보상배율도 모두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들이 명단 공개를 꺼리는 이유는 '잠재적인 부실 기업'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연구원처럼 "이자보상배율과 자본비용보상배율(영업 이익을 이자 비용과 자기자본비용을 더한 금액으로 나눈 수치)을 함께 고려해 기업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 이자보상배율은 기업 부실화 여부를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잣대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은행 정정호 경제통계국장은 "금융감독원이 이자보상배율을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 지표로 사용하는가 하면, 금융권에서는 대출 금리를 차별화하는 한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관리 대상 종목 기업은 83%가 해당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들을 업종 별로 살펴보면 섬유, 화학, 제지, 전자·통신 분야가 두드러진다. 섬유 분야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 김각중 회장이 대표이사인 경방과 삼영모방·새한·충남방적이 이자보상배율 1을 넘지 못하고 있다. 충남방적은 이자 비용은 84억원인데 영업 이익은 그 4분의 1인 20억원에 그쳤고, 영업 이익을 6천6백만원 올린 삼영모방은 이자 비용으로 4억8천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섬유 분야를 담당하는 대우증권 이수해 애널리스트는 "세계적으로 섬유 경기가 좋지 않아 수출 단가가 많이 떨어지는 추세이다. 기업들이 중국 특수를 기대하고 설비 투자를 많이 했는데 경기가 나빠지니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영업 이익은 안 나면서 이자만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화학업종에서는 한때 주당 80만원대를 호가해 '황제주' 소리를 듣던 태광산업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 손실(6백73억원)을 기록했는가 하면, 금양·SK케미칼·한화·송원산업은 영업 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감당하지 못해 밑지는 장사를 했다. 지난 6월부터 노사 분규에 시달려온 태광산업은 주가가 17만원까지 밀리고 신용 등급도 강등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자수익이 이자 비용보다 많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영업 이익을 한푼도 올리지 못한 라미화장품은 이자 비용으로 25억원을 지불했고, 1억여원 영업 이익을 올린 송원산업은 44억원을 이자 비용으로 썼다. 현대증권 황형석 연구원은 "태광산업은 공장이 돌아가지 않은 탓이고, 다른 회사들은 수익성보다는 설비 증설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다"라고 원인을 진단했다.


제지업종도 사정은 비슷하다. 1990년대 중반 신문업계의 부수 경쟁 등으로 호황을 누릴 때 무분별하게 설비 증설에 뛰어든 후유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한화증권 김영진 연구원은 "내년에는 회복될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한솔제지는 올 상반기 영업 이익을 1백68억원 거두었는데 이자로 낸 돈은 그 5배가 넘는 8백92억원이었다. 신풍제지나 중앙제지의 경우는 아예 영업에서도 적자를 보았다.


전자·통신 분야는 36개 상장 기업 가운데 한창·청호전자·하이닉스·아남반도체 등 21개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정보통신(IT) 분야 침체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올 상반기 4억9천여만원 영업 이익을 본 한창은 이자 비용으로 73억원을 지출했고, 7천5백만원 영업 이익을 본 삼화전기는 12억여원을 이자 비용으로 썼다. LG투자증권 박강호 연구원은 "IT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 경쟁력이 없다기보다는 수요 자체가 없어졌다. 4/4분기부터는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메리츠증권 김남균 과장은, 단가가 하락한 것과 수주 물량이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상장 기업들 가운데는 이미 부도가 발생해 기업 부실이 현실로 드러난 관리 대상 기업도 있다. 전체 관리 대상 기업 중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갑을 등 72개로 83%에 달한다. 부채 상환 능력과 부실화의 상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6월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팀이 펴낸 자료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이 1999년과 2000년 연속으로 1 미만인 제조업체는 전체 제조업체의 16.7%였으나 이들 기업의 차입금 규모는 제조업체 전체 차입금 230.4조원의 35.6%에 이르는 82조원이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빚 부담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상장회사협의회가 지난해 8월과 올 8월에 펴낸 '상장 회사들의 상반기 이자보상배율' 자료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부채 상환 능력은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업체의 비율은 1999년 44%, 2000년 37.2%, 2001년 상반기 34.7%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고, 이자보상배율이 5 이상인 업체는 1999년 12.8%, 2000년 18.5%, 2001년 상반기에는 20.4%로 늘어났다. 이 결과에 대해 LG경제연구원 이한득 연구원은 기업들의 부채 상환 능력이 양극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씨는 "상장 기업들의 3분의 1 정도는 계속 이자보상배율 1 미만에 머무르고 있다. 또 하위 10%의 평균 이자보상배율은 1996년 이후 0 이하에 머무르면서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는 반면 상위 10%의 평균 이자보상배율은 1999년 14.8, 2000년 21.3 등으로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자보상배율이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 잣대 중 하나이다 보니 이를 높이려는 기업들의 몸부림도 치열하다. 이자보상배율이 0.59인 새한의 경우 올 들어 임원 급여를 30% 삭감하고 25%가 넘는 사원을 구조 조정했다. 두산은 그룹의 간판 주자이던 OB맥주를 팔아치우면서까지 이자 비용을 줄이는 데 전력 투구했다.


정부와 민주당은 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 높이기 노력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이자보상배율이 우량한 기업은 부채 비율 200% 준수 대상에서 제외해 주기로 했다. 민주당 강운태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8월10일 "해운업 등 일부 업종에서는 이자보상배율이 높은 수준인데도 부채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들 기업들은 영업 이익이 괜찮은 만큼 부채 비율 기준을 완화해 줄 경우 신규 자금 조달이 쉬워지는 등 실질적인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도리코·퍼시스, 이자 부담 '0'


한편에서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들에 대한 구조 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7월25일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들에 대한 구조 조정이 더 진전되어야 투자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이들 기업들의 부채 상환 능력이 개선되지 못하면 우리 경제와 금융 시장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이 0.88인 데 비해 회사 정리 기업은 1.17, 화의 기업은 1.32에 달하는 경우도 있어 이자보상배율을 구조 조정의 유일한 잣대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연구원은 "여러 요소를 감안해 단일 퇴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법원의 직접적인 개입과 판단을 최소화하고 공시 강화 등을 통해 시장 기능에 의한 기업 퇴출과 회생을 활성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조사 결과 올 상반기 영업에서 적자를 보아 영업 활동만 가지고는 원금은 물론 이자를 갚을 능력이 아예 없는 상장 기업도 69개사에 달했다. 이렇듯 돈 벌어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들이 있는 반면 이자 비용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기업도 있다. 신도리코와 퍼시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 이자 비용을 한푼도 지출하지 않았다. 올해는 이들 두 회사에 남양유업·일정실업·제일기획·LG애드가 추가되어 이자 비용이 전혀 없는 상장 기업은 6개 사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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