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가 두 사장 밀어냈나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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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DDM본부장·최고기술책임자 일선 후퇴 두고 뒷말 무성
2004년 사상 최대 실적이 예고된 때문일까. LG전자는 2004년 12월17일 대규모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승진 잔치 분위기에 파묻혔지만, LG전자의 이번 인사에는 이례적인 구석이 있다. 디지털 디스플레이·미디어(DDM) 사업본부를 이끌던 우남균 사장과 최고기술책임자(CTO) 백우현 사장이 사장 직은 유지하지만, 현업에서 돌연 빠진 것이다.

핵심경영자원으로 불리던 우·백 두 사장의 이탈에 대해 LG전자 내부에서는 최고 경영진 간의 불협화음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돌고 있다. 2003년 구자홍 부회장이 전보되고 김쌍수 부회장이 LG전자 경영을 총괄하게 되면서 김부회장과 우·백 두 사장이 마찰을 빚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김부회장 특유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에 대한 두 사장의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LG전자 인사 자료에 따르면, 우사장은 ‘리서치 펠로우’ 자격으로 미국에서 신규 거래선 확보와 핵심 인재 발굴 등을 담당한다. 백사장은 북미 지역 최고기술고문(CTA)으로서 회사 차원의 사업·기술 전략과 제휴 활동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런 회사측의 설명이 매끄럽지만은 않아 보인다. 백사장 본인도 자신의 임무를 그렇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이번에 승진한 북미 총괄 사장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 본부에서 활동하던 최고기술책임자가 가기에는 걸맞지 않는 자리이다.

우사장의 거취도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한 최고경영자 과정(EIRP)에 지원했는데 학교측으로부터 아직 입학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인사 발령이 나기 불과 2주일 전인 12월 초 학교측에 입학을 타진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조직 개편도 그의 돌연한 미국행에 따른 후속 조처로 해석한다. LG전자는 우사장이 이끌던 DDM 사업본부를 디지털 디스플레이(DD) 사업본부와 디지털 미디어(DM) 사업본부로 쪼개 부사장을 각각 책임자로 앉혔다.

물론 회사측은 이런 해석을 부정한다. 홍보팀 고위 관계자는 “리서치 펠로우로 떠나는 우사장에게 회사가 ‘1년간’ 이라는 시간 개념을 왜 못박았겠느냐. 1년 후 그가 어느 자리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일각에서 말하듯 '팽'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백사장에 대해서도 가족이 미국에 살고 있는 등 생활 기반이 미국에 있고, 무엇보다 여유를 갖고 싶다는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구본무 회장은 김쌍수 부회장을 택했다?

연초 미국 뉴욕으로 떠나는 우사장은 자신의 거취에 대한 사내의 구구한 해석에 대해 부담스러워했다. 지난해 말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지난 5년간 (사장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이제 머리가 비었으니 채워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재충전의 의미를 강조했다. 김부회장과 갈등을 빚었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스타일이 다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또 자신은 직책만 맡지 않았을 뿐 여전히 LG전자 경영진의 일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우사장을 모셨던 한 관계자는 “우사장이 구본무 회장과 조직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 싶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우·백 두 사장에 대한 이번 인사는 구회장이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두 사장을 아끼는 구회장이 그들에게 시간을 갖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LG전자 한 관계자는 “지난 1년여 동안 최고 경영진 간의 갈등이 불거지자 구회장이 LG전자 국내외 임원들에게 ‘김쌍수 리더십’에 대해 탐문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구회장은 김부회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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