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무지에 찌든 무기 사업
  • 權銀重 기자 ()
  • 승인 2000.05.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년 예산 5조원…“도입 전과정 공개하라” 여론 들끓어
온나라를 뒤흔든 린다 김 사건은 싱겁게 끝날 모양이다. 군은 모든 수사 자료를 검찰로 넘겼다고 했고, 검찰은 ‘혐의 없다’며 린다 김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린다 김은 정치후원금 지원, 군사 기밀 유출, 뇌물 공여 등 불법 행위를 여러 가지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녀가 다른 국방사업에도 광범위하게 손을 뻗쳤다는 혐의가 제기되고 있지만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재수사는 검찰이 판단할 일이지만 그녀가 쥐락펴락한 국방부의 무기 획득 시스템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군의 획득사업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73년 방위력개선사업 계획이 수립되면서 각군이 책임졌던 무기획득사업을 국방부가 통합해 관리해 왔다. 국방부 획득 관련 훈령에 따르면, 무기 도입 요구 및 운용, 정보 수집, 구매 기종 결정, 계약 및 인수 책임은 각군·국방과학연구소·획득위원회·조달본부로 분산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군 수뇌부가 좌우해 왔다. 심지어 6공 때는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기도 했다. 업계의 한 인사는 “대부분 정치인이나 장관의 동기가 경영하는 업체가 로비하는 제품이 선정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장관이 모든 권한을 밀실에서 휘두른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백두사업은 이런 불합리한 관행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해 규정을 바꿨나

백두사업은 우리 군에 매우 중요하다. 백두·금강 사업은 우리 군이 미군에게만 매달리지 않고 정보를 수집할 눈과 귀를 가지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백두 시스템은 비행기 2대를 동시에 띄워 1대는 북한 전역에서 발생하는 전파와 주파수를 잡아내고 1대는 발신 위치와 신호 내용을 분석해 적의 동향을 탐지하는 방식이다. 금강사업은 평양 이남인 휴전선 지역의 축구공만한 물체까지 영상으로 잡아내는 것이 목표다.

백두·금강 사업은 비행기 등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획득에 중점을 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기 획득 과정에 야전 장성뿐만 아니라 전문가도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1년부터 진행된 이 사업은 지지부진하다가 이양호 전 장관이 취임한 1994년 이후부터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이양호 장관이 취임한 이후 국방부는 백두사업과 관련해 이해할 수 없는 조처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1995년 1월 특별 규정을 만들어 탑재장비 회사가 항공기를 선정하도록 했다. 린다 김이 로비스트로 활약한 E시스템은 당연히 자회사인 레이시온 사의 호커(HAWKER) 800XP기를 선정했다. 국방부는 비행기와 시스템 사를 패키지로 묶은 것은 비행기와 시스템의 체계 결합을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 안보지원국(DASS)은 한국이 미국 장비를 탑재할 비행기를 어떤 기종으로 선택하든 해외 무기 판매(FMS) 조건대로 체계 결합을 해주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결과적으로 국방부의 이런 조처는 린다 김이 로비스트로 있는 레이시온 사가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파이만을 키워 준 셈이다.1995년 11월 사업자 입찰에 E시스템+호커, 라파엘(이스라엘)+호커, 톰슨(프랑스)+사이테이션(미국)이 참가했다. 1996년 6월 국방부 획득협의회는 E시스템을 선정했다. 문제는 E시스템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회사가 한국 돈을 가지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셈이다. 전례가 없어 장차 얼마나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미국도 자국의 최신 무기를 다른 국가에 개발한 지 10여년 이후에나 수출하게 하는 배타적인 이용 권리(EL)를 E시스템에 적용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한술 더 떠 1996년 항공기 구매 방법을 바꾸었다. 정부와 정부끼리 거래하는 FMS 방식에서 상용구매 방식으로 전환했다. FMS 방식은 로비 자금 규모를 몇만 달러로 제한한다. 반면에 상용구매 방식은 무제한이다. 또 미국 국방부의 표준 양식(MIL-STD)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FMS 방식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상용구매 방식은 그렇지 않다. 잘못하면 엄청난 추가 비용 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국방부가 또다시 린다 김에게 떨어질 리베이트를 키워준 셈이다. 그런 와중에 이양호 장관은 1996년 10월 군 헬기 도입 사건과 관련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997년 6월 미국에 파견된 ○○부대 팀이 장비를 점검한 결과 백두 체계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계약 과정을 되돌아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대 실무자인 ㄱ씨는 예비설계안(PDR)을 검토한 뒤 12개 항목이 군 요구 성능에 미달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국방부 정보본부는 10월 백두사업에 대한 자체 평가를 실시했다. 이 평가는 ○○부대의 견해와는 딴판이었다. 통신 정보 수집 장비가 한국군의 작전요구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항공기와 수신소 사이에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행기 경로를 적절히 선정하면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후 ㄱ씨는 린다 김에게 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장교들은 기밀유출죄로 구속되었다.

정권 교체후 백두사업은 1998년 감사원 감사와 국회 국방위원회의 감사를 받았다. 감사원과 국방위는 이구동성으로 ‘백두사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국회 국방위는 2년 동안 계속 문제 제기를 했다.

백두사업 의혹은 빙산의 일각

우선 호커 비행기만 보더라도 계약서에 비행기의 성능을 확인할 최대 탑재 중량 등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1998년 국방부 획득본부가 국회 국방위에 보고한 최대 탑재 중량과 군수 산업계의 기록이 달랐다. 국방부는 호커의 탑재 가능 중량은 2,037㎏, 실제 탑재 중량은 1,825㎏이라고 보고했으나 DMS 마켓 인텔리전스 리포트나 <제인 연감>에 따르면 실제 탑재 중량이 1,105㎏에 불과해 과연 이 비행기가 감청 장비를 싣고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와 별도로 군은 1998년 8월 국방과학연구소 임중수 박사를 비롯한 정보시스템 전문가 18명으로 특별평가팀을 만들어 백두사업을 점검했다. 이 팀은 백두 체계에 전자첩보장비의 불규칙한 주파수를 자동 탐지할 기능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항공기에 요구되는 표준 기상 조건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작전에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를 한국측이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고 기술 이전과 품질 보증에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별팀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은 “계약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미국 국방부가 품질 보증을 해줄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라고 지적했다. 즉 한국측이 백두사업 계약서에 미국 국방부 표준 양식인 MIL-STD-598에 따른 사업기술서(SOW)를 첨부하지 않아 미국측이 한국군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는 말이다.1999년 3월 국회 국방위는 문민 정부 때 추진된 방위력 개선 사업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각 부문의 문제를 제기했다.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 미스트랄 재고품 수입 △UH 60 헬기 고가 구매 △대구경 다련장 로켓사업 전력화 불투명 △동부 지역 전자전 장비사업 군 요구 충족 조건 미비 △백두·금강 사업 불공정 계약이 대표적이다. 국방위가 심사한 이 사업은 대부분 예산이 60% 넘게 집행되어 지적된 문제를 한시바삐 바로잡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이고 보니 군의 획득 시스템을 불신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경실련은 5월3일 성명을 내고 ‘밀실에서 진행되는 무기 구매는 비리의 온상일 수밖에 없다. 사후 정보 공개와 사업별 국회 감사 의무화로 투명성을 확보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5월12일 ‘백두사업을 통해 본 국방 관련 계약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으며, 로비스트 활동 양성화법 제정을 제안했다.

국방위의 과반수(9명)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방위력개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가안)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만들어질 위원회는 획득 방법, 기종 선정, 연구 개발의 타당성을 심의하게 된다. 이 위원회는 국방부장관이 위원장으로 재경부·통상부·정통부·과기부 차관, 국정원 차장, 합참의장, 각군 참모총장이 위원으로 참석한다. 군에 집중된 권한을 여러 부처로 나누겠다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인 지만원 박사는 “3개월에 한 번씩 군에서 필요한 군수조달계획을 업계에 공개하는 미국처럼 아예 무기 획득 계획을 공청회를 통해 정확하게 공개해야 불법 로비를 근절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로비스트들도 밀실에서 불법으로 군의 구매 정보인 ‘쇼핑 리스트’를 얻어내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공개된 장소에서 가격과 질로 떳떳하게 경쟁하면 그만이다.

당사자인 군도 국방중기계획에서 차지하는 획득의 중요성을 깨닫고 1997년 5월 개정한 무기체계 획득관리규정을 올 초 새롭게 정비해 획득 절차를 간소화·투명화했다고 말하고 있다. 국방부 문일섭 획득실장은 “획득 업무와 관련해 시민단체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로비 활동 범위 설정과 획득 과정의 법제화를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아래 인터뷰 기사 참조).

국가 안보를 위한 우리의 조달 시스템은 군 관계자의 고백대로 ‘초보 수준’이다. 이 초보자들에게 매년 국방 예산의 30%인 5조원을 맡기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군은 차기 주력 전투기 사업(FX)·대형 공격헬기 사업(AHX)·차기 잠수함 사업 등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방위력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