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박 찬 현대아산, 문 닫나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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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전액 잠식, 어음 막을 돈 없어…
정몽헌 '12월 방북 담판'이 운명 결정
'혼자라는 아픔만이 내 곁으로 밀려왔네. ∼내일이 찾아와도 너는 나를 찾지 않겠지만, 내일이 찾아와도 나는 너를 기다릴 테야.'


서울훼밀리가 부른 〈내일이 찾아와도〉라는 노래의 한 대목이다. 지난 11월18일 금강산에 있는 해금강호텔에서 열린 '금강산 관광 3주년 기념 노래자랑'에서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은 부인과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혼자라는 아픔만이∼' 노래를 부르던 김사장의 머리 속에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




현대아산은 지난 11월18일 '금강산 관광 3주년 관련 자료'라는 자료집을 냈다. 여기에는 '남북교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등 성과를 자랑하는 대목도 있지만 현대아산으로서는 뼈아픈 내용도 들어 있다. 1998년 11월부터 올 9월까지 금융비용과 투자비를 제외하고 약 6천억원 손실, 고정비용 및 관광객 부족으로 월평균 25억원의 영업 손실 발생중….


회사가 튼튼하다면 이런 정도는 큰 문제가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1999년 2월5일, 대북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현대아산은 현재 자본금 4천5백억원을 모두 까먹은 상태이고, 북한에 주어야 하는 10월분 지불금 44만8천3백 달러(약 5억7천만원)도 송금하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들이 내는 관광료말고는 들어오는 돈이 없다.


계열사·금융권·정부, 지원 거절해 '부도 위기'


이런 상황인데 11월30일 현대아산에는 9백만 달러(약 1백10억원)짜리 어음이 돌아온다. 지난 8월31일, 현대아산이 현대상선으로부터 사들인 해금강호텔 및 딸린 설비 매입 대금 가운데 일부이다. 당시 현대아산은 매입 대금 천만 달러 가운데 100만 달러만 현대상선에 지불하고 9백만 달러는 어음으로 주었다. 지금대로라면 현대아산은 도저히 이 돈을 갚을 능력이 없어 부도가 불가피하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어느 정도는 몰라도 무한정 어음을 연장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아산이 지고 있는 빚은 이것만이 아니다. 외환은행에도 70억원을 빚지고 있다. 현대아산은 최근 계동 지점을 통해 외환은행측에 30억원을 더 빌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서류가 본점까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지점에서 거절당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육로 관광이 뚫리는 등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더 지원하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6월 말(3백억원)과 7월 중순(1백50억원)에 4백50억원을 지원했던 관광공사도 육로 관광과 관광특구 지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추가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현대상선과 현대자동차 등 현대 관련 회사들도 지원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결국 현대아산으로서는 현대 계열사·금융권·정부 등 어느 곳으로부터도 지원받을 수 없는 사면초가 상태에 몰린 셈이다.


게다가 금강산 관광은 관광객 숫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실정이다. 현대아산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 달 관광객을 4천명으로 잡았을 때 1인당 60만원 정도, 5천명이라면 1인당 45만원 가량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객 숫자는 올해 들어서 한 달 평균 4천9백여 명 수준으로 지난해의 5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크게 줄었다. 게다가 관광 비수기인 겨울철에 접어들어 숫자가 더욱 줄어드는 추세여서 적자 폭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현대아산에 출자한 현대 계열사





















현대상선(주) 현대중공업(주) 현대건설(주) 현대미포조선(주)
40.0% 19.8% 19.8% 5.0%
현대자동차(주) 현대증권(주) (주)현대백화점 현대종합상사(주)
5.0% 4.5% 2.9% 2.9%




줄어드는 금강산 관광객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10월 말
10,543명 147,460명 212,020명 53,115명


현대아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여객선 네 척을 설봉호 한 척으로 줄여 운항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1백10여 명인 직원들의 기본 인건비(약 3억원)와 설봉호의 용선 대금(하루 9천5백 달러이므로 한 달 3억원 정도)마저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말한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 10월에는 직원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했고, 11월 달 임금을 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현대아산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월31일부로 이사대우 이상 임원 18명 중 13명이 사임했고, 김윤규 사장은 무보수 근무를 선언했다. 직급에 따라 100∼300%까지 직원들의 보너스도 삭감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여서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아산 고위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 이제는 차입하지 말고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가 특별히 도와준 것도 없지만, 더 이상 정부에 구걸하지 않겠다며 정부에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만약 현대아산이 문을 닫아 금강산 관광 사업이 중단된다면 경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현대경제연구원 홍순직 연구원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들 것이고, 국가 차원에서 대외 신인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현대아산, 북한에 최후 통첩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금강산 관광 사업은 남북이 경제 협력을 통해 전쟁 위협을 감소시키는 '평화 경제'의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서해 교전 사태 등이 일어났을 때도 금강산 관광이 지속됨으로써 군사적 충돌이 확대되는 것을 막아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서교수는 1972년 기본조약을 체결한 직후부터 1989년 통일할 때까지 17년 동안 매년 평균 30억 달러 이상을 동독에 지원한 서독의 사례를 들어, 눈에 보이는 단기적인 경제 효과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무형의 경제 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현대아산이 문을 닫는다면 1천8백억원을 출자한 현대상선과 2백25억원을 출자한 현대자동차 등 현대 계열사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막다른 길에 몰린 현대아산은 현재 북한측에 "금강산을 관광특구로 지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답을 달라. 안한다면 중단이 불가피하다"라고 최후 통첩을 보낸 상태이다. 12월 중순쯤 정몽헌 회장이 방북해 북측과 벌일 최종 담판의 결과가 현대아산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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