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깔린 1억개의 재앙' 지뢰 실태 보고서
  • 주성민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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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복원으로 본 지뢰의 실상/전 세계에 1억개, 한달에 8백명 목숨 앗아가…희생자 대부분이 민간인
1991년 걸프전쟁에서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미군 전투공병대는 이라크군이 매설한 지뢰 지대를 한밤중에 통과해야만 했다. 시간이 걸려 더디기는 했지만 그들은 군용칼로 모래를 찔러가며 전진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어둠 속에서 실수로 한 발만 잘못 디뎌도 가루가 되는 판이어서 밤중에 지뢰밭을 통과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다음날 낮에 그곳을 다시 지나가게 된 그들은 주위에 온통 지뢰가 널린 것을 보고 몸서리쳤다. 지휘관인 대령은 신음처럼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 하나님, 내가 여기를 지나갔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무기가 대인 지뢰(landmine)이다. 지뢰가 왜 가장 야만적인가. 지뢰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으며, 상대가 어른이든 아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지뢰는 전쟁이 끝났거나 말았거나 언제든 건드리면 그 즉시 폭발해 상대를 처참하게 해치운다. 지뢰는 군인들이 철수한 후에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 기능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수십 년에 걸쳐 두고두고 사람을 망가뜨린다. 땅 속에 매설한 지 10년이나 되어 녹슬고 흙투성이인 지뢰일지라도 케이블과 뇌관은 멀쩡하게 살아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매설한 폭약을 영국군이 건드려 희생자가 많이 생기자 독일인은 지뢰를 무기로 착상했다. 독일이 1917년 처음 만든 지뢰는 대전차용이었다. 그것은 영국군이 개발한 전차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용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전차의 20%가 독일군 대전차 지뢰에 파괴되었다. 그러다 대인 지뢰가 개발되면서 점차 지뢰는 공격용 무기로 변하게 되었다. 지뢰의 일종으로 흔히 ‘크레모어’라고 불리는 클레이모어 마인(claymore mine)은, 덫을 놓듯 설치한 후 적이 접근할 때 발사 장치를 작동하면 수십m 이내에서는 치명상을 입히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무기다.

지뢰는 크게 대인 지뢰와 대전차 지뢰로 구분된다. 대인 지뢰는 폭풍 지뢰와 파편 지뢰로 다시 구별된다. 폭풍형은 폭발력만으로도 무릎 아래를 날려보내므로 흔히 발목 지뢰라고 불린다. 미국의 M 14가 대표적이며, 러시아제 PMN 1과 중국제 72형도 악명이 높다. 파편형은 폭발 압력으로 파편을 날려 사람을 해치며, 땅 속에 매설하는 것과 클레이모어 M 18A1과 같이 땅 위에 설치하는 것 그리고 도약형의 세 종류가 있다. 그 중 도약 지뢰 M 16A1은 튀어올라 폭발하기 때문에 살상 범위가 넓어 피해가 크다. 무게가 3.5kg인 M 16A1은 속에 뇌관이 2개 들어 있어 센서를 건드리는 순간 하나는 땅 위로 튀어오르고, 또 하나의 뇌관은 폭발하면서 날카로운 강철 파편을 반경 수십m까지 날려보내 사람의 신체에 파고든다. 그밖에 적지에 갇힌 아군을 구출할 때 적의 접근을 막으려고 적과 아군 사이에 항공기로부터 냉동 상태로 살포하는 ‘그래블’이라는 작은 성냥갑만한 소형 지뢰도 있다. 비록 작지만 땅에 깔려 녹기 시작하면 강력한 폭발력이 있어 미군이 베트남에서 추락한 조종사를 구조하는 데 자주 사용했다.
현대의 대인 지뢰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불구자로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비열한 발상에서 제조되었다. 부상해 팔과 다리가 잘린 병사는 전사한 병사보다 훨씬 전우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의료와 병참 보급에도 부담을 주게 된다는 논리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반군 게릴라 전사들이 소련군 12개 사단과 맞서 끝없이 저항하자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상을 입히려고 고안된 지뢰가 수백만 개 살포되었다. 지뢰에 걸려든 전사들은 죽는 것보다 더 지독한 고통을 당했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그들은 포도상구균에 감염되어 신체가 썩어들어가 처참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고, 곁에서 지켜보는 동료들의 사기는 형편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강력 폭약인 TNT 20g 정도가 든 작고 가벼운 대인 지뢰는 파편도 없이 폭발력만으로 사람의 발목을 날려보낸다. 한국군이 사용하는 M 14 플라스틱 대인 지뢰가 바로 이런 종류인데, 강력 폭약 테트릴이 29g 들어 있고 무게는 95g밖에 안 된다. 플라스틱 지뢰는 폭발 압력으로 혈관과 조직에 피해를 많이 주는 데다, 작은 파편 조각이 엑스레이로 촬영해도 발견되지 않을 때가 있어 치료하기가 어렵다. 교활한 위장 지뢰와 눈에 띄지 않는 부비트랩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이탈리아의 악명 높은 회사 ‘발셀라 메카노테크니카’가 만든 무게 185g짜리 플라스틱 지뢰 발셀라 VS 50은 탐지하기가 어려운 데다 녹슬지 않아 수십 년간 사용할 정도로 수명이 길다.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뢰 4백만 개를 매설해 인구의 25%인 4백만 명을 살던 곳에서 쫓아냈으며, 장난감으로 착각하기 쉬운 나비 모양 살포용 지뢰 PFM 1을 항공기로 수백만 개씩이나 쏟아 부었다. 손발이 잘려나갈 정도의 폭약만 장치된 이 지뢰는 수많은 아이들을 불구로 만들었다. 전세계 분쟁 지역에는 1억개가 넘는 지뢰가 묻혀 있다. 아프리카 앙골라는 인구가 천만 명인데 지뢰는 1천5백만 개가 도사리고 있는 기막힌 나라다. 이 무수한 지뢰 때문에 세계 도처에서는 지금도 한 달에 8백명씩 죽어가고 있으며 1천2백명이 불구가 되고 있지만, 희생자의 90%는 총을 든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고, 그 중에서 20%가 아이들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방치할 수 없어 결성된 단체가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이며, 이들은 인류의 양심에 대인 지뢰의 야만성을 자각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1993년 대인 지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며, 1999년부터는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지뢰 수출국이었고 지금도 대인 지뢰를 생산하는 미국은 ‘인권’을 내세워 다른 나라를 비난하기 좋아하면서도 1988년 적대국인 이란에까지 지뢰를 팔았다. 그들도 돈벌이 앞에서 양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1994년부터 만드는 신형 지뢰에는 매설후 1백2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파괴되는 장치가 들어 있다. 최근에는 제3세대 첨단형으로 48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폭발 기능이 정지되는 ‘스마트 지뢰’를 개발했다.

국제적인 비난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기도 한다. 그것은 비치명적 무기(nonlethal weapon)이다. 강력한 충격파를 쏘아 통증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뱃속을 뒤흔들어 기절시키는 음향 대포와, 건드리면 끈적한 거품이 터져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거품탄과 안개탄이 그런 종류다. 안개탄 ‘매직 비전’은 적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들지만, 아군은 특수한 고글을 통해 보면서 공격하는 것으로, 이미 개발이 끝나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유고 공습 때 미군이 사용한 비치명적 무기의 하나인 흑연탄은 전력 시설을 7시간이나 마비시키기도 했다.
영국 육군 공병 장교 출신인 레이 맥그리스가 이끄는 지뢰자문그룹 맥(MAG)은 전세계에 널린 지뢰를 제거하는 인도주의 단체다. 맥은 오래 전부터 지뢰 제거를 위해 5백명이 넘는 전문가들을 파견하고 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땅 속의 지뢰 1개를 찾아 제거하는 데 수백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이 드는 데다, 지뢰 설계가 갈수록 교묘해져 화학 물질로 된 뇌관과 플라스틱 부품으로 만든 지뢰는 탐지기에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위험 부담이 너무 커 지뢰 천 개를 제거하는 동안 전문가가 한 사람꼴로 희생되고 있는 형편이다. 금속 탐지기를 휴대한 지뢰 제거 전문가는 방탄 재킷을 입고 방탄 유리로 앞을 가린 헬멧을 쓴 채 지뢰 매설 지역을 천천히 기어간다. 그는 길다란 칼 모양의 도구 프라더를 땅 속에 찔러 넣으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플라스틱 지뢰를 찾으며 안전지대를 확보해 나간다.

지뢰 제거 작업은 오랜 시간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어 피를 말리는 일이다. 만약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불구자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제거 도중 바로 코앞에서 지뢰가 터지면 폭발 압력에 헬멧이 날아가면서 얼굴이 망가져 헬멧이 별 도움이 안될 때도 있다. 제거팀은 항상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작업한다. 제거하는 동안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동료가 실수해 다치면 즉시 구조해 내기 위해서다. 맥의 대원들은 1995년 한 해에 세계 여러 곳에서 목숨을 건 작업을 벌여 지뢰를 10만 개나 찾아내 폐기했다. 그러나 그 해에 지뢰 2백만 개가 새로 매설되었다.

미군은 전쟁터에서 지뢰를 제거할 때 전투공병단이 ‘마이클릭’이라 불리는 지뢰 제거 폭약 마인 클리닝 차지스(MICLIC:Mine Cleaning Charges)를 발사해 제거한다. 긴 로프에 장치된 이 폭약은 소형 로켓으로 발사해 지뢰지대에 길게 늘어뜨린 후 폭발시켜 길이 100m, 너비 8m 지역에 묻힌 지뢰를 폭파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이클릭의 단점은 90% 정도의 지뢰만 파괴해 남은 10%가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보통은 기갑부대의 M 60이나 M 1A1 전차의 전면에 커다란 제거용 칼날을 달아 밀고 가면서 폭파시켜 보병들의 진로를 열게 된다. 최근에 수입되어 경의선 복원 구간에 투입될 지뢰 제거 장비인 독일제 마인브레이커와 리노는 이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장비다. 무게가 47t이나 되는 마인브레이커(Minebreaker)는 원격 조종으로 거대한 칼날을 작동시켜 1시간에 4km 속도로 땅을 갈아엎어 깊숙이 묻힌 지뢰까지 제거할 수 있는 값비싼 신형 장비다. 역시 원격으로 조종되는 무게 58t의 무인 장비 리노는 시속 1.3km의 제거 속도를 가지고 있으며, 땅 속에서 찾아낸 지뢰를 내부에서 폭파시키는 방식으로 안정성이 뛰어나다.
경의선 남쪽 복원 구간 지역에는 플라스틱 M 14와 산탄형 도약 지뢰 M 16A1, 대전차용 M 15, 부비트랩까지 모두 10만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지뢰 제거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최전방 청년들에게 공사 기간을 서둘러 맞추기 위해 지뢰에 목숨을 걸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전시에 북한 보병의 진격을 저지할 시간을 벌기 위해 휴전선에 백만 개 이상의 지뢰를 깔아 놓았다. 국군은 적의 전차가 접근해올 주요 지점마다 대전차 지뢰를 매설해 두었고, 이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대인 지뢰를 깔았다.

과거 북한 보안부대의 신중철 대위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탈출해올 때 그는 지뢰밭을 통과해야 했다. 육군의 지뢰 공병들은 적이 침투하기 쉬운 취약 지구에는 공명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지뢰를 고밀도로 집중해 매설하게 되며, 이런 곳은 매설 지도가 없이는 통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그 위험한 지역을 무사히 넘어왔다. 그는 지금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러니 그것은, ‘신’의 은혜였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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