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태산’ 여성 범죄 잔혹사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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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털이에서 살인까지 강력범 급증…여중생·여고생 범죄도 흉포해져
2003년 12월31일. 끔찍한 소식 하나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30대 독신 여성이 절친한 여고 동창생과 그녀의 두 자녀를 살해한 것. 피의자 이 아무개씨(31)는 피해자 박씨 집에 1주일에 서너 차례 왕래하면서 가족처럼 지낸 사이였다. 하지만 이씨는 박씨 집에 들러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처럼 속인 후 아들(3)의 입을 수건으로 막고 보자기를 머리에 씌워 살해했다. 이어 이씨는 친구 박씨에게 “아들이 깜짝쇼를 준비했다. 일단 눈을 감으라”며 박씨의 치마를 올려 눈을 가리도록 했다. 그리고는 빨랫줄 올가미로 목을 졸라 숨을 끊었다. 한 살 난 딸도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워 죽였다.

경찰은 30대 독신 여성이 화목한 여고 동창생 가정을 심하게 질투한 나머지 저지른 범행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내가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사니까 친구가 무시했다”라고 했다. 이씨는 살인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연한 태도를 보여 수사진을 놀라게 했다. 후회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씨는 “전혀 감정이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한 해는 유독 여성이 저지른 끔찍한 강력 범죄가 많이 발생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범죄율은 전체의 16.4%로, 전년에 비해 완만한 상승세였으나, 여성이 저지른 강력 범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범죄 통계와 분석을 맡고 있는 경찰청 수사과 임윤식 형사는 “최근 들어 당직실에 앉아 있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여성 범죄가 많이 집계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늘면서 직접 범행에 가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이것이 범죄율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살인과 인질극 등 여성 범죄의 수법이 매우 다양하고 대담해졌다고 덧붙였다.

특히 강도와 절도 분야에서 여성 범죄자 수가 크게 늘었다. 지난 한 해 강도로 검거된 여성 범죄자는 4백19명. 2002년 3백5명에 비해 73%나 증가했으며, 1998년 1백69명에 비해서는 248%가 증가한 수치다. 절도범의 경우도 9천8백14명으로 1998년 5천6백79명보다 58% 증가했다. 여성 방화범의 수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여성 방화범은 2003년 1백65명으로 전년도 1백38명에 비해 약 20% 증가했고, 1998년 98명보다는 무려 168%나 늘었다.

경찰청 범죄 기록을 분석해본 결과 경제난을 겪었던 1999년과 2003년 여성 강력범 수가 두드러지게 늘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여성의 범죄, 특히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 범죄가 늘어나는 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처럼 일부 여성들이 흉악범 대열에 들어선 데는 카드빚 등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경찰청은 카드빚 때문에 범죄에 나선 여성의 비율을 80%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돌려막기’ 덫에 빠진 수많은 여성들이 신용카드 사용이 여의치 않자 범죄의 유혹에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카드빚과 관련이 있는 강력 범죄를 60% 수준으로 분석하고 있다. 용산경찰서 이규환 반장은 “2002년 6월 신용 불량 기준이 강화된 이후 여성 범죄율이 크게 늘었고, 신용카드 규제 조처가 강화될 때마다 여성 범죄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라고 말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상현 교수도 “여성은 사치성과 충동성이 높아 범죄의 유혹에도 잘 넘어간다. 여권 신장으로 남녀의 벽이 무너진 상태에서 범행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도 쉬워 여성 범죄율이 급증하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생활고와 카드빚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 범죄자들은 납치·유괴는 물론 목숨을 빼앗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한 해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은행 강도로 나선 여성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20대 주부의 은행털이였다. 지난해 8월 김 아무개씨(24)는 여섯 살과 두 살인 딸을 데리고 새마을금고에 들어갔다. 두 살 난 딸을 태운 유모차에는 50cm 길이의 장난감 소총이 들어 있었다. 큰딸이 갖고 놀던 장난감이었다. 김씨는 새마을금고 계단에 아이들을 두고는 큰딸에게 잠깐 동생을 데리고 있으라고 한 뒤 범행에 나섰다. 장난감 총을 생활정보지로 감아 총구 부분만 드러나게 한 상태였다. 김씨는 새마을금고에서 1천5백만원을 빼앗는 데 성공했으나 범행 장면이 폐쇄회로 텔레비전에 잡히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다.

7월에는 대구에서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낮에 새마을금고를 털던 한 여성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그녀는 금고 창구에서 공과금을 내고 있던 한 여성의 목에 흉기를 들이댄 뒤 금고 직원에게 “있는 돈 다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여성 인질이 저항하자 불과 20여 초 만에 달아났고, 2분도 채 안 걸려 금고 직원에게 붙잡혔다. 은행 강도 이씨의 나이는 겨우 스무살이었다. 또 9월에는 한 20대 여성이 결혼 자금을 마련한다며 가스총을 들고 현금 수송 차량을 털려다가 붙잡혔다. 키 156㎝로 작은 체구인 전 아무개씨(25)는 직원들과 5분 가량 격투한 끝에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혔다.

여성 은행털이의 특징은 하나같이 충동적이고 범행이 서툴렀다는 점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현실적인 벽에 부닥쳤을 때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정서적인 반응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강하다. 여성들이 은행 강도 등 어설픈 범행을 극단적으로 택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여성의 카드빚은 강력 범죄는 물론 자칫 인신 매매와 같은 또 다른 사회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명동에서 20년째 사채업을 하는 김 아무개씨(50)는 “가정이 생활고에 시달리면 생활력이 강한 주부들이 먼저 사채 사무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 사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팔려가는 여성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살인 등 강력 사건이 아니더라도 복잡한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 여성도 많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집앞을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엔진 소리를 심하게 낸다며 운전사 2명을 잇달아 망치로 때린 여대생이 있었다. 서울 신림동에 사는 한 아무개씨(22)는 “엔진 소리가 시끄럽다”라며 집에서 망치를 들고 나와 버스를 부수고 차에 올라타 운전사 오 아무개씨(50)의 팔을 두 차례 때렸다. 한씨는 뒤따라오던 마을버스를 기다렸다가 버스를 세운 뒤 또 운전사를 망치로 네댓 차례 때려 상처를 입히고 버스 앞유리도 망치로 때려 부쉈다.
최근 들어 여성 강력범은 20∼30대 젊은 여성이 주를 이루는데, 연령대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미성년 여자 강력범의 수도 2001년 1백12명, 2002년 1백24명, 2003년 1백54명으로 증가했다. 무서운 여중생들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 아무개양(14) 등 3명은 친구 석 아무개양의 무릎을 꿇린 뒤 주먹과 발로 1시간 30분 동안 때려 숨지게 했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때려 죽인 이유였다. 12월 전북 군산에서는 친구를 집단 폭행하고 알몸까지 촬영한 여중생과 여중 중퇴생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피해자 고 아무개양(14)을 여관으로 끌고가 집단 폭행하고 외출을 못하게 하겠다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휴대전화 카메라로 알몸을 촬영했다.

막 가는 여고생 범죄는 더 무섭다. 고교 1학년 이 아무개양(16)은 남자 친구들을 불러 학교 친구를 집단 성폭행하게 했다. 심지어는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 인근에서 행인들에게 앵벌이를 시킨 뒤 돈을 뺏기도 했다. 남자 친구들과 서로 짜고 청소년 성매매를 미끼로 상대 남성을 협박해 돈을 뺏는 10대 꽃뱀도 등장했다. 용산경찰서 이규환 강력반장은 “과거 미성년 여자 범죄자들이 남성의 종범 역할을 했던 데서 벗어나 이제는 직접 범행에 나서고 있다. 여성끼리 작은 조직을 결성해 절도와 강도에 나서는 것은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범죄 유형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범죄 행위에 나섰다고 보고 앞으로도 여성 강력범의 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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