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랜드와 현대차, 어떤 관계인가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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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건축 공사 도맡아 ‘위장 계열사’ 의혹…공정위 발표에는 빠져
8월2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위아·코리아정공·위스코·본텍전자 등 위장 계열사를 두고 채무 보증과 부당 지원 행위를 해왔다고 발표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위장 계열사에 2백억원의 불법 채무보증을 하고, 3백45억원의 저금리 자금 등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의 발표를 계기로 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던 현대자동차에 급제동이 걸렸고, 재계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에 과징금 6억원이 부과되고 정몽구 회장에게 경고 조처가 내려진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알짜 위장 계열사는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건설·토목 회사인 에이치랜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에이치랜드는 어떤 회사이기에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일까.


에이치랜드는 이른바 ‘왕자의 난’ 이후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 회장으로 딴살림을 차리기 직전인 1999년 3월 설립되었다. 현대캐피탈 기획부장 장창기씨는 에이치랜드 설립과 동시에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에이치랜드가 설립된 당시는 현대건설과 감정을 갖고 결별한 상태여서 회사 내부에서 건설회사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었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후 현대자동차 관련 건설·토목 공사는 에이치랜드가 도맡다시피 했다. 그 결과 에이치랜드는 매출의 거의 대부분을 현대·기아 자동차를 통해 올리고 있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현대자동차 의존 비율이 95%를 넘는다. 거래처 다각화를 꾀하고 있지만 아직은 현대자동차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준이다”라고 했다.


임직원 90% 이상이 현대·기아 출신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 자동차 사옥 환경조성 작업을 비롯해 기아자동차 슈마타운·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파이롯트 시작동·현대자동차 아산 본관동 공사 등 에이치랜드의 건설 사업은 현대자동차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있다. 토목 분야도 마찬가지다.

화성 석천항 매립 공사는 현대·기아의 수출용 차량을 야적하기 위한 토목 사업이다. 에이치랜드는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제주 다이너스티 골프클럽 콘도미니엄·진입 도로 공사를 도맡아 처리하기도 했다. 2000년 해외 공사업 자격을 따낸 이후에는 현대자동차의 해외 공사도 처리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법인 연구소·미국 앨라배마 현대자동차 현지 공장·중국 상하이 기아자동차 현지 공장에서 공사를 벌였다.


현대자동차라는 든든한 후광을 업고 에이치랜드는 1999년 3월 설립 이래 고속 성장했다. 자본금 12억원으로 설립해, 2000년 7백억원 매출을 기록한 후 2001년에는 1천6백억원 매출에 43억원 순이익을 냈다. 전년 대비 매출액 124%, 당기 순이익 112%라는 놀라운 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겉으로는 에이치랜드의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에이치랜드 대주주는 현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에이치랜드 최대 주주는 회사 지분 45.7%를 소유하고 있는 장창기 대표이사다. 회사 지분 25.0%를 보유하고 있는 조수연 이사도 현대정공 출신으로 현대와는 인연이 깊다. 29.2%를 보유하고 있는 이덕우 이사는 공무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장창기 사장은 동서다이너스티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동서다이너스티는 현대·기아 자동차의 배달·탁송 업무와 경비를 맡은 회사로 에이치랜드가 8.27% 지분을 출자했다. 동서다이너스티는 현대자동차로부터 2000년 45억원, 2001년에는 24억3천7백50만원의 운영 자금을 연 이자율 8.47%로 장기 차입했다. 에이치랜드와 동서다이너스티의 재무 위험은 곧바로 현대자동차 계열사에 전가되는 것이다.


에이치랜드가 현대자동차의 위장 계열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인적 구성 때문이다. 현재 에이치랜드 임직원은 90% 이상이 현대맨으로 채워져 있다. 에이치랜드의 한 직원은 “전체 임직원 90여명 가운데 현대산업개발 출신이 주축으로 50명에 육박한다. 나머지는 현대건설과 현대정공 출신이다”라고 말했다. 동서다이너스티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이사 5명 중 3명이 현대 출신 인사들로, 요직은 모두 현대와 기아 출신 인사들이 맡고 있다.


직원들도 “계열사나 다름없다”


언론은 일찌감치 에이치랜드가 현대자동차 그룹이 건설에 진출하려고 세운 교두보가 아닌지 주목해 왔다. 지금도 에이치랜드를 매개로 해 현대자동차가 고려산업개발과 현대건설을 인수한다는 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현대자동차그룹과 에이치랜드의 밀월에 재계의 관심이 크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와 에이치랜드는 ‘현대자동차가 에이치랜드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계열사 임원이 에이치랜드에 재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위장 계열사라는 의혹을 일축한다. 단순한 협력 회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협력 관계로 보기에는 두 회사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시각은 현대자동차와 에이치랜드 내부에도 존재한다. 현대자동차의 한 간부는 “에이치랜드가 현대자동차 일을 다 처리하는 등 계열사나 다름없다고 많은 직원들이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에이치랜드의 한 직원도 “위장 계열사인지는 법적 요건을 따져봐야 알겠지만 회사 직원의 상당수는 현대자동차의 한 계열사로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현대자동차의 위장 계열사를 적발하면서 정작 에이치랜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공정위 주순식 독점국장은 “이번에 발표한 4개 사는 현대가 기업결합 신청을 해 심사를 하던 중 위장 계열사라는 강한 의심이 있어 조사하게 되었다. 에이치랜드에 대한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위장 계열사로 조사할 만한 정황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에이치랜드가 위장 계열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은 법의 잣대로 가려질 가능성이 높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김상조 교수(한성대)는 “우리 나라 기업 풍토에서 협력 업체와 계열사 간의 경계를 규정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에이치랜드는 협력 업체라기보다 현대자동차의 필요에 의해 설립된 계열사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면밀한 조사를 마친 후 공정거래위에 공식으로 에이치랜드의 위장 계열사 여부를 조사하라고 요청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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