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특권은 개인의 권리 아니다
  • 최재천 ()
  • 승인 2003.10.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회의원이 면책특권을 남용하는 것을 막으려면, 헌법 해석의 최종심인 헌법 재판소가 그 범위에 대해 시대 상황에 맞게 적절한 기준과 해석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본래는 특권이 아니었다. 절대 권력자인 국왕에게 대항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의회의 권리이자 시민의 권리였다. 면책특권은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에서 시작된 이래 미국 헌법에서 명확해졌으며, 우리 헌법에도 계승되었다. 과거에는 국왕에게 대항하는 권리였지만, 지금은 행정부나 집권 여당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에게 실질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의원 개인의 특권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의회의 자율과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의회의 특권’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역사와 의미를 가진 면책특권이 말 그대로 ‘특권’화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야 간의 ‘막가파식’ 폭로와 지나친 정쟁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1986년 7월 유성환 의원의 ‘국시 발언’ 파동이 있었다. 신한민주당 소속 유성환 의원은 당시 제131회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자로 내정되었다. 원고에는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용어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보다 그 위에 있어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원고는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사전 배포되었다. 이 내용으로 인해 그는 1986년 그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되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은 1992년 9월 ‘면책특권의 대상에 대한 행위는 직무상의 발언과 표결이라는 의사 표현 행위 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통상적으로 부수하여 행해지는 행위까지 포함된다’라고 판시했다. 원고 내용이 공개 회의에서 행할 발언이고, 원고를 배포한 시기가 회의 시작 30분 전이었으며, 국회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제한적 배포였고, 원고를 배포한 목적이 보도 편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검찰의 공소 제기는 ‘무효’라고 최종 판결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정당 의원들이 면책특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했을까. 돌이킬 필요도 없이 당시 시대 상황에서 여당 의원들은 열을 올려 유성환 의원을 사법 처리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당시의 ‘정치 검찰’이 유의원을 기소했고,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야만 했던 것이다. 법원은 그 이후에도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대해 이런 판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위원회나 국정감사장에서 하는 질문이나 질의도 면책특권 대상’이고, ‘행정기관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도 그것이 직무상 질문이나 질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인 경우에는 면책특권이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법원은 이처럼 면책특권을 의회의 필수 권한으로 인정하고 있다. 면책특권이 제한되어야 하는 네 가지 이유

그런데 최근의 국내 정치 상황은 면책특권 범위를 엄격히 제한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지금 국회의원 중에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권력이 무서워 발언을 자제하거나, 발언으로 인한 신변 위협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둘째, 국회법에 무리한 발언에 대한 징계 절차 등이 마련되어 있지만, 국회가 자기 통제 기능을 전혀 행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기준이나 통제 방법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셋째, 법적 책임이 아니라면 정치적 책임이라도 물어야 하는데, 지역주의가 득세한 우리 현실에서는 이 기능이 사실상 죽어 있다. 넷째, 나라를 위한 면책특권이 아니라, 개인과 특정 정파의 편협한 이기심을 위한 발언을 면책특권이라는 이름으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면 면책특권을 아예 삭제해 버리면 어떨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헌법 해석의 최종심인 헌법재판소가 면책특권의 범위에 대해 시대 상황에 맞는 적절한 기준과 해석을 내놓는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