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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민을 속이지 말라"

소비 규제, 해결책 못돼… 가격 내리거나 동결해야

최기련(아주대 교수 · 에너지학과) ㅣ 승인 2000.10.05(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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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터널을 빠져나오려던 한국 경제가 고유가로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각종 경제 운용 목표 지수들에 수정이 요구되고 있으며, 조금 숨을 돌리려던 국민들은 다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고유가 대책이랍시고 정부가 내놓은 것들은 국민을 안심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 대책은 에너지 가격 인상과 절약 강화로 요약된다. 대폭적 가격 인상을 통해서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고, 승용차 10부제 등 규제를 강화해서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자면 국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고유가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인데, 금 모으기 운동을 하던 때처럼 이번에도 국민들이 정부의 요구에 묵묵히 따라줄지 의문이다.

현 석유 파동은 물량 부족 아닌 수급 구조 탓

국민은 최고 75%까지 차지하는 높은 세금을 내고 GDP 대비 실질 에너지소비자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기름을 쓰면서도 왜 또다시 고유가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그리고 국세 수입의 15%에 달하는 에너지 세금을 징수하고, 또 석유수입부과금까지 별도로 걷으면서도 왜 석유 비축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권장 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한다.

정부는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가격이 낮아서 소비 절약이 안 된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정부 대책을 원한다. 세금을 많이 내고 비싸게 기름을 구입하는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충분히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한다.

첫째, 소비 규제가 아닌 이용 합리화를 통한 에너지 절약 대책을 정책의 기조로 삼아야 한다. 소비 규제는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때, 단기적·제한적으로 시행하는 정책이다. 이번 파동은 물량 부족보다 수급 구조 악화에 의해 가격 급등만 유발되는 ‘경제적’ 석유 파동이다. 소비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에너지는 사치재가 아닌 필수재로서 가격 탄력성이 극히 낮기 때문에 가격 인상이 곧바로 에너지 소비 감소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자칫 가격 인상은 부담만 증폭시킬 수 있다.

둘째, 정부는 가격 대책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세율 인하에 의한 가격 하향 조정(최소한 동결)이 필요하다. 우리 에너지 가격과 세금 구조에서는 충분히 인하할 여지가 있다. 현행 세율을 유지하는 것은 국민 희생 위에 정부만 세수 증대의 이득을 보는 기만 행위이다. 정부는 유가 인상에 대한 유럽 소비자들의 저항운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격 인상은 국민 복지 훼손과 산업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뿐이다.

석유 파동 초기에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소비자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위기를 증폭시키는 속칭 ‘패닉(恐慌)’현상을 방지하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석유 등 에너지는 파동이 나면 물가 상승과 기업 경쟁력 악화의 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극심한 공황이 일어난다. 평상시 가계 지출이나 기업 원가에서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모두들 동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안정시켜야 한다.

셋째, 정부는 정유산업의 구조 개편을 가속화해야 한다. 평시뿐 아니라 위기 때 더욱 더 모든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정유산업을 개혁해야 한다. 담합 방지책을 강력히 시행해서 불필요한 유가 인상으로 소비자가 고통받는 일을 막아야 한다.

위의 정책과 함께 정부가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서 지속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확신시켜 준다면 국민도 정부를 믿고 에너지 절약운동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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