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3사 지난해 순익 3조원대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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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원가 분석…대손 충당금 부풀린 사실 밝혀내



지난 5월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앞에 영화 <스크림>에 등장하는 살인마 가면을 쓴 사람이 나타났다. 신용카드개선시민연대 회원들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카드 회사가 은행 대출 금리에 비해 턱없이 높은 현금 서비스 수수료를 받아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용카드 수수료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대변한 것이다.


2주일 뒤인 5월 23일, 금융감독원은 각 카드 회사 현금 서비스 수수료를 리딩카드회사 수준으로 인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리딩카드회사란 업계에서 수수료가 가장 낮은 회사를 뜻하는데, 현재 19.96% 수준을 받고 있는 농협BC카드가 이에 해당한다. 22∼23% 수준인 현행 현금 서비스 이자 수수료를 10%대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전문 기관에 의뢰한 원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적정 수수료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전문 기관은 금융연구원과 삼일회계법인을 말한다. 삼일회계법인은 삼성카드·LG카드·국민카드로부터 자료를 받아 신용카드 수수료 원가를 분석했다. 상무급 임원 1명과 공인회계사 6명을 투입해 두 달간 작업한 최종 보고서를 5월 초 금감원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의 자세한 내용은 비밀에 부쳐졌다. 보고서 담당자인 삼일회계법인 백원기 상무는 “나는 보고서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금감원에 가서 협조를 구해보라”고 말했다.





현금 서비스 수수료 8% 내려도 흑자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김병태 팀장은 “워낙 이해관계자가 많아 민감한 사안이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보고서가 나온 지 한 달이 넘도록 금감원은 ‘마무리 작업중’이라며 공개를 미루고 있다. 때문에 카드 회사와 금감원 사이에 막판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6월초 금융연구원에서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적정 수수료 모색을 위한 공청회를 열 계획이지만 과연 자세한 수치가 공개될지는 알 수 없다.


<시사저널>이 다른 경로로 확인한 결과, 보고서 내용은 카드 회사에 상당히 불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민감한 내용으로는 조사대상에 카드 회사의 연간 수익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3개 카드 회사의 당기순이익은 1개사 평균 8천2백60억 원(법인세 차감 전)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1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회사 쪽에서 비정상적으로 높게 책정한 대손충당금이 이번 금감원 보고서에는 냉정하게 재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현금 서비스 이자율을 1% 포인트 내릴 때마다 카드회사 수입은 1천억원이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카드 회사들의 자본 규모를 감안해 평균 2천억 원 정도의 수익은 정상 이윤으로 간주한다. 계산 대로라면 지난해 카드 회사는 최고 8% 포인트까지 수수료를 낮추었더라도 정상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보고서 내용 중 또 특기할 사실은 카드 회사 순수익의 거의 전부가 현금 서비스에서 창출된다는 점이다. 카드사 수익은 크게 현금 서비스 수익과 신용 판매 수익으로 나뉜다. 신용 판매는 다시 개인 회원 수익과 가맹점 수익으로 나뉜다. 하지만 실제 가맹점 수수료로 얻는 2천6백억원 가량은 회원 모집에 따른 비용 2천6백억원으로 상쇄되어 전체 신용 판매 수익은 손익분기점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이번 보고서 내용은 국내 카드사의 수익 구조가 왜곡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캐피탈 원이나 MBNA과 같은 외국 카드 회사의 경우 순수익 중 현금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20% 정도로 국내 카드사와 큰 차이가 난다.


금감원의 원가 분석 작업과 시장 개입에 대해 카드 회사들은 불만이 높다. 그들은 서비스 수익이 늘어난 이유가 최근 2년간 매출이 2∼3배로 급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삼성카드 고영호 차장은 “지금 카드 회사가 누리는 호황은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현상일 뿐이다. 카드업의 특성상 불확실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지금은 수수료를 내릴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환 위기 이후 신용 카드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소득 공제 제도, 복권 사업 등 정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달 금리가 낮아져 수익이 크게 늘었다.
금감원 발표가 있기 이틀 전인 5월 21일 동작 빠른 삼성카드는 현금 서비스 수수료를 평균 23.37%에서 21.02%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삼성카드는 2천5백억원 이상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 정부 정책에 떠밀려 가격을 조정하는 모양새를 피해 미리 발표한 것이다. 삼성카드 고영호 차장은 “정부가 자꾸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관치 금융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5월23일 금융감독위원회 이두영 감독정책국장은 “신용 카드 문제는 이미 경제 논리 영역을 벗어났다”라고 말했다.


홍현표 겸임교수(단국대·신용카드학과)는 “미국 카드 회사들도 1980년대에는 현금 서비스 수수료가 높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시장 금리와 비슷해졌다. 국내 카드 회사 금리도 장기적으로 시중 금리를 따라 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카드업계와 시민단체 사이에 쌓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금감원이 원가 분석 내용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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