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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날 구멍은 있어야지…

현 제도, 부도 기업인 재기 ‘원천봉쇄’…지원은커녕 가족 손발까지 묶어

김진일 (전국부도기업인재기협회장) ㅣ 승인 2005.02.14(Mon)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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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기업인은 기업 세계에서 사형을 구형받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부도 기업에 대한 현재의 법과 제도는 재기를 불가능하게 막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다가 10년 전 부도를 낸 필자는 오늘날까지 내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휴대전화 하나 없다. 필자가 올해 처음 받은 우편물은 신용보증기금의 유채동산 압류 서류이다. 내 이름으로 된 통장으로는 단돈 만원만 들어와도 압류된다.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어떻게 재기를 시도해볼 수 있겠는가. 정부의 지원과 혜택은 고사하고 거미줄처럼 촘촘히 쳐져 있는 차별과 제재 속에서 금융 거래조차 할 수 없는 기업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부도 기업인이 기업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사형 선고를 내리기보다는 재기해서 남은 빚을 갚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부도 기업인들은 한번 실패했지만, 경영 노하우와 기술을 자산으로 갖고 있다. 창업에 들이는 비용과 지원 환경의 10분의 1만 있어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도 기업인이다.



죄가 밉다고 ‘노하우’까지 죽여서야

부도 기업인의 재기를 돕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창업지원책을 숱하게 쏟아내는 정부 부처에 부도 기업인을 관리하는 부서는 단 하나도 없다. 부도 위기에 몰린, 또는 갑자기 부도를 당한 기업인이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할 정부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창업지원센터는 수없이 많지만, 부도 기업인들의 재기를 돕는 재기지원센터는 단 한 곳도 없다. 심지어 부도 기업의 대표이사는 노동부의 실직자 재교육 지원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어 있다. 지원과 지도를 통해 그들의 재기를 도와야 할 정부가 오히려 차별과 제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중소기업고충위원회나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중소기업 관련 부처 어느 한 곳에라도 부도 기업 문제를 전담할 부서가 신설되어야 한다.

또 부도가 나기 전부터 기업인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손발까지 묶는 일부터 금지해야 한다.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 같은 정부 투자 기관만이라도 보증서를 발급할 때 대표이사에게 무한 책임을 지게 하는 ‘개인 보증’이라는 올가미를 목에 걸지 말아야 한다. 부도가 나면 그 올가미는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목을 조여 오게 되고, 그 올가미는 평생 조이게 되어 있다.

보증서를 발급할 때 기준을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즉 ‘A’라는 보증서는 제품의 가능성을 판단해 투자 개념의 보증서로 발급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 개념의 보증서는 대출 상환까지 충분한 기간을 주어야 한다. 명목상으로는 기술 개발 지원 자금이라고 주면서 1년 만에 회수한다면 어떤 기업이 제대로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된 지원이 제대로 된 벤처를 만들 수 있다. ‘B’라는 보증서는 기존 발급 규정을 적용하되 현재의 잘못된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 연대 보증’도 불합리

예컨대 대표이사 보증도 모자라서 가족 중 한 사람까지 연대 보증을 시키는데, 이는 잘못된 제도이다. 재산 한푼 없는 전업 주부, 회사에 대해 아무 책임도 없는 아내에게 왜 연대 보증을 세워 부도가 나면 남편과 똑같은 신용불량자로 만드는가. 아내까지 신용불량자가 되는 바람에 많은 부도 기업인들은 사업자등록증이나 통장 개설 등에 필요한 명의를 빌리기 위해 애를 먹어야 한다. 물론 사전에 재산을 빼돌리고 고의 부도를 내는 업주가 적지 않기 때문에 도입한 제도일 것이다. 그러나 회사 자금 내역만 추적해 보아도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배우자까지 연대 보증에 묶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도 실패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잠재적 실패자이고, 누구도 실패라는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영 실패에 대한 법적·사회적 책임은 당연히 져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이라는 짐이 한 사람의 인생과 그 가족의 일생을 파멸 상태로 만든다면 문제가 있다. 적어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재기를 위해 도전할 최소한의 길은 열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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